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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달 종목 다변화' 뒤집어보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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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제20회 토리노 겨울올림픽에서 한국 선수단은 종합 7위라는 훌륭한 성적을 거뒀다. 잠도 반납하고 새벽에 TV 앞에 앉았던 사람들은 연일 쏟아지는 금메달에 환호했다. 한국 쇼트트랙 선수들은 정말 놀라웠다. 세계 정상의 실력이라는 것은 누구나 인정하고 있었지만 이렇게까지 잘할 줄은 몰랐다. 코칭스태프가 내세운 목표 자체가 금메달 3개였다. 물론 내심으로는 4~5개를 기대했다. 그런데 6개를 따버렸다. 한국의 올림픽 출전 58년 역사상 처음으로 3관왕도 나왔다. 그것도 두 명이나. 스피드 스케이팅에서 12년 만에 나온 동메달도 대단한 것이다. 언론들이 '금보다 값진 메달'이라고 표현할 정도니까.

환호와 기쁨의 한편에서 다른 목소리도 들린다. '편식'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목소리다. "금메달을 6개나 따고 7위라는 성적을 거뒀지만 다 쇼트트랙 덕분 아니냐" "쇼트트랙 빼면 뭐가 남느냐" "다른 종목에도 투자해 다변화를 이뤄야 한다"는 주장이다.

맞는 말이다. 취약 종목인 스키나 피겨 스케이트, 썰매 종목에서도 메달이 쏟아져 준다면 매우 바람직할 것이다.

이런 목소리는 여름올림픽이 끝난 뒤에도 똑같이 나온다. 금메달이 양궁과 태권도, 그리고 유도.레슬링 등 투기 종목에만 몰려 있다는 지적이다. 메달 종목을 다변화하고 육상.수영 등 기초 종목에 더욱 많은 투자를 해야 한다는 주장이 쏟아진다. 이것도 맞는 말이다.

그런데-. 이런 면도 한번 생각해 보자.

한국처럼 올림픽에 거의 모든 종목의 선수를 출전시키는 나라가 별로 없다. 대한민국의 인구는 2006년 현재 4800만 명이 약간 넘는 것으로 추산한다. 인구로만 보면 세계에서 25위다. 그런데도 올림픽 출전 종목을 보면 미국.러시아.중국.일본 등 인구 강대국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

프로 스포츠 쪽을 돌아보면 더하다. 일단 프로야구와 프로축구가 모두 성행하는 나라는 전 세계에서 한국과 일본.미국뿐이다. 한국은 여기에 프로농구와 프로배구까지 있다. 정말 '대단한 나라'다.

하지만 이게 꼭 좋은 것만은 아닌 것 같다. 이 조그만 나라에서 모든 것을 다 하려고 하는 것이 혹시 '욕심'은 아닐까.

이렇게 말하면 해당 종목의 지도자나 선수, 특히 핸드볼.하키.펜싱 등 아시안게임이나 올림픽 때만 관심을 받는 '마이너 종목' 관계자들은 서운해할 것이다. '국민의 꾸준한 관심' '정부 차원의 대폭 지원'을 주장해야 할 사람이 정반대의 말을 하고 있으니.

엄격하게 말하면 모든 것을 다 하려고 하는 게 욕심이 아니라 '모든 것을 다 잘하려고 하는 게' 욕심이다. '팔방미인'을 추구할 것인지, '전문가'를 키울 것인지는 교육의 문제만이 아니다. 스포츠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올림픽 종목이나 프로 스포츠는 엘리트 스포츠다.

정부의 지원이라는 것도 따지고 보면 국민의 세금으로 하는 일이다. 다다익선(多多益善)이긴 하지만 결국은 국민의 주머니에서 나와야 하는 돈이다. 지원을 무한정 늘릴 수도 없고, 대상을 모든 종목으로 늘릴 수도 없다. 지원을 확대한다고 해서 모든 종목이 다 세계 정상이 될 수도 없다. '선택과 집중'은 여기서도 필요하다.

오해 없기를 바란다. 무관심 속에서 실력을 키워온 해당 종목 관계자들의 노력을 평가절하하는 것도 아니요, 지원을 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도 아니다. 큰 그림을 한번 보자는 뜻이다.

손장환 스포츠 데스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