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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적과 약점 솔직하게 토로-전 대통령 고별회견에 담긴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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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전두환 대통령의 제5공화국 시대가 막을 내리고 있다. 출범당시의 요란한 굉음, 그리고 집권 7년 반 동안 쉴새없이 되풀이되던 소용돌이와 그에 대한 국민들의 애증·호악를 돌이켜 볼 때 그의 퇴진은 의외로조용하고 안정된 가운데 이루어지고 있다는 느낌이다.
퇴임하는 마당에 그의 재임 중 업적과 성취를 새삼 높게 평가하기 때문일까, 의도와 과정여하를 불문하고 한 시대의 지도자를 고이 모시려는 국민들의 정의 때문일까, 아니면 이와는 관계없이 헌정사의 새 경험을 관조하는 것일까.
아뭏든 전 대통령은 20일 기자회견에서 자신의 업적과 약점을 비교적 솔직히 토로하면서 정리할 것은 정리하고 국민들에게 이해를 구할 것은 이해를 구했다. 그리고 그것은 7년 반 동안 끊임없이 그의 주변을 맴돌던 갖가지 평가들을 망라한 것으로 고별사라는 특유의 뉘앙스로 전달되었다.
전 대통령은 자신의 단임 약속이행을 가장 큰 업적으로 내세웠으며 「역사적인 사실」로 기록될 것을 믿고 있다. 단임 약속이행을 위해 스스로 다짐한 신앙같은 집념을 설명하고 이 선례가 우리정치에 대한 신뢰회복 및 민주주의의 요체가 될 것으로 기대했다.
또 80년 당시의 참담했던 내외상황과 혼란을 극복하고 경제의 안정과 성장을 회복한데 쏟은 자신의 노력과 결실에 깊은 애정과 자부를 표시했다. 이밖에 정치생명을 건 물가안정시책의 추진과 성공, 올림픽 유치가 가져온 긍정적 파급효과, 정상외교를 통한 안보능력 강화 등을 열거하면서 결국 자신의 임기만료 퇴진이 명예로운 것이라고 자평했다. 그러나 전 대통령은 자신의 부덕·불민함도 솔직히 시인했다. 무엇보다 자기주변에 대한 악성 유언비어에 무척 시달려 왔음을 고백했고 도에 넘치는 불신풍조와 자신의 진의가 왜곡 됐을때 인간적인 비애까지 느꼈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자신이 인기 없는 대통령임을 잘 알고 있었으며 그 이유를 나름대로 분석했다. 84년 선거를 앞두고 취한 예산·수매가·공무원 봉급 동결조치, 10·26이후 수사책임자로 험상궂게 등장한 첫 TV회견, 4·13 개헌유보조치로 상징되는 개헌문제에 대한 일관성 결여, 아웅산 사건 이후 강화된 경호 등을 구체적 이유로 꼽았다.
그러나 그는 이 같은 비 인기행위가 당장의 인기보다 역사를 의식하겠다는 대통령관에 의한 것이므로 결코 후회스럽지 않다는 확신을 보였으며 시일이 지나면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한 인물」로 평가될 것으로 믿고 있다. 그는 또 자신이 국정 수행에 엄격했을지언정「독재」 는 하지 않았다고 해명했으며 광주사태 미해결에 가장 큰 부담을 표시했다.
전 대통령의 이 같은 회고와 분석이 각계각층의 국민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질지는 한마디로 예측키 어려우며 그의 말대로 좀 더 시간이 지나 역사적 평가를 받아야 할 대목들이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우리는 지도자의 업적이 당대의 시류에 따라 부정되고 그 반동이 쉽게 합리화되는 사례를 무수히 보아왔다.
예를 들면 지난번 대통령선거에서 노태우 후보가 내건 공약 중에는 전대통령에 대한 비인기적 요소를 뒤엎는 것이 적지 않았는데 그 대표적인 것이 「권위주의의 청산」과 「보통 대통령」 이었다.
이 두가지를 강조한 노 후보가 유권자들에게 어필했고, 그 연장선상에서 보여준 당선후의 정치스타일이 인기를 끌고 있는 점은 우리 정치의 실상을 대변하는 척도로 볼 수 도 있다. 그리고 정치의 본질을 떠나 스타일면에서 전 대통령의 약점이 무엇이었나를 짐작케 한다.
확실히 전 대통령은 국난 속에 등장해 정통성 결여의 약점을 딛고 체제유지의 효과성을 확보하기 위해 힘의 논리로 발전의 템포를 재촉하지 않을 수 없는 어려움을 안고 있었다.
그리고 그 이면에 「내가 분명히 물러나는데 국민들을 위해서는 무슨 일인들 못하랴」 는 강한 자의식이 작용한 탓인지 대체로 국민들에겐 지나치게 위압적이고도 도전적으로 비친 사례가 없지 않았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그러나 지금까지 스타일면에서 그에게 가졌던 애증을 훌훌 털고 보면 지도자로서 그의 행상을 결코 평가절하만 할 수 없는 대목이 허다하며 특히 그를 비판하던 사람들이 무엇을 성취했나와 비교해 보는 것도 흥미있는 일일 것 같다.
이제 단임 실천 등 정치적 민주화의 싹으로 개화될 수 있는 것은 평가해주고, 물가안정 등 좋은 결과는 애정을 갖고 존중해주는 국민의 숫자와 한 시대의 시행착오와 시련의 책임을 몽땅 그에게 전가하는 국민의 숫자 중 어느 쪽이 더 많으냐가 관심이다. <전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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