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참신」과 「계속성」 사이서 고심했다-제6공화국 새 내각이 탄생하기까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새 정부 조각발표가 있은 삼청동 취임준비위 기자실에는 중계방송차량을 비롯해 60여명의 내신기자들이 열띤 취재경쟁.
취임준비위 강용식 대변인은 조각에 따른 간단한 배경 설명만 유인물로 돌린 채 조각 내용은 사전누설을 방지하기 위해 일체복사도 하지 않은채 명단을 적은 쪽지 1장만을 들고 나와 발표.
그는 이번 인선의 특징으로 취임준비위가 3백명의 기초명단을 작성, 총리내정자와 청와대비서실장내정자를 사전에 발표한 뒤 이들과 취임준비위원장을 불러 노태우 차기대통령이 나흘간 4단계의 절차를 밟는 등 각계각층에서 유능하고 덕망있는 인재를 널리 발굴, 등용하는데 신중을 기했다고 강조.
노 당선자는 구정인 18일 오후 새 각료들을 경제부처와 비경제부처로 나누어 상견례를 겸해 본인들의 의사를 재차 확인한 뒤 협조를 당부.
강 의원은 『정무2장관에 여성을 기용한 것은 차기 대통령이 여성지위향상에 지대한 관심이 있다는 것을 반영한 것』 이라고 말하고 『상공· 문교· 문공· 과기처·통일원 등에 분야별 전문인을 기용해 전문성을 중시했으며 특히 문공장관은 앞으로 문화부 신설과 관련, 문화계 인사를 발탁함으로써 차기 대통령의 문화에 대한 각별한 관심을 반영했다』고 설명.
그는 당초 약속했던 야권인사기용이 빠진데 대해 『야당측에 천거요청을 했으나 민주·평민당에선 천거가 없었고 개별접촉을 갖기도 했으나 당사자들이 자신들의 현재 위치와 정치적 처신 때문에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해왔기 때문』이라면서 『그러나 초당파적인 국정운영을 해나간다는 당초의 방침에 따라 야권인사를 앞으로도 계속 영입한다는 원칙에는 변함이 없다』고 했다.
강 의원은 공화당측에선 천거를 해왔으나 조각명단에서 빠짐에 따라 18일 상오 김용채 총장에게 연락, 『정중히 사과했다』 고 밝혔다.
한편 조각 4인 멤버중의 한사람은 『부총리 인선과 관련, 마지막 순간까지 나웅배 상공과 함께 이승윤 전 재무· 정수창 대한상의회장 등 3명이 검토됐다』 면서 『이·정씨는 재정 또는 실물경제쪽의 한쪽만 담당했던 사람이나 나 장관의 경우 재정·상공 양쪽 부문에 경험이 있어 균형이 잡혀있다는 점이 크게 작용했다』 고 설명.
그는 또 『막바지 순간에 은밀히 경제부처의 여론조사도 해봤는데 역시 나 장관에 대한 새로운 기대감이 있더라』 고 소개했는데 장덕진 전 농수산장관은 보도와 달리 처음부터 크게 거론되지 않아 여론 테스트용이었다는 후문.
이춘구 위원장은 『무엇보다 지역간 균형을 맞추는데 어려웠다』고 소개했으나 소위 「TK사단」으론 이상배 내무· 사공일 제무·정해창 법무 등 3명이 그대로 유임.
이 위원장은 충북이 없지 않느냐는 질문에 『비상기획위원회 이상훈 위원이 충북』이라고 설명.
○…청와대비서진 기용은 노 당선자가 막바지까지 고심한 대목.
노 당선자가 민정· 법사 수석자리를 이번 인사에서 비워둔 것은 이같은 진통을 시사하고 있는 것이라는 얘기.
이 대목에서 가장 고심한 것이 대통령 취임준비위 멤버들의 청와대기용문제로 결국 최병열 위원 1명만 정무수석으로 기용.
최 수석과 현홍주 법제처장은 취임준비위원으로 내정됐을 때부터 청와대기용이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졌으나 인선과정에서 1명만 기용, 또는 전원 탈락될 것이라는 관측이 한때 무성. 특히 노 당선자가 구정전야회의에 앞서 최·현 위원과 강용식 의원을 동시에 호출, 『앞으로 내 옆에서 보좌하지 않더라도 섭섭히 생각하지 말라』 고 했는데 이때부터 3명 동시 탈락설이 강하게 대두.
그러나 노 당선자가 『한명 정도는 청와대로 가야되지 않겠느냐』 고해 이들 3명 외에 이진 위원이 청와대수석으로 갈 것이라는 얘기도 나오는 등 혼선.
노 당선자의 이같은 인사방침은 △과거 군 및 장관시절 전보·승진할 경우 자기사람을 함께 데리고 가지 않는 인사 스타일 △「측근정치」를 하지 않겠다는 본인의 의지로 보아 결코 이례적인 일이 아니라는 조각본부주변의 설명.
그러나 준비위 멤버들의 청와대 기용 혼선은 이같은 측면 외에 정권이양 과정에서 권력 심부의 미묘한 기류가 영향을 미친 것이라는 후문.
실제 이와 관련한 갈등에 얽힌 얘기들이 취임준비위 주변에서 나돈 것도 사실인데 김윤환 청와대비서실장이 다녀간 사실이 밝혀져 더욱 그럴싸하게 소문이 꼬리를 물었다.
○…노 당선자는 18일 오후 3시쯤 개인적 사정이 있는 약간 명을 제외한 신규기용 내정자전원을 삼청동 모처로 초치, 다 모임을 주재.
이현재 총리내정자· 홍성철 비서실장내정자 등도 배석한 이날 모임은 새 내각의 「상견례」가 된 셈인데 신임 각료 내정자들을 경제팀과 비경제팀으로 나누어 두 차례에 걸쳐 1시간여 동안 진행.
오후 7시쯤 자택에 돌아온 이 총리내정자는 『이 자리에서는「새 시대를 맞이해서 정직한 정부가 될 수 있도록 여러분들은 맡은바 임무에 최선을 다해달라」는 노 당선자의 당부의 말씀이 있었다』 고 전언.
○…인선작업이 완전히 마무리 된 것은 구정전날인 l7일 밤8시간40분에 걸친 심야 마라톤회의에서였다.
노 차기대통령을 비롯, 4인 멤버는 삼청동 차기대통령 임시거처에서 대문을 굳게 걸어 잠근채 저녁식사와 야식을 들어가며 18일 0시20분까지 작업.
사실 대부분의 인선은 16일 밤 회의에서 끝난 상태여서 이날의 조각회의는 남은 1∼2석과 내정자에 대한 연락· 면담·발표 등 절차문제만 상의하고 일찍 끝낼 예정이었으나 거명인사에 대한 언론의 비판 때문에 회의시간이 길어졌다는 후문.
조각의 윤곽이 드러나면서 유임 장관수가 6∼7명이나 되고 차관 승계도 많은 등 『조각이 아닌 보각』 『새 시대의 의지가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 는 부정적 여론이 무성하자 측근들은 비판적 내용의 기사 스크랩을 회의장에 들여보내고 이례적으로 기자실에 들러 엄정한 평가를 묻는 등 당황하는 모습.
실제 이날 회의에선 이 같은 여론을 의식, 유임 폭의 재조정과 비판론이 거센 일부 내정자의 임명을 둘러싼 득실 등을 되풀이 검토하는 등 「난산」이었다는 뒷 얘기.
특히 『구정권에서 악법 입안에 적극 참여했거나 권위주의 탄압 행정의 대표적 인물도 있다』는 등의 전력 혹평에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는 것.
○…조각팀은 자택에서 기다리고 있던 기자들에게 『인선작업은 이제 우리 손을 떠났다. 언론이 50%는 맞췄다』는 선만 말한 뒤 내용은 일체 함구.
한 관계자는 『참신과 계속성사이에서 많은 고심을 했다』고 언론의 비판에 크게 신경 썼음을 시인하면서 『그러나 참신도 중요하지만 정치는 역시 연속성이 있어야 한다는 판단에 따랐다. 큰 방향은 당초 대로다』고 설명.
○…이번 조각에서 가장 진통을 보인 부총리 인선은 혼선 속에 「반전」을 거듭하는 등 난산.
15일 본격 인선 출발 당시 나웅배 상공· 최창낙 동자장관, 5공화국초반 이승윤 전 재무·박봉환 전동자(증권감독원장)와 강경식 전 재무(민정당정책조정실장), 학계의 조 순서울대교수, 재계의 정수창 대한상의회장, 민화위위원인 장덕진 전 농수산장관 등이 1차 검토대상.
이들을 놓고 이 총리내정자와의 학연·지연관계, 장관재직 때 평가, 노 당선자의 인사 핵심 고려사항인 팀웍 플레이 구사능력, 이미지, 업무 추진력, 총선 등을 종합 평점해 l6일 심야심의 때 유력 후보였던 나 장관은 이 총리내정자·홍 비서실장내정자와 같은 서울대상대를 나왔고 성장지(대전)가 이 총리내정자와 같은 충남이란 점이 「부담」으로 등장, 탈락되는 듯한 분위기.
이 시간 회의장에서는 최초 후보를 놓고 다시 압축해 나가다 「단순한 안배」 보다 경제 현안 처리의 실제능력이 중점 고려돼야 한다고 최종결론, 나 상공쪽으로 역전되면서 결국 최종낙점.
○…문교장관은 현승종 전 성대총장(한림대학장) 과 고병익 전서울대총장이 거명됐으나 실제 인선과정에서 현 전 총장이 고사의사를 밝혀 김영식 한국교육개발원장으로 낙착.
농림수산·동자장관 등은 처음부터 「독주」 상태에서 그대로 골인한 경우. 상공장관은 안병화 한국중공업사장, 문희갑 경제기획원차관, 한국의 「아이아코카」라는 김선홍 기아산업회장 등이 각축을 벌이다 기업경영의 노하우를 수출전선에 도입케 한다는 대세에 따라 문 차관이 탈락되고 결국 안 사장으로 낙착.
보사장관도 특별한 경쟁상대 없이 예방의학 권위자며 서울대총장을 지낸 권이혁 전 문교장관으로 쉽게 낙점됐다는 얘기며, 노동장관은 노사관계의 비중으로 보아 한때 「거물급」 을 기용해야한다는 지적이 있어 부총리 물망에 올랐던 장덕진 전 농수산장관의 중용도 얘기됐으나 간접적으로 사양했다는 후문이며 최명헌 장관내정자는 71년이래 만14년간 구로공단 이사장을 지내면서 노사문제를 현장에서 체험한 것이 고려돼 처음부터 유력시됐다는 것.
문공장관은 5공화국 시절의 「언론인 독점」 선례를 깨고 문화예술계 인사를 기용하는 나름대로의 「파격인사」라는 설명.
교통장관은 당초 「야당 몫」으로 할애했다가 민주·평민당측이 각료추천을 하지 않고 마땅한 인물이 없어 이 쿼터를 민정당측이 차지하게된 셈.
총무처장관은 김창식 평통사무총장 등이 물망에 올랐으나 김용갑 청와대민정수석비서관으로 결정돼 이번 개각에서 이례적인 케이스로 지목.
육사·안기부기조실장경력의 김 장관내정자는 청와대 재임때 「바른 소리」를 잘하고 탁월한 업무능력이 평가된 데다 현 청와대 진용의 각료 기용도 한 두명 정도는 있어야 되지 않겠느냐는 배려가 주효했다는 것.
과기처장관에는 이관 울산대 총장 외에 박태원 인하대총장과 조경목 민정당기조실장 등이 초기단계에서 검토됐으나 원자력분야를 개척한 이 총장으로 일찍 결정됐다는 것.
현홍주 취임준비위원의 법제처장 기용은 전혀 예상 밖의 인사로 논공행상적 측면이 강하다는 분석.
이 자리에는 81년이래 근7년간 법제차장직을 맡아온 박윤흔 현 차장과 한원도 선관위사무처장의 승진도 검토됐으나 막판에 뒤집어진 케이스.
노 당선자는 현 위원의 청와대기용을 놓고 여러 측면을 고려하다 결국 본인의 검사 경력과치밀한 업무처리 능력 등을 감안해 법제처장에 내정.
보훈처장은 호남출신에 대한배려가 너무 비중이 작게 다뤄지면 곤란하다는 의견에 따라 호남의 제2세대 관료 엘리트인 전석홍 전남지사로 결정.
정무1장관을 이번에 임명하지 않은 것은 총선 후 당정 및 대야채널에 적임자를 고른다는 측면에서 제외.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