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은 그릇을 키우는 곳 당장 소용되는 것 채워서야 … "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5면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의 저자 신영복(65) 성공회대 교수가 2일 서울대 입학식에서 축사를 했다. 이날 축사는 서울대 경제학과 7년 후배인 정운찬 서울대 총장의 초청으로 이뤄졌다.

신 교수는 "최근 급속한 세계화와 치열한 경쟁 논리로 대학 고유의 인문학적 가치가 사라지고 있다"며 "이것은 학생들의 인간적 성장을 위해서나 우리 사회의 미래를 위해 대단히 불행한 일"이라고 말했다.

신 교수는 1968년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아 20년을 복역한 뒤 88년 8.15특사로 가석방됐다. 대통령.동창회장 등을 제외하고 국내의 외부 인사가 서울대 입학식에서 축사를 하기는 신 교수가 처음이다.

그는 "대학 시절에는 그릇 자체를 키우기 위해 노력해야지 당장 소용되는 것들로 그릇을 채우려고 해서는 안 된다"며 "냉철한 이성의 머리와 뜨거운 감성의 가슴을 보다 멀리, 넓게 열어야 한다"고 했다. "세상에는 세상에 자기를 잘 맞추는 사람과 세상을 자기에게 맞추려고 하는 우직한 사람이 있다"며 "역설적인 것은 세상을 사람에게 맞추려고 하는 어리석은 사람들에 의해 세상이 조금씩 발전해 간다는 사실"이라고 강조했다.

88년 출판된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은 신 교수가 수감생활 중 가족들에게 보낸 200여 통의 편지를 묶은 책으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서울대 관계자는 "천편일률적인 축사보다 신입생들에게 삶의 지침이 되는 축사가 필요하다는 의견에 따라 신 교수를 초빙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한편 정 총장은 입학식사에서 "눈앞의 명성에 어두워 지위에 걸맞은 책무를 잊은 지식인은 더 이상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며 "국가와 사회에 윤리적 책임을 다하고 스스로를 다스릴 수 있는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갖추길 바란다"고 말했다.

박성우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