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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신매매, 강제낙태, 폭행이 난무하는 북 인권실태

중앙일보

입력

“여긴 지옥인데, 거기 누구 없나요.”
11일(현지시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의 부대행사로 열린 북한 인권 토론회에서는 탈북자들의 강제북송을 포함해 참혹한 인권유린 실태를 가감없이 드러냈다.
특히 1998년 처음 중국으로 탈출했다가 3차례의 강제북송과 4차례의 탈북을 감행해 2007년 한국에 정착한 지현아씨의 증언이 토론회 참석자들의 심금을 울렸다. 다음은 지씨의 증언 전문.

유엔에서 북한 인권실태를 고발하고 있는 탈북여성 지현아씨. [유엔웹TV 캡처]

유엔에서 북한 인권실태를 고발하고 있는 탈북여성 지현아씨. [유엔웹TV 캡처]

북한인권을 내용으로 회의를 개최해준 유엔 관계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북한이라는 거대 감옥에서 300만명의 아사는 평범한 일입니다.
자유와 인권이 허락되지 않은 북한에서 탈출하는 것은 생존하려는 의지 그 이상이었기 때문에 다정한 친구와 이웃, 정든 고향을 뒤로 하고 두만강에 몸을 맡겼습니다.
중국에서 살던 저희 아버지는 1963년 16살 어린 나이에 조국을 찾아 국경을 넘어 북한에 정착했습니다.

탈북여성 지현아씨 유엔 증언 #개구리 쥐 껍질 벗겨 먹기도 #유엔이 북한 문 열어달라 호소

1997년 12월 중국 친척 방문길에 KBS 라디오를 접하고는 지금까지 속고 살았다며 탈북해야할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1998년 2월 아버지는 자유를 찾아 어릴 때 넘어온 국경을 다시 넘었고 어머니와 저는 두만강 상류를 건넜습니다.
미리 정한 장소에서 만나려던 아버지는 중국 공안에 잡혀 19년째 행방을 알수없으며 저와 동생과 어머니 또한 바로 북송됐습니다.

북송된후 탈북했다는 이유로 구둣발로 폭행당하는 엄마를 보았습니다. 수많은 기관에서 사상비판을 받았습니다.
마을 사람들과 친구들의 눈길 또한 따뜻하지 않았습니다.
엄마가 준 작은 성경책을 들켜서 보위부에 끌려가 고문을 당했고, 길에서 주웠다고 하자 그제서야 풀려났습니다.
이틀있다 오겠다는 엄마와 동생은 식량을 구해서 오다가 인신매매꾼에게 잡혔습니다.
17살이었던 여동생은 강제로 팔려 40세가 넘은 사람과 결혼해야 했습니다.
10살된 남동생을 홀로 남겨둔채 저 또한 인신매매를 당해 중국으로 팔려갔고, 다시 1년만에 북송되면서 최악의 사태를 맞았습니다.

청진 집결소에서는 임산부들에게도 하루 종일 힘든 일을 시켰습니다. 북한에서는 혼혈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중국에서 임신해 온 임산부들에게 일을 시켜 강제로 낙태하게 합니다.
저녁마다 임신부들의 비명소리를 들었고, 세상에 나오자마자 죽음을 맞는 아기를 지켜봐야 했습니다.
어렵게 엄마를 다시 만났지만 저는 안전원의 폭행으로 오른쪽 갈비뼈를 다친 상태였습니다. 저는 엄마와 헤어져 재판도 없이 증산 11호 교화소로 가야했습니다. 이곳은 사람이 살아서 나가지 못하는 곳입니다.

하루 종일 많은 사람들이 힘든 노동에 시달리며 부족한 식사로 메뚜기를 잡아먹고, 배추를 주워먹고, 개구리와 쥐의 껍질을 벗겨 먹기도 했습니다.
사람들은 설사로 인해 바짝 마른 상태로 숨을 거뒀습니다. 열악한 식량 사정으로 사망한 사람들은 비닐에 쌓여져 동산에 묻히지만 굶주린 개들의 먹이가 됐습니다.
증산11호 교화소에 1년형을 받고 갔지만 2000년 김정일 생일에 남은 형을 감면 받고 나왔습니다. 그러나 북한인권을 세상에 알려야한다는 일념으로 세번째 탈북을 감행했습니다.
허나 저는 임신 3개월 만에 다시 세 번째 북송됐고, 해당 보안소에서 마취도 없이 강제로 수술을 당해 낙태 당했습니다. 그렇게 제 첫 아기는 세상 밖을 보지 못한 채 미안하다고 말할 시간도 없이 떠나갔습니다.(눈물)
지혈이 멈추지 않았는데도 함흥 55호 교화소로 보내지려고 하던 중 담당보안원이 감사하게도 건강을 감안해 병보석으로 출소시켜줬습니다.

유엔에서 북한 인권실태를 고발하고 있는 탈북여성 지현아씨가 강제로 낙태당한 얘기를 하면서 눈물을 훔치고 있다.[유엔웹TV 캡처]

유엔에서 북한 인권실태를 고발하고 있는 탈북여성 지현아씨가 강제로 낙태당한 얘기를 하면서 눈물을 훔치고 있다.[유엔웹TV 캡처]

아픈 몸을 이끌고 다시 두만강에 몸을 실었고 중국으로 가야만 했습니다.
증산 11호 교화소에서 죽은 사람의 눈을 감겨주며 약속한 것이 있었습니다. 꼭 살아서 당신들이 못다한 삶을 살겠다고.
1998년 2월 첫 탈북해 2007년까지 세 번의 북송과 네 번의 탈북을 시도했습니다. 8개월의 교화소 생활을 끝내고 중국을 거쳐 2007년 한국으로 입국했습니다.
저는 엄마와 중국에서 낳은 딸을 미얀마를 통해 한국으로 데려왔지만, 두 동생과 아버지의 소식은 알수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남동생이 한국으로 입국했습니다. 엄마는 13년간 헤어져 지낸 아들을 안고 울기만 했지요.
2011년에는 여동생이 태국을 거쳐 한국에 입국했습니다. 여동생을 안고 우리 가족은 또 울고 또 울었습니다.
그리고 다짐했습니다. 다시는 헤어지지 말자고.

지금 이순간 아버지가 많이 보고싶습니다. 많이 그립습니다.
저의 이 그리움이 저만의 그리움이 아닌 모든 탈북자의 그리움이고, 탈북병사가 남한으로의 질주하던 모습은 2500만 북한 주민이 남한으로 질주하는 모습입니다.

북한은 하나의 무서운 감옥입니다.
김씨 일가는 이곳에서 대량학살 만행을 하고 있습니다.이 무서운 감옥에서 살아남는 건 기적일 뿐입니다.
중국 정부는 자유를 찾아 북한을 떠난 탈북자를 무서운 북한으로 보냅니다.
지난 11월 4일 4살 아이는 엄마와 함께 아빠를 만나러 남한으로 가던 길이었습니다.
아빠를 곧 만난다는 기쁨도 잠시 중국 정부는 끝내 잔인하게 죽음으로 내몰았습니다.
중국 정부가 북송된 탈북자들이 북한에서 어떤 탄압을 받을지 잘 알면서 보낸다는 것은 살인행위와 무엇이 다른지요.

중국 정부는 이 살인행위인 탈북자 가족북송을 당장 멈추기를 강력히 호소합니다.
아버지를 비롯한 북송돼 감옥에서 눈을 감은 모든 분들, 감옥에 있는 모든 북한 주민들을 대신해 자유를 먼저 맛본 저도 빚진 자임을 고백하면서 유엔 관계자 여러분이 알 권리, 가질 권리없는 북한 주민과 탈북자들의 자유와 인권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줄 것을 바랍니다.

탈북여성 지현아씨가 자신의 시집 '마지막 선물' 을 들어보이고 있다. [유엔웹TV 캡처]

탈북여성 지현아씨가 자신의 시집 '마지막 선물' 을 들어보이고 있다. [유엔웹TV 캡처]

제가 쓴 시집 ‘마지막 선물’ 중에 시 한편을 읊어드리려 합니다..

<정말 아무도 없나요>.
무서워요 거기 누구 없나요
여긴 지옥인데 거기 누구 없나요
아무리 애타게 불러도 아무도 저 문을 열어주지 않네요
거기 아무도 없나요
제발 우리의 신음소리를 들어주세요.
짓밟히는 우리의 아픔을 들어아주세요
거기 아무도 없나요
사람이 죽어요. 내 친구도 죽어가요
불러도 불러도 왜 대답이 없나요.
거기 정말 아무도 없나요.

감옥 밖에 있는 저와 여러분이 북한의 문을 열어줄 것을 호소합니다. 북한이 해방돼 그 주민들이 자유를 먼저 누린 당신들이 우리를 위해 무슨 일을 했냐고 물을 때 옳은 일을 했다고 대답할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기를 바랍니다.
유엔이 북한인권 문제에 실질적으로 개입해 북한 주민의 자유와 인권이 해결되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뉴욕=심재우 특파원 jwsh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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