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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비자금 수사 급물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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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대검 중수부의 현대 비자금 수사가 탄력을 받게 됐다. 권노갑 전 민주당 고문이 현대에서 받은 비자금을 관리해온 것으로 알려진 전직 무기거래상 김영완(해외 도피)씨가 진술서를 통해 '입'을 연 데다 權씨가 다른 기업에서 추가 비자금을 받은 정황이 포착됐기 때문이다.

수사 방향에 따라 현대라는 개별 기업의 비자금 사건이 아닌, 구 여권의 총체적인 정치자금 사건으로 번질 수 있는 상황이다.

지금까지의 검찰 수사를 종합하면 金씨는 현대가 2000년 4.13 총선을 전후해 權씨와 박지원 전 대통령 비서실장에게 각각 2백억원과 1백50억원을 전달하는 과정의 '다리' 역할을 했던 인물이다.

그러나 金씨는 대북 송금 의혹사건 특검법이 통과된 직후인 지난 3월 미국으로 도피해 관련 수사가 난항을 겪었다. 하지만 최근 金씨가 당시 현대 비자금이 건네진 과정을 소상하게 설명한 자료를 변호인을 통해 대검에 제출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金씨가 '權씨와 최근까지 오랫동안 아주 친하게 지내왔는데 나의 진술로 (금품수수 사실을 부인 중인)權씨가 어려운 처지가 될 것 같아 가슴이 아프다'는 심경을 밝혀왔다."

문효남 대검 수사기획관은 31일 金씨가 '현대 측이 權씨에게 주는 2백억원을 받아 보관하면서 총선 전에 몇 차례에 걸쳐 1백50억원을 權씨에게 갖다 줬으며 나머지 50억원은 계속 갖고 있다'고 알려왔음을 밝히면서 이렇게 소개했다.

金씨의 이 같은 해명은 "당시 총선자금 지원을 요청하는 權씨에게 金씨를 통해 현찰 2백억원을 줬다"는 고(故) 정몽헌 회장 및 이익치 전 현대증권 회장의 진술과 일치하는 것이다.

金씨는 해명서에서 "1998년부터 權씨와 함께 鄭회장을 수차례 만났다"고 밝혀 鄭회장을 인사차 한번 만났을 뿐이라는 權씨의 주장을 무색케 했다.

金씨조차 權씨의 결백주장을 뒤집는 증언을 내놓으면서 權씨에 대한 검찰의 압박도 한층 강해질 전망이다. 더욱이 權씨가 총선 당시 당 사무총장이던 김옥두 의원에게 1백10억원을 전달했다는 부분에 대해서도 金의원의 설명이 權씨 주장과 다르게 나옴에 따라 검찰은 權씨 측 해명 전반의 신빙성을 의심하고 있다.

특히 대검이 이날 "현대 비자금 2백억원 외에 權씨가 추가로 돈을 받은 혐의가 있어 기소 이후에도 수사를 계속하겠다"고 밝힌 것은 주목되는 부분이다.

검찰 주변에서는 權씨에게 추가 비자금을 준 기업이 SK해운이 아니냐는 주장이 설득력있게 나돌고 있다. 대검이 지난달 20일 금감위가 고발해온 이 기업의 분식회계 혐의에 대해 이례적으로 서울지검에 넘기지 않고 직접 조사에 나선 것도 이와 관련이 있다는 분석이다.

강주안.임장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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