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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전성 테러'에 이라크 충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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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지난달 29일 나자프시에서 발생한 테러는 아야툴라 모하마드 바케르 알하킴을 비롯한 시아파 신도들을 겨냥한 '내전성 테러'였다. 미군.유엔에 이어 이라크인을 공격한 것이다.

때문에 이번 테러는 미국을 비롯한 서방의 전후 이라크 통치뿐 아니라 이라크 내 정치상황에도 대혼란을 가져올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충격, '내전성 테러'=이라크 중부의 시아파 최고 성지인 이맘 알리 사원에서 발생한 차량 폭탄테러로 알하킴을 포함해 최소 86명이 숨지고 수백명이 부상했다.

이라크인을 대상으로 한 대규모 테러 소식을 접한 이라크는 충격에 휩싸여 있다. 성격이 정반대인 반연합군.반바트당 시위가 끊이지 않고 있다.

나자프.바그다드.바스라 등 대도시에서는 시아파 주민 수천여명이 몰려나와 범인들에 대한 복수를 다짐하는 시위를 벌였다. 31일 바그다드에서 열린 알하킴 장례식에는 30만명 이상의 이라크인이 몰렸다.

이번 테러로 이라크의 폭력사태가 일파만파로 확대돼 내전과 같은 극한 상황으로 치달을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알카에다 관련설=이라크 수사 당국은 현재 19명의 용의자에 대한 조사를 진행 중이라고 아랍 언론들은 보도했다.

수사 당국은 이들 중 상당수가 파키스탄.쿠웨이트.사우디아라비아.팔레스타인 출신으로 모두 알카에다에 연루됐다고 31일 밝혔다. 당국은 또 이들이 18세기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시작돼 사우디아라비아 왕국 건국이념이 되기도 한 엄격한 수니파 이슬람 원리주의인 와하비 운동을 추종하는 세력이라고 덧붙였다.

나자프시 경찰 당국은 또 "7백kg 이상의 폭발물이 사용된 이번 테러가 이라크 유엔건물 폭탄테러와 유사하다"고 밝혀 알카에다의 소행일 가능성을 강력히 주장했다.

그러나 아랍 언론은 알카에다의 단독범행으로 단정하지는 않으면서 다양한 배후세력을 제시했다. 알아라비야 방송은 31일 수니파 후세인 잔당과 알카에다 외에 알하킴의 영향력 확대를 우려하고 종파 내 주도권을 장악하려는 다른 시아파 세력을 세번째 유력한 배후세력으로 언급했다.

◇'이라크의 호메이니' 알하킴='이라크의 호메이니'라고 불리는 알하킴은 1939년 나자프의 이슬람 학자 집안에서 출생, 어려서부터 이슬람교육을 받았다. 75년 이후 알하킴은 바트당과 사담 후세인의 득세에 저항하면서 학자에서 투쟁가로 변신했다.

바트당에 대한 반대운동을 전개하면서 그는 투옥과 고문을 경험하기도 했다. 80년 이란으로 망명한 알하킴은 이란의 지원 아래 이슬람혁명 최고위원회(SCIRI)를 창설하고 1만~1만5천여명 규모의 무장 민병대인 '바드르 여단'을 조직해 반후세인 무장저항 운동을 주도해 왔다.

그가 이란식 신정국가를 건설할 가능성이 있다는 미국과 연합군정의 우려와 달리 이라크에 돌아온 알하킴은 예상외로 온건했다. 알하킴은 자신의 동생인 압둘 아지즈 알하킴을 이라크 과도통치위에 참여하는 것을 허용해 다른 과격 이슬람 세력과 달리 현재의 이라크 전후통치를 인정하는 입장을 취했다.

이 때문에 그는 시아파 경쟁 단체들과 SCIRI 내 과격세력들로부터 미군에 부역하는 '반역자'라는 비난을 받아왔다.

카이로=서정민 특파원(중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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