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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민촌 강제 철거 베이징 당서기 “기층 민중 대할 땐 총칼 빼 들어야”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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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중국의 농촌에서 베이징으로 상경한 농민공들이 주거지를 배회하고 있다. [베이징 AFP=연합뉴스]

중국의 농촌에서 베이징으로 상경한 농민공들이 주거지를 배회하고 있다. [베이징 AFP=연합뉴스]

“기층 민중을 대하는 데는 진짜 총칼을 빼들고(眞刀眞槍) 칼에 피를 묻히듯(刺刀見紅) 눈에는 눈으로 대응해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칼에 피 묻히듯 대응해야 문제해결” #간부질책 동영상 공개돼 논란 확산 #며칠 전 하층민 찾아 위로하다 돌변 #시진핑 20년 보좌, 서열 수직 상승

최근 빈민촌 강제철거로 반발을 사고 있는 차이치(蔡奇·60) 중국 베이징시 당서기가 직원들을 대상으로 한 내부 발언이 공개되면서 큰 비난을 받고 있다고 홍콩 명보가 6일 보도했다.

중국 동영상 사이트와 유튜브를 통해 유포된 4분여 길이의 동영상에서 차이치 서기는 “만일 이런 태도로 일하지 않으면 조만간 이런 일(대형 화재)이 다시 발생할 것”이라며 “베이징에는 작은 일이 없다. 모두 큰일이란 자세로 각 구 당·정부 일인자가 직접 관련 부처 감독을 책임지라”고 호통쳤다. 특히 “진짜 총칼”을 언급하는 대목에서는 손으로 책상을 내리치며 안이한 간부를 질책하기도 했다.

이는 차이 서기가 공개 행보에 보였던 모습과는 딴판이다. 차이 서기는 지난 3일 천지닝(陳吉寧) 시장 등 간부들과 시청(西城)구 시찰에 나서 30개 민생 조치의 이행 현황을 점검하면서 안후이(安徽)성에서 온 구두 수선공을 만나 “당신이 제공하는 서비스는 주민 생활과 떼려야 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이 도시에 꼭 필요한 것”이라며 “노고에 감사한다”고 말했다.

차이 서기는 푸젠(福建)·저장(浙江)성을 거치며 20여 년 동안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을 보좌해 온 부하로 19차 당대회를 통해 평당원에서 권력 서열 25위의 정치국원으로 수직 상승했다.

이번 하층민 퇴거 조치는 시 주석의 질책이 영향을 끼쳤다고 한다. 지난달 10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방중 기간 베이징 외곽 순이(順義)구 리차오(李橋)진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시진핑 판공실은 당시 차이 서기에게 “대체 누구에게 화재를 보여주려 하나. 당장 대책을 마련하라”고 질책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8일 뒤에도 남부 다싱(大興)구 이주 노동자인 농민공 밀집지역에서 대규모 화재가 발생해 19명이 사망했다. 그러자 베이징시는 화재 예방을 이유로 ‘디돤런커우(低端人口·하층민) 정리작업’이라고 명명한 대규모 빈민촌 철거작업에 돌입했다. 철거반원은 주민들에게 하루의 시간도 주지 않고 중장비를 동원해 시내 135개 지역에 대한 철거작업에 들어갔다.

이런 밀어붙이기식 농민공 퇴출에 반발 여론이 거세게 일어났다. 인민대·베이징대 학생을 중심으로 인터넷에 “잔혹한 디돤런커우 퇴출 즉각 정지”를 호소하는 서명에 들어갔다. 하지만 정부는 ‘디돤런커우’를 금지어로 지정하고 관련 게시물을 모두 삭제했다.

베이징시는 이와 함께 120여 개의 도소매 시장 철거도 시작했다. 도시정비 작업에 따라 25개 농수산물 시장을 올해 안에 폐쇄할 방침이다. 갑작스러운 시장 폐쇄 방침에 생계 대책을 세우지 못한 상인들은 “우리는 앞으로 어떻게 살란 말이냐”고 강력히 항의하기도 했다.

홍콩의 중국 인권민주화운동정보센터는 6일 차이 서기의 “칼에 피를 묻히라”는 발언이 형사법에 저촉된다며 비판했다. 홍콩의 한 교회는 5일 베이징시가 강제 퇴거당한 하층민에 대해 사과하고 보상할 것을 요구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이들은 “하층민 강제 퇴거가 베이징뿐 아니라 상하이·푸젠·광저우(廣州)·선전(深圳) 등이 모방하면서 경쟁적으로 확산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베이징의 하층민 퇴거 조치가 저임금 택배 기사에 의지해 인터넷 쇼핑몰 사업을 펼쳐온 알리바바에게 큰 타격이 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5일(현지시각) “알리바바의 배송 시스템이 현재 베이징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에 아주 취약하다”며 “더 많은 인건비를 지불하지 않는다면 경쟁사에 고객을 뺏길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한편 스모그 퇴치를 위해 북부 지역의 석탄 난방을 전기로 바꾸는 정책을 밀어붙이면서 액화천연가스(LNG) 부족 사태도 벌어졌다. ‘가스대란’으로 허베이(河北)성 바오딩(保定)시 취양(曲陽)현의 초등학교는 교실이 너무 추워 햇볕을 쬐고자 운동장에서 공부하는 일까지 벌어졌다고 명보가 6일 사진과 함께 보도했다.

베이징=신경진 특파원 shin.kyung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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