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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계 2세들 "비·동방신기 CD는 필수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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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아시아에서 만들어진 DVD·비디오만 전문으로 판매하는 LA의 한 가게에서 한국인 매니저(오른쪽)가 미국인 고객에게 한국영화 '신라의 달밤' DVD를 설명해주고 있다. 지난해까지 한쪽 귀퉁이에 있던 한국작품 코너가 찾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매장 한가운데로 옮겨졌다. LA=김상진 기자

한류가 아시아권을 넘어 태평양을 건넜다. 미국의 서부해안 로스앤젤레스에 이미 상륙했다. 일단 로스앤젤레스의 아시안 커뮤니티에 불이 붙었다. 그중에서도 중국계가 열광적이다. 점차 미국 백인사회로 스며들면서 매니어 그룹들이 만들어지고 있다.

◆ LA=미국 한류의 진원

"제 몸속에는 한류가 흐르나 봐요."

중국계 2세 카린 쳉(31)은 '한류'에 사로잡혔다. 드라마.영화.음악은 물론 매운 한국 음식에 소주 칵테일까지 즐긴다. 머리 모양이나 옷차림도 한국 연예인들의 스타일을 따르고 있다. 그는 "지금까지 수집해 놓은 수백 장의 한국영화 DVD와 가요 CD가 재산목록 1호"라고 말한다. AZN-TV와 이매진 아시아 TV 등 많은 중국계 케이블 TV는 저녁 황금시간대에 대장금.풀하우스.옥탑방 고양이 등 한국 드라마를 방영한다. 비.동방신기.세븐 등의 노래가 담긴 CD는 중국계 젊은이들의 필수 애장품이다.

한류는 중국계 커뮤니티를 넘어 확산일로다. LA 시청에서 일하는 백인 여성 로이나 에거(64)는 얼마 전 TV에서 영어 자막이 들어간 한국 드라마를 우연히 본 이후 열렬한 한류 팬이 됐다. 그는 "흑과 백, 선과 악 등 이분법으로 나눠지는 할리우드식 미국 문화에 식상한 미국인들이 동서양의 문화를 절묘하게 엮어낸 한국식 감성에 환호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 한국어 배우기 붐=한류의 증거

최근 '한국 연예인이 좋아서' '한국 드라마를 한국어로 이해하고 싶어서' 등의 이유로 한국어를 배우는 청소년이 부쩍 늘고 있다. 샌프란시스코의 명문 로웰고등학교의 경우 한국어 수강신청생이 급증해 지난 가을학기부터 한국어반을 2개에서 3개로 늘렸다. 엘살바도르계 샌디 마티네즈(15.토런스 고교)는 "한국 쇼 프로그램 'X맨'을 비디오로 보면서 한국 연예인들이 좋아졌고 내친김에 한국어반에 등록했다"고 말했다. '태극기 휘날리며'같은 한국 영화가 미국에서 상영되면 빠짐없이 관람하는 것도 한국어반 학생들의 주요 일과다. 로웰고 한국어교사인 조아미씨는 "한국 문화에 대한 인지도가 높아진 타 인종 학생들이 점차 한국어 수업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며 "한류가 한국어에 대한 선호도를 높이는 데 큰 힘을 발휘했음을 실감한다"고 전했다.

◆ 같이 뜨는 신한류=미국판 자생 한류

김윤진, 대니얼 대 김, 샌드라 오, 존 조, 릭 윤, 윌 윤 리, 마거릿 조, 바비 리….

진입장벽 높기로 악명 높은 할리우드에 진출해 입지를 굳힌 대표적인 한국계 연예인들이다. 이외에 에스터 채는 ABC 방송이 프라임 타임에 맞춰 새로 편성한 드라마 '나이트 스토커'의 에피소드 두 편에서 당당히 주연 자리를 꿰찼다. 그는 "한류 때문에 가능한 배역"이라고 말했다. 이들 한국계 미국인이 한류의 미국 상륙에 힘입어 새로운 한류, '신(新)한류'를 만들어 내고 있다. 한인 1.5세나 2세 등이 미국에서 스스로 일궈낸 미국판 자생 한류다. 이들은 한인으로서의 아이덴티티를 분명히 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릭 윤의 동생 칼 윤은 "한국 영화라면 배역을 가리지 않고 출연하겠다"고 말한다. 13일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리는 한류축제인 '파워코리아 2006'을 주관하는 스노이월드의 박의식 대표는 "김윤진과 대니얼 대 김이 전야제에 참석하는 덕분에 미국 연예산업 관계자 섭외가 수월해졌다. 할리우드의 관심이 홍콩이나 일본계 배우에서 한국계로 이동하고 있다"고 한다.

◆ 한류=돈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 로스앤젤레스 사무소가 지난해 7월 말까지 집계한 통계에 따르면 한국 영화의 리메이크 판권 수입은 1000만 달러에 육박하고 있다. 같은 기간 개봉 15주 만에 110만 달러의 흥행수입을 올린 '태극기 휘날리며'를 비롯해 미국에 개봉된 한국 직배영화 9개가 거둔 흥행수입도 600만 달러에 달한다. 한국방송사들은 ANZ-TV 등 중국계 케이블 TV에 한국 드라마를 회당 500~3000달러에 판다. 시리즈 하나로 최소 2만 달러를 번다.

삼성경제연구소는 한류 열풍에 힘입어 올해 한국산 방송 콘텐트의 수출액이 사상 처음 1억 달러를 넘어설 것이라는 전망과 함께 보아.비.세븐 등 한류스타 3명이 음반.공연.CF 등을 통해 벌어들일 미래의 경제적 가치가 최소 20억 달러(약 2조원) 이상일 것으로 예상했다.

문화콘텐츠진흥원 로스앤젤레스 사무소의 전항우 소장은 "일본은 스시와 가부키의 집중 홍보를 통해 국가 이미지 자체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켰다"며 "한국과 미주 한인사회도 상품과 문화가 접목된 한류의 활용방안을 모색할 시기가 됐다"고 강조했다.

LA지사=노세희.황준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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