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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별 차등 통한 ‘광주형 일자리’ 고민해 볼 만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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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1호 19면

최저임금제도 개혁의 과제

일러스트=강일구 ilgook@hanmail.net

일러스트=강일구 ilgook@hanmail.net

2020년 최저임금 1만원 공약으로 시작한 문재인 정부가 내년 최저임금을 시급 기준으로 전년 대비 16.4% 인상한 7530원으로 확정 고시했다. 새 정부 경제철학의 핵심인 임금 주도 성장을 위한 기초로서 임금격차 완화와 소득분배 개선 및 노동생산성 향상 등을 위한 계기가 될 것이라 환영하는 편이 있는 반면, 노동력 수요 위축, 영세자영업의 줄도산 등에 따른 고용감소를 걱정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이러한 우려를 고려해 정부는 일자리 안정자금 2조 9707억원을 편성, 내년 1년간 최저임금 사업장을 지원하기로 했다.

정기 상여금 포함 방안 불가피 #최저임금 못 받는 사람 266만 명 #‘걸리면 시정한다’는 태도 고쳐야

최저임금은 국가가 노사 간 임금결정 과정에 개입해 최저수준을 정하고, 사용자에게 그 이상의 임금을 지급하도록 강제하는 제도다. 노동시장에 미치는 비용과 효과를 두고 논란은 있으나 사회안전망이 취약한 우리나라에서 저임금 근로자를 보호하기 위한 대표 제도라는 점에 이견이 없다. 하지만 매년 반복되는 임금 결정기준 논란과 임금수준을 둘러싼 노사 간 줄다리기는 적지 않은 사회적 비용이며, 적용을 강제하고 회피를 감시하기 위한 행정 비용도 만만치 않다.

최저임금 제도와 관련한 주요 다툼의 쟁점은 복잡한 임금 항목 가운데 어떤 것을 최저임금에 포함할 것인가(산입범위), 업종과 연령, 지역을 구분해 최저임금 수준을 달리 적용하는 것이 합리적인가(분리적용), 법적 최저요건임에도 이를 지급하지 못하는 사업장을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준수율 제고) 등이다.

연령·업종별 차등 지급은 쉽지 않아

이 가운데 산입범위 문제는 가장 복잡하고 첨예한 쟁점이다. 기업은 실질 임금총액이 최저임금을 초과하는데 최저임금 구성에 포함되는 임금항목이 협소해 법을 지키기 어렵다고 하소연한다. 반면 근로자는 1개월 지급주기를 초과하는 정기상여금이나 복리후생비까지 최저임금에 포함하면 임금 인상의 효과가 상쇄될 뿐 아니라 경우에 따라 실질임금 하락을 초래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이러한 논란의 이면에는 우리 기업 특유의 임금구조가 있다.

우리나라 기업의 임금구조는 여러 이유로 다른 나라에 비해 복잡하다. 직무급이 노동의 상대적 가치를 반영한 체계라면 우리 임금은 속인급의 연공형 체계로서 생계보존형 생활보조 수당들을 다수 포함해 설계됐다. 제한적이나마 직무 가치를 반영하기 위해 직무·직책 등 여러 수당도 활용했다. 구조로 보면 기본급이 적고 각종 수당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거미줄형 임금체계인 셈이다. 고용관계 또한 임금체계를 복잡하게 만든 원인 가운데 하나다. 해고 회피와 장기고용 관행에 기반해 성장한 우리 기업은 경기변동에 대응하는 방법으로 노동시간과 임금을 활용했다. 고용을 최소화 하는 대신 노동시간으로 물량을 조절했으며 임금체계 또한 상여금 비중이 큰 기형적 구조로 설계했다.

최저임금 산입범위 논란은 이렇듯 복잡한 임금체계의 산물이며, 따라서 궁극적 해법은 임금구조를 단순화하고 기본급 비중을 확대하는 것이다. 이를 위한 단계적 조치로 정기상여금과 복리후생적 임금(식대 등)을 최저임금에 포함하는 것은 불가피하며 궁극적으로 이들은 기본급으로 수렴해야 한다. 결과적으로는 통상임금과 최저임금에 산입되는 임금항목이 일치되는 것이며 임금구성이 단순화되는 셈이다. 노동계 입장에서 한두 해 조정 비용을 지불할 수 있으나 궁극적으로는 불리할 것이 없는 선택이다. 게다가 경기 변화가 심해 예측이 불가능한 시장조건 아래서 변동성 수당을 다수 포함한 임금체계는 노동자에게 유리하지 않다.

연령, 업종 및 지역별 최저임금을 구분 설정하는 문제도 논란이 많다. 연령과 업종별 최저임금 구분은 규범적·실질적 차원 모두에서 그 근거를 구성하기 어렵다. 연령의 경우 동일노동 차별의 이슈를 해소하기 어려우며, 업종 또한 지불능력 차이판단, 업종의 경계설정 등이 쉽지 않은 쟁점이다.

하지만 최저임금의 지역별 구분 적용은 적극적으로 고민해 볼 문제다. 무엇보다 지역으로의 산업 유치와 노동시장 활성화를 위한 중요한 제도적 기반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제도 도입을 위한 근거 마련과 방법 설계 그리고 기반을 조성하는 일 또한 상대적으로 용이하다. 지역별 정책임금의 구분 적용은 12개 광역, 79개 기초자치단체가 조례로 정해 도입한 ‘생활임금’을 통해 이미 실험되고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문재인 정부가 지역일자리 창출 전략으로 중요하게 고려해 온 소위 ‘광주형 일자리’ 모델이 지역내 일자리와 임금의 교환을 핵심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정책적 연계의 가능성도 크다.

위반 2058건 중 사법처리는 17개 불과

최저임금 미적용 사업장을 관리하는 일도 시급하다. 전체 근로자 가운데 최저임금보다 낮은 임금을 받는 근로자 비율을 ‘최저임금 미만율’이라 할 때 우리나라의 미만율은 지난해 8월 기준 13.6%, 근로자 수로는 약 266만 명이다. 지난해 최저임금 수혜 근로자가 342만 명 가량이니 혜택을 받는 사람과 거의 맞먹는 사람들이 최저임금을 받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통계적 논란은 있으나 최저임금법 위반 사업장이 다수 존재한다는 사실은 부인하기 어렵다.

이와 같이 미만율이 높아진 데에는 여러 원인이 있다. 가파른 임금인상이 초래한 불가피한 결과라는 주장도 있으나 최저임금이 가장 적게 올랐던(2.8%) 이명박 정권시절(2010년)에도 미만율이 11.5%에 달했던 점을 고려하면 임금수준과 미만율 사이에 인과성을 단정하기 어렵다. 오히려 높은 미만율은 느슨한 제도적 감시와 처벌 부재에 기인한다. 지난해 고용노동부 근로감독 결과 최저임금 위반 건수 2058건 가운데 사법처리 된 업체는 17개소에 불과하다. 98.9%가 시정조치로 종료됐으니 기업의 입장에서야 ‘걸리면 시정하기’ 전략이 최선인 셈이다.

미만율을 낮추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최저임금 회피에 따르는 처벌비용을 높여야 한다. 근로감독을 확대해 실태를 교정하는 일과 더불어 제도를 정비해 감시효과를 강화하는 일도 중요하다. 생계수단으로서 임금의 긴요성을 고려할 때 국가가 근로자에게 최저임금 부족분을 우선 지급하고 채무 사업장에 구상권을 행사하는 방법을 적극적으로 고민해야 한다. 또한 근로계약서상 임금 부칙에 ‘임금은 최저임금액 이상으로 정한다’고 명시함으로써 제도 이행을 약정하도록 하는 것도 중요한 수단이 될 수 있다.

최저임금과 관련 논란이 매년 반복되는 이유는 우리 근로자들의 후생이 기업복지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의 평균 복지지출이 국내총생산(GDP) 대비 20%를 넘는데 우리는 그 절반인 10% 수준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최저임금의 제도적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으며 사회적 관심과 논란이 불가피하다. 이러한 부담은 노사 모두에게 바람직스럽지 않다. 최저임금을 둘러싼 사회적 갈등을 해소하는 궁극적 해법은 사회안전망을 강화해 최저임금의 어깨를 가볍게 만드는 것이다.

권순원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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