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있는아침] '양파'전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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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양파'전문 - 조정권(1949~ )

옷을 잔뜩 껴입고 사는 여자가

모임에 나오곤 했었지

어찌나 많은 옷을 껴입고 사는지

비단을 걸치고도 추워하는 조그마한 중국여자 같았지

옷을 잔뜩 껴입고 사는 그 여자의 남편도

모임에 가끔 나오곤 했었지

남자도 어찌나 많은 옷을 껴입고 사는지

나온 배가 더 튀어나온 똥똥한 중국남자 같았지

그 두 사람 물에서 건지던 날

옷 벗기느라 한참 걸렸다네


우리가 잔뜩 껴입고 있는 것이 어디 옷뿐일까. 나와 당신은 높은 담을 치고 뒤란을 숨겨놓고 벽을 두르고 세 평의 거실 속에 쪼그리고 앉아 있다. 눙치다 왈칵 성내고 또 그걸 파도처럼 거듭해 남들이 종잡을 수 없다. 많은 말을 쏟아놓고 말들의 겹주름 속에 진심이 숨어 산다. 남의 말을 잘 곧이들어 손해 보는 사람이 귀하다. 퇴로를 만들지 않는 사람이 요즘은 귀하다. 그러니 똥똥한 중국남자처럼 너무 많은 옷을 껴입지는 말자.

문태준<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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