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영장 없는 비밀도청 법적 이론은 위험한 주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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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W 부시 미국 행정부의 '영장 없는 비밀도청'을 고홍주(52.미국명 해롤드 고.사진) 미 예일대 법학대학장이 정면 비판했다.

한국계로 클린턴 행정부 시절 국무부 인권담당 차관보를 지낸 고 학장은 지난달 28일 미 상원 법사위원회가 개최한 청문회에서 "부시 행정부의 법적 이론은 그릇되고 위험한 주장(wrong and dangerous)"이라고 강력 비판했다. 고 학장 등 이날 청문회에 출석한 전문가 7명 중 4명이 부시 행정부의 영장 없는 도청에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다.

◆ "심각한 불법"=고 학장은 "부시 행정부가 9.11 테러 이후 시작한 비밀도청은 심각한 불법(blatantly illegal)"이라며 이는 "행정부에 대한 의회의 감시기능을 한갓 '고무도장(rubber stamp)'으로 만들어 버릴 것"이라고 비판했다. 또 "법 테두리를 넘어 테러와 싸우는 것은 지극히 비생산적"이라며 "부시 대통령이 헌법을 어기고 위헌적인 행정권력에 의존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문제는 도청뿐 아니라 (도청의 주체인) '국가안보국(NSA)'이 (국민과) 공유하는 권력인지, 대통령의 독단적 권력인지 여부"라며 "권력에 대한 견제는 미국의 창조물인 '균형'을 달성하는 데 본질적 요소"라고 강조했다.

이어 "부시 대통령은 수년간 자신이 법을 준수한다고 주장했지만 실제로는 비밀리에 법을 무시했다"고 공격했다.

고 학장은 20여 쪽이 넘는 발언자료를 준비했고 청문회가 끝난 뒤에도 30여 분간 의원들과 의견을 주고받는 등 적극적이었다. 그는 청문회장에 고교 2년생인 아들 윌리엄도 데리고 왔다. 그는 "아들이 오늘의 경험을 바탕으로 훌륭한 미국 시민으로 성장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러나 제임스 울시 전 중앙정보국(CIA) 국장은 "미국은 9.11 이후 테러와의 전쟁터가 됐다"며 "대통령은 법의 규정을 뛰어넘어 테러에 대응할 원천적인 권한을 가진다"고 부시를 옹호했다.

◆ 영장 없는 도청이란=NSA가 2001년 9.11 테러 이후 부시 대통령 승인 아래 법원의 영장 없이 미국인 수천 명의 전화.e-메일을 도청해 온 사건. '특별수집 프로그램'이란 이름으로 미국 내에서 한번에 500여 명을 도청했고 해외에선 약 7000명이 도청당한 것으로 추산됐다. 이들 대부분은 범죄 전력이 없었다. 이는 미 국가기관이 시민을 감청할 경우 비밀법원인 해외정보감시법원(FISC)의 영장을 받도록 규정한 해외정보감시법(FISA.1978년 제정)을 어긴 것이다. 그러나 부시 대통령은 테러와의 전쟁을 이유로 영장없는 도청을 옹호하고 있다.

워싱턴=강찬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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