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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 '루사' 1년 지난 영동지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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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지난해 8월 31일 강원도 영동지역. 기상 관측 사상 최고치인 8백97.5㎜의 비가 내려 산사태와 하천 범람 등으로 2백5명(사망 1백22명.실종 21명.부상 62명)의 인명피해가 났다. 또 1만3천2백83가구(4만1천3백84명)의 이재민이 발생하고, 건물 및 농경지 등의 유실.붕괴 등으로 2조5천1백93억원의 재산피해를 입기도 했다.

그로부터 꼭 1년이 지난 지금 거대한 물줄기에 무참히 무너졌던 수재민들의 삶의 터전은 대부분 복구됐으나 아직도 5.5평짜리 컨테이너에서 생활을 못 벗어난 수재민이 있는가 하면, 당시 유실된 부모와 친지들의 분묘를 못찾아 애를 태우는 사람들도 많다. 이들에겐 10여일 앞으로 다가온 추석이 서러울 뿐이다.

"1년이 지나도록 돌아가신 아버님의 보금자리를 되찾지 못한 불효를 어찌 씻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박인호(35)씨는 지난해 태풍 루사로 강릉시 사천면 강릉공원묘원에 안치했던 아버지의 분묘를 유실했으나 아직까지 찾지 못했다. 그는 "초등학교 2학년생인 딸이 '추석 때 할아버지 산소에 갈 수 있느냐'고 물을 때마다 밤잠을 설친다"며 고개를 떨궜다.

지난해 강릉공원묘원에서 유실된 분묘 1백90여기 중 시신을 찾아 이장한 것은 1백여기뿐. 당시 수습은 했으나 연고 확인이 안된 유골과 사체들이 묘원 한구석에 쌓여 있는 상태다. 이들 유골과 사체는 공원묘원 측에서 지난 7월에야 서울대 법의학 이정빈 교수팀에 DNA 검사를 의뢰해 시료채취를 했고 지난 22일 유족들의 혈액 채취를 했기 때문에 빨라야 10월쯤에야 유족 확인이 가능할 것으로 예상된다.

유족 모임 대표인 최종철(61)씨는 "공원묘원 측의 무성의로 유전자 검사가 늦어졌다"며 "추석이 다가올수록 서글픈 생각만 든다"고 눈물을 글썽였다.

강릉시 강동면 학산리에서 1년째 컨테이너 생활을 하고 있는 5가구 수재민들은 새 보금자리를 마련할 집터 마련이 늦어지는 바람에 지난해에 이어 올 추석에도 컨테이너 생활을 해야 할 처지다.

아직 컨테이너에서 생활하고 있는 수재민은 강릉과 양양 등지에 20여가구가 있으나 대부분 새집이 준공을 앞두고 있어 추석 전에는 입주가 가능할 전망이지만 이들 5가구는 그렇질 못한 것이다. 그나마 당초 10~11월이면 새집 입주가 가능할 것으로 예상했으나 최근 계속된 비로 기초공사만 마친 채 10여일 이상 공사가 중단돼 자칫하면 비닐을 덧된 컨테이너에서 겨울을 나야할 지도 모를 상황이다.

수재민 이택연(68)씨는 "동갑내기 할멈과 지난해 겨울을 컨테이너에서 나면서 몸도 허약해져 올 농사도 포기했는데 공사가 자꾸 지연돼 추석은커녕 겨울나기도 걱정이다"며 "비만 오면 컨테이너 옆에 있는 소화천이 넘칠까 봐 밤에 잠을 이루지 못한다"고 하소연했다.

강원도에 태풍 루사로 유실되거나 붕괴된 9천3백30곳 중 복구가 완료된 곳은 8월 말 현재 8천3백41곳으로, 1천곳 가량은 아직도 공사가 진행 중이다. 도로.교량의 경우 9백42곳 가운데 80% 정도만 준공됐고, 농어촌 도로 및 소규모 시설도 복구율이 70%에 머물고 있다. 이밖에 하천은 80%, 수리시설 85%, 소하천 82%, 사방임도 90%, 상하수도 92%, 항만시설 95%, 철도시설 85%의 진도를 보이고 있다.

강원도청 방재치수과 남영순(51) 담당은 "올해 잦은 비로 공사가 예상보다 더뎌졌다"며 "도로.교량.하천.저수지 등 대형 공사 50여건을 제외한 모든 공공시설 공사를 올해 안에 준공할 계획이다"고 말했다.

한편 태풍 루사 복구 작업이 진행되면서 생태계 파괴도 심각한 것으로 나타나 대책 마련이 요구된다.

관동대 건설환경시스템공학부 윤이용 교수팀이 최근 발표한 '연곡천 생태계의 수질보전을 위한 연구'논문에 따르면 지난해 8월 1백33종이나 됐던 연곡천 수생식물이 수해복구 공사로 지난 5월 이후엔 거의 사라졌다. 또 천연기념물 330호인 수달도 자취를 감추는 등 수해 지역 대부분 하천에서 생태계 교란 현상이 빚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강릉=홍창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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