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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에 빠진 선장 먼저 … " 구조 양보한 기관장 숨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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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나는 괜찮으니 표류 중인 선장을 먼저 구조해 주십시오."

얼음장같이 차가운 바닷물에 떠 있다 숨진 기관장 정용필(64.사진.전남 목포시)씨가 마지막으로 남긴 말이다. 2일 오후 6시30분쯤 전남 신안군 도초면 도초도 남쪽 1.8㎞ 해상. 선장과 기관장, 두 명이 탄 목포 선적 41t급 예인선인 대성6호가 닻을 내리고 있던 중 파도에 밀리면서 배가 한쪽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배가 침몰하면서 원형의 고무 보트가 자동으로 물 위에 펴졌고, 기관장 정씨는 이 위에 올라탔다. 그러나 선장 임재성(59.부산시 영도구)씨는 선박 안에 갇힌 채 물속에 잠겼다가 뒤늦게 탈출하면서 기진맥진한 바람에 고무 보트에 타지 못하고 바다에 빠지고 말았다.

10여 분 뒤 인근을 지나던 목포 선적 9.8t급 어선인 107 분도호(선장 이석원.48.목포시)가 고무 보트 위의 정씨를 발견했다. 자신을 구조하기 위해 접근하는 분도호의 선원들에게 정씨는 "물에 빠진 선장을 먼저 구조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에 분도호는 인근 해역을 수색하다 정씨에게서 200여m 떨어진 곳의 바닷물 속에 구명조끼조차 없이 허우적거리고 있던 임씨를 찾아내 배로 끌어올렸다. 그 사이 10여 분이 지났고, 분도호가 다시 기관장 정씨를 구조하는 데 나섰으나 파도가 높게 일어 고무 보트에 접근할 수 없었다.

혼자 구조할 수 없다고 판단한 이씨가 목포해경에 신고한 시각은 오후 7시3분. 긴급 출동한 목포해경 경비정 5척이 오후 8시15분 사고 해역에 도착, 수색에 나섰다. 약 4시간 후인 밤 12시쯤 고무보트를 발견했으나 정씨는 이미 의식을 잃은 상태였고, 목포로 옮기는 도중 저체온증으로 숨지고 말았다. 정씨의 배려로 살아난 선장 임씨는 "사고가 난 날 아침 진도 팽목항에서 정씨를 처음 만나 함께 배를 탔는데, 위급한 상황에서 나를 위해 살신성인했다"며 애석해했다.

신안=이해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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