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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토대지진 학살이란] 日 자경단에 무차별 희생당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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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1923년 9월 1일 오전 11시58분. 도쿄.가나가와(神奈川).사이타마(埼玉) 등 간토 지역에 진도 6 이상의 지진이 발생했다. 목조 건물에 불이 나고 18시간 이상 화재가 계속되면서 도쿄의 3분의 2 이상인 46만여 가옥이 파손됐다. 9만여명이 죽고 13만여명이 부상했다.

1일 오후 "조선인들이 방화.폭동을 일으키고 우물에 독약을 던졌다. 강도.강간도 한다"는 유언비어가 퍼졌다. 순식간에 3천6백여 마을에서 전직 군인과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총.칼로 무장한 자경단이 조직됐고, 조선인 사냥.학살'이 시작됐다.

내무성은 지진 발생 이틀 후 "도쿄 부근 조선인들이 불을 지르고 폭탄을 투척하려 하니 엄중 조치하라"고 전국에 지시했다. 경찰.군인.자경단 등은 버스.열차 안에서 승객들에게 어려운 일본말을 시킨 후 발음이 이상하면 끌어내 살해하기도 했다.

아사히(朝日)신문은 31일 "일본 정부는 조선인 2만3천여명을 보호.격리 명분으로 여러 곳에 가뒀는데 일부는 보호시설에서, 일부는 민간인에 인도돼 살해당했다"고 적었다. 이렇게 숨진 조선인은 총 6천여명에 이른다.

유언비어는 곳곳에서 사실무근으로 밝혀졌다. 심지어 소방대조차 지진 발생 닷새 후 "불을 끈 23곳 가운데 방화는 없었고, 조선인들이 폭탄을 투척할 장소라고 신고받은 장소를 조사해 보니 분필 표시는 청소원.신문배달원.우우 배달원 등이 한 것이었다"고 밝혔다.

유언비어는 일본 내무성.경찰 총책임자들이 고의적으로 흘린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당시 일본은 경제난에다 사회주의 활동이 활발해지고 내각이 교체되는 등 정국.시국이 어수선했다.

이런 때 대지진이 발생하자 조선인들을 희생양으로 삼아 국민의 불만을 해소하려 했다는 것이 학자들이 정설이다. 일본 정부는 지금까지 조선인 학살에 대해 배상은커녕 사과한 적도 없다. 주요 일본 언론들도 대부분 외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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