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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장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브레즈네프」 서기장의 친구였고 전에 태평양 함대사령관을 지낸 퇴역장군 「게오르기·호로스차고프」가 아파트에서 살해된 사건이 83년 겨울 소련에서 있었다.
현장검증결과 아파트에서 없어진 것은 훈장이 가득 달린 장군의 제복뿐이었다.
곧 경찰은 암시장에서 훈장 밀매를 전문으로 하는 도둑의 짓이라고 단정했다.
소련에선 훈장이 돈이 된다. 상점에서도 최고훈장을 가진 사람에겐 특권을 준다. 줄의 맨 앞에 설 수 있다.
그런 만큼 퇴역 장군의 제복과 훈장 값은 암시장에서 1만5천루불(3천1백50만원)을 웃돈다. 퇴역장군은 30개 정도의 훈장을 가슴에 달고 다니니까 그럴 만도 하다.
훈장 중 가장 오랜 것은 영국의 「에드워드」3세가 1348년에 만든 가터 훈장이다. 그러나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것은 1802년 프랑스의 「나폴레옹」이 집정관시대에 만든 레종 도뇌르 훈장이다.
나라가 주는 영예라는 점에서 훈장은 위력을 발휘했다. 특히 귀족출신에 대한 콤플렉스를 유달리 느끼는 사람들에겐 큰 정신적 보상이 됐다.
하지만 너무 흔해지니까 그것도 가치가 크게 떨어졌다.
아예 훈장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았던 사람도 있다. 프랑스수상 「브리앙」도 그런 사람이다. 어떤 나라 외교관이 『우리 나라의 훈장을 드리고 싶습니다』고 의향을 묻자 「브리앙」은 황급히 이렇게 거절했다.
『아시다시피 나는 독신주의라서 내 단추구멍도 순결하게 지키고 싶단 말씀이야』
「루스벨트」 대통령이 주는 훈장을 『그걸 받을만한 개인적 영웅주의를 발휘한 일이 없다』고 거절한 「아이젠하워」 장군의 일화도 전한다.
엊그제 우리 국무회의가 현직 대통령을 비롯한 전·현직 국무위원 등 총96명에게 훈장을 주기로 의결했다.
훈장이 아무리 좋기로 서니 국무회의가 스스로 훈장을 자기가슴에 달기로 결정했다니 너무 한다는 느낌이다.
임기가 며칠 안 남았는데 서둘러 영예까지 털어 가겠다는 정신상태가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다.
이젠 부끄러움도 알만한 때가 되었는데 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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