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국민은 세계보건기구(WHO)가 정한 권고 기준의 두 배가 넘는 미세먼지(PM-10)를 일상적으로 마시고 사는 것으로 나타났다.
WHO의 연평균 권고기준은 ㎥당 20㎍(마이크로그램, 1㎍=100만분이 1g)인데 비해 우리 국민이 숨 쉬는 공기 속 미세먼지 양은 48㎍/㎥로 분석됐다.
중앙일보 환경팀은 국립환경과학원이 매년 발간하는 대기환경연보를 바탕으로 대기오염 측정망이 갖춰져 있는 서울 등 전국 78개 도시의 2014~2016년 3년 치 미세먼지(PM-10) 평균농도를 계산했다.
해마다 달라지는 기상 조건에 따라 미세먼지 오염도 역시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3년 평균치를 산출해 비교했다.
전체 78개 도시의 평균치는 49㎍/㎥이었으며, 서울은 전국 평균보다 나은 46㎍/㎥이었다.
도시별로는 경기도 이천·평택·포천 3곳이 3년 평균 62㎍/㎥로 오염도가 가장 높았는데, 소규모 공장이나 노천 소각 등이 원인으로 지목됐다.
전남 순천과 여수가 35㎍/㎥로 오염도가 가장 낮았으며, 이들을 포함해 남해안이나 동해안 등 해안도시들의 공기가 상대적으로 깨끗했다.
2014~2016년 78개 도시별 오염도·인구분포 #환경과학원 자료로 중앙일보가 노출농도 산출 #오염 평균은 49㎍/㎥, 평균 노출 수준 48㎍/㎥ #WHO 연평균 권고치 20㎍/㎥ 달성한 곳 없어 #오염 심한 곳 이천·평택·포천 수도권 도시들 #순천·여수 등 남해안 도시가 공기 오염 덜해
하지만 WHO 권고기준인 20㎍/㎥를 달성한 지역은 한 곳도 없었다.
국내 연평균 환경기준인 50㎍/㎥를 초과한 곳은 30개 도시였고, 이들 지역에 거주하는 인구는 전체 국민의 25%인 1288만명으로 집계됐다.
이 같은 도시별 오염도와 각 도시의 주민등록인구를 고려해 국민 전체의 평균적인 노출 농도를 산출한 결과, 48㎍/㎥로 나타났다.
평균 노출 농도 산출시, 측정망이 갖춰지지 않은 지역의 인구 482만명에 대해서는 전국 평균 오염도인 49㎍/㎥를 적용했다.
2010년 WHO가 발표한 각국의 미세먼지 노출 농도를 보면 일본과 영국은 21㎍/㎥, 독일 23㎍/㎥, 미국 20㎍/㎥, 캐나다 11㎍/㎥ 등이었다.
반면 개발도상국인 중국은 90㎍/㎥, 멕시코 79㎍/㎥, 방글라데시 163㎍/㎥, 파키스탄 282㎍/㎥ 등이었다.
먼지 입자 크기가 더 작은 초미세먼지(PM-2.5)의 경우 아직 관측망이 부족한 데다, 측정치가 빠진 경우도 많았다.
지난해 기준으로 50% 이상 관측값이 있는 33개 도시를 대상으로 초미세먼지 오염을 비교한 결과, 오염이 가장 심한 곳은 전북 익산으로 36㎍/㎥이었다.
또 강원도 원주가 35㎍/㎥, 경기도 김포와 전북 고창이 33㎍/㎥로 뒤를 이었다.
33개 도시 전체 평균치는 26㎍/㎥로 국내 연간 환경기준 25㎍/㎥를 초과했다.
가장 오염도가 낮은 곳은 19㎍/㎥인 제주도 서귀포였으나, WHO 초미세먼지 권고기준인 10㎍/㎥를 웃돌았다. 서울은 26㎍/㎥이었다.
단국대 의대 예방의학과 권호장 교수는 "WHO 기준은 미세먼지로 인한 조기 사망을 초래하지 않는 범위까지의 최대 허용 수준"이라며 "이를 초과한 한국의 경우 미세먼지로 인한 초과사망이 연간 1만8000명 수준으로 추산된다"고 말했다.
권 교수가 인용한 초과사망 숫자는 미국의 비영리 민간 환경보건단체인 건강영향연구소(HEI)가 초미세먼지 오염도를 바탕으로 추정한 숫자다.
인하대 임종한 직업환경의학과 교수도 "WHO 권고 기준을 초과했다는 것은 호흡기질환이나 심혈관질환을 일으킬 수 있고, 조기사망으로 이어질 수 있다"며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유일하게 2060년 기준 100만명 당 1000명 이상이 사망할 것으로 예상되는 나라"라고 지적했다.
한국은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는 데다 국토가 좁고 인구밀도가 높아 미세먼지 오염에 더 많이 노출된다는 설명이다.
임 교수는 "미세먼지 오염도는 선진국이냐를 판가름하는 잣대가 될 수도 있다"며 "각 나라의 산업구조와 에너지·교통·보건 정책이 어우러진 산물이고 국격(國格)"이라고 덧붙였다.
정부도 지난 9월 2022년까지 대기오염 배출을 30% 줄이겠다는 내용의 미세먼지 종합대책을 내놓기도 했다.
하지만 30%를 줄이더라도 안전한 수준으로 대기오염이 개선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환경부 홍동곤 대기환경정책과장은 "5년 내 30% 줄이는 것은 가능한 선에서의 최대 목표"리며 "내년 상반기부터 초미세먼지 환경기준을 미국·일본 수준으로 강화할 예정이고, 초미세먼지 측정망도 확충해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초미세먼지 24시간 기준은 현행 50㎍/㎥에서 35㎍/㎥로, 연평균기준은 25㎍/㎥에서 15㎍/㎥로 조정된다.
WHO 기준보다 느슨한 미국·일본 수준으로 기준을 강화해도 당장은 이를 충족하는 도시는 없는 상황이다.
서울시립대 환경공학과 동종인 교수는 "환경기준치는 달성 가능성보다 국민의 건강을 지키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하는 만큼 강화하는 것 자체는 옳다"며 "대신 오염물질배출을 줄이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현재 제대로 파악이 되지 않은 소규모 대기오염 배출원을 찾아내 차단하지 않는다면 정부의 30% 배출 저감 목표는 의미가 없다는 지적이다.
한편, 환경부는 지난해 말 현재 264개였던 대기오염 측정망을 올 연말까지 325개로, 2020년까지 505곳으로 늘릴 계획이다.
특히 지난해까지는 전체 측정망의 절반 수준만 초미세먼지를 측정할 수 있었으나, 연말에는 325곳 전체에서 초미세먼지 측정이 가능해질 전망이다.
강찬수 환경전문기자kang.chansu@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