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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로뽕 주부·농촌까지 파고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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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백색의 악마」「망국의 백색가루」로 불리는 히로뽕의 폐해가 부산·서울을 중심으로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다. 종래 일본 밀수출용으로 만들어졌던 히로뽕은 84년부터 밀수 단속이 강화되자 국내로 손을 뻗쳐 술집 종업원뿐 아니라 운전사·주부·회사원·학생, 심지어 농촌에까지 넓고 깊게 파고들어 폐인을 양산하고 있는 실정. 특히 최근 히로뽕 사범들은 환각상태에서 흉기를 소지한채 거리를 활보, 언제 어디서 불특정인을 향해 이를 휘두를지 모를 「범죄의 화약고」로 등장하고 있다.
◇증가추세=15일 보사부 마약단속반 집계에 따르면 전국적으로 마약류 사범은 86년 9백61명에서 지난해에는 1천3백9명으로 1년 사이 36%나 늘었고 그중 동양인에게 효과가 크다는 히로뽕사범은 86년의 6백48명에서 지난해 1천26명으로 58%나 증가했다.
이는 80년의 히로뽕사범 2백28명에 비해 7년 사이 4·5배나 늘어난 것이다.
보사부에 따르면 지난해 히로뽕사범의 51%인 5백25명이 부산에서 검거돼 부산이 히로뽕일본밀수출의 본거지였던 악연 때문에 히로뽕의 온상이 되고 있는 것으로 밝혀져 충격을 주고있다.
부산다음으로는 서울이 2백%명으로 많았고 대구 69명, 수원 43명, 의정부 40명, 마산 35명, 인천 27명 등이었다.
부산지검이 파악하고 있는 부산지역 밀매조직만도 10∼11개파, 투약자는 2만∼3만명에 이르며 단속반 관계자들은 전국의 압수물량을 감안하면 히로뽕 경험자가 1백만명에 육박한다고 추정한다.
몇 년 전까지만도 주사 등을 사용한 1회사용량이 5만∼6만원하던 것이 요즘엔 1만∼2만원까지 떨어진 것도 히로뽕 밀매조직의 확산정도를 알게 해준다.
◇폐해=히로뽕의 약리작용은 「뇌중추 흥분작용」과 「말초신경 흥분작용」의 두 갈래로 성적 흥분, 현실도피용으로 사용되나 중독되면 뇌 및 중추 손상으로 폐인이 돼 패가망신에 이른다.
이로 인해 피해망상·추적망상·질투망상증등 정신병증세가 나타나며 쉽사리 살인·인질극·강도 등 대형범죄로 이어진다.
이중 피해망상 환자는 「누가 자신을 쫓고 있다」는 환각속에 자신을 지키기 위해 흉기를 소지한 「움직이는 흉기」.
부산지검 김대권 검사는 『작년 검거사범중 절반 이상이 흉기를 소지, 검거될 때 이를 휘두르며 대항했다』고 말한다.
이밖에 추적망상에 난폭 운전, 질투망상에 따른 정부살해 등 상습 투약자들의 환각범죄양상은 다양하다.
◇흉악 범죄 유발=지난달16일 상오 부산시 부전2동 일미식당에서 주인 도옥순씨(43)등 3명을 과도로 위협, 1시간동안 인질난동을 벌이다 경찰관이 쏜 총에 맞아 검거된 김태환씨(26)는 히로뽕 상습 투약자로 환각상태에서 범행했다.
지난해 10월10일 부산은행 송도지점 앞길에서 면도칼을 들고 출근길의 회사원 문모양 (18)을 붙잡아 인질극을 벌인 강재범씨(29), 같은 달 거제2동 왔다 연쇄점과 인근 가정집 세곳을 오가며 식칼 등을 휘두른 지수복씨(29)등도 백색 악마의 중독자였다.
지난해6월 검거된 김정렬씨(30·운전사·부산시 대저2동)는 자신이 히로뽕범죄로 구속돼 있을 때 숙모가 뒷바라지 해주지 않은데 앙심, 출옥하자마자 히로뽕을 맞고 숙모를 트럭에 태워 야산에 납치, 히로뽕을 주사한 뒤 폭행하는 패륜행위까지 저질렀다.
◇농어촌 및 주부층 침투=단속이 심해지자 지난해 부산밀매조직은 인근 농어촌까지 파고들었다. 이들은 「신통한 약」「피로회복제」등으로 거짓 선전, 인근 경남지역 선량한 농민들에게 마수를 뻗쳤다.
지난해10월3일 히로뽕 환각상태에서 한살짜리 아들을 마당에 내동댕이쳐 숨지게 한 공룡호씨(29·경남 진양)와 예비군훈련장에서 훈련도중 발작, 소란을 피운 채동식씨(24·경남진주)등도 농민이었다.
상습 투약자로 붙잡힌 김차련씨(34·여·경남의령)등 농촌주부 3명도 백색마수의 희생자였다.
지난해7월 서울 도곡동 S사우나 밀실에서 히로뽕을 복용하다 검거된 차모씨(34·여)등 주부 7명은 범죄의식이나 거부감 없이 중독에 빠져 패가망신 한 사례.
◇대책=히로뽕의 밀조·밀매·투약에 따른 종횡의 조직은 다른 밀수조직보다 치밀한 점 조직이어서 머리를 잡으면 몸통과 꼬리가, 꼬리를 잡으면 머리가 잠적하는 도마뱀식인게 특징으로 조직원들은 「삐삐」(무선호출기)까지 동원하는 등 치밀한 지능범들이다.
이같은 실정인데도 수사장비와 인력은 태부족. 이로 인해 잡은 범인도 공소유지가 어려워 풀어주고 마는 경우까지 있다.
부산의 경우 부산지검 전담검사 2명, 보사부 마약감시반 부산지소 직원 10여명이 단속인력의 전부며 경찰은 장비부족을 이유로 적극성을 보이지 않고 있다.
일본에서 개발된 TBPE검사법이 지난해 도입돼 수사에 다소 활기를 띠고 있으나 이마저 정확한 감정은 어려운 실정.
망국의 약가루를 뿌리뽑기 위해서는 사회적 경각심과 함께 보사부·검·경·과학수사연구소의 일원화된 수사체제 확보가 시급한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부산=조용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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