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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과 함께 하는 삶(5)|불우 장애자 손발 되어… &목욕-간병-책읽기 등 무엇이든 도와|대학생·직장인 80여명 자원봉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5면

<「부름의 전화」>
21일 오후 4시 서울 강남고속버스 터미널에 경남 진주발 서울행 버스가 도착하자 2명의 환영객이 버스에 올랐다. 이제껏 한번도 만난 적은 없지만 눈이 마주치자마자『아, 오셨군요』하며 대번에 서로를 확인한 사람은「부름의 전화」봉사대원·김미숙(24)·박정하(19)씨와 뇌성마비 장애자 허진영씨(26).
『먼길 오시느라 애쓰셨네요. 저희가 어떻게 도와드리면 좋을까요?』
『저는 내일 오전10시까지 경기도 광명시에 있는 장애자 복지기관 명휘원에 가서 면접시험을 쳐야 합니다. 명휘원에서 제일 가까운 여관까지 데려다주셨으면 고맙겠습니다.』
허씨가「모험」이라도 하듯 큰 맘 먹고 난생처음 감행한 서울나들이는 당장 교통수단을 선택하는 어려움에 부닥쳤다.
경제형편상 그 먼 거리를 택시로 갈 수 없는 입장인지라 지하철을 두 차례나 갈아타고 구 로동까지 가서 다시 택시로 광명시에 도착한 것은 오후7시쯤.
계단을 오르내릴 때마다 박씨는 허씨를 업고 금씨는 휠체어를 들어 옮겨야했으니 두 사람의 헌신적인 도움이 없었더라면 허씨의 서울나들이는 어림도 없었을 일이었다. 허씨는『사회에서 버림받은 이 장애자에게 이처럼 친절하고 따뜻하게 도와주는 분들이 계시리라곤 상상도 못했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허씨를 도운 두 사람은 다음날 아침 명휘원에서 허씨와 다시 만나기로 약속하고 헤어졌다.
김씨와 박씨는 공공시설이나 건물마다 경사로나 엘리베이터 중 어느 한가지라도 반드시 설치하고 횡단보도의 턱을 낮추는 등으로 노약자나 장애자들이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도 자유로이 외출할 수 있게되면 얼마나 좋겠느냐고 아쉬워했다.
늙고 병들거나 불구의 몸 때문에 생활이 불편한 사람들이 전화만 걸면 즉시 봉사대원을 파견해 그들의 손발이 돼주는「부름의 전화」. (392-1279)가 개통된 것은 지난87년 10월.
80여명의 남녀 대학생과 직장인들이 각자 틈나는 요일과 시간을 정해놓고 대기하다가 도움을 청하는 사람들에게 달려간다. 돕는 내용은 길 안내에서 대필, 민원서류교부, 진료 및 쇼핑동행, 책 읽어주기, 빨래 및 목욕시켜주기 등 각양각색으로 지난번 대통령 선거 때는 장애자들의 투표를 돕기도 했다.
장애자·노인·환자 등 누구나「부름의 전화」에 도움을 청할 수 있지만 그들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이라든지 파출부·간병인 등을 고용할 수 있을 만큼 경제적 여유가 있는 경우는 돕지 않는 것이 원칙. 자립을 방해하는 도움은 절대 금물이기 때문이다.
「부름의 전화」에 대한 소문이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자 지방에서도 도움을 청하는 등 파 송요청 전화가 쇄도하고 있어「부름의 전화」봉사대원들은 점점 더 바빠지고 있다. 한편 『뜻 있는 사람들이 전화 한 대를 중심으로 모이기만 하면 얼마든지 소외된 사람들의 이웃이 되는 보람을 찾을 수 있는 만큼 전국 곳곳에 이런 모임이 생겼으면 좋겠다』는「부름의 전화」김정희 봉사대장은『이달 말께 광주에도「부름의 전화」가 생기게 됐다』고 기뻐했다. <김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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