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선생님에게 경찰봉을?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6면

그런데 최근 여당과 정부가 학교폭력에 대한 대책으로 일부 교사에게 청소년의 출입이 잦은 유해업소의 단속권 및 학부모 소환권, 벌금형 부과권 등을 행사할 수 있는 준(準)사법경찰권을 부여하겠다는 방침을 밝혀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다. 그러나 이 계획은 좀 더 신중한 검토와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본다.

이 방안은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가 올해 초 신년 연설에서 선언한 이른바 '사회적 질서 회복 운동(The Respect Action Plan)'에서 착안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영국 정부는 "사회적 무질서를 퇴치하고, 공동체 의식을 회복한다"는 슬로건 아래 이 운동을 여섯 가지의 영역으로 나눠 추진 중이다.

특히 이 가운데에는 학교 당국에 무단결석과 학교 내에서 일탈적 행동을 일삼는 학생에 대해 정학이나 퇴학 등의 엄격한 제재 결정을 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고, 관련 학생의 부모에게도 책임을 물어 학교교육을 정상화하겠다는 교육정책도 포함돼 있다. 하지만 영국의 경우 엄격한 출석 통제와 문제 학생에 대한 제재 규정의 강화를 주요 정책적 과제로 선정한 것이지, 우리 정부의 발표안처럼 학교 밖 업소에 대한 사법적 활동권이나 부모소환권을 교사에게 부과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에서 상당한 차이가 있다.

학교폭력이 주로 학교 밖에서 행해지기 때문에 교사에게 준사법경찰권을 부여해야 한다는 발상도 좀 더 숙고해야 한다. 지난해 경찰청이 학교폭력의 가해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폭력이 행해진 장소는 학교 밖이 51%이고 나머지가 교내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학교폭력이 학교 내외에서 거의 비슷하게 발생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으로 오히려 가해자와 피해자가 같은 학교의 동급생이거나 선후배인 관계가 대부분이라는 점 등을 감안한다면 평상시 교사의 적극적인 지도나 상담이 부족했던 것은 아닌지 교육 당국으로서는 반성하고 자문해 볼 일이다.

또한 교사의 기본적인 사명이 학생에게 지식을 전달하고, 학생의 품성을 바르게 지도하는 것이라고 할 때 경찰권 행사를 교사 본연의 교육적 사명이라 하기 어려우며, 가르치기에도 시간이 부족한 형편에 유흥업소 단속 등의 부차적인 업무까지 교사에게 부과하는 것은 탁상행정적 소치라는 현직 교사들의 볼멘 소리도 간과해선 안 된다.

나아가 교사마저도 경찰권을 행사해 문제 학생들의 처벌만을 고집한다면 수많은 소년비행범을 양산할 것이며, 이는 경미한 범죄를 저지른 소년범에 대해 교화와 선도를 우선하는 이른바 '다이버전(diversion, 전환) 정책을 추구하는 현대 민주국가의 추세에도 맞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현실적으로 과연 교사가 단독으로 신분증만을 패용한 채 강력하게 항의를 하는 업주들을 저지하며 단속활동을 벌이거나, 흉기를 휘두르며 패싸움을 벌이는 현장에서 그 역할을 다 할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한다. 결국 교사의 안전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교사에게도 정복 경찰처럼 호신용 장구를 지급해야 할 것이다. 장래에 우리의 자녀들이 교과서나 출석부 대신 경찰봉을 들고, 방탄복을 입은 교사를 학창 시절 스승의 모습으로 떠올릴 것을 생각하면 안타깝고, 또 당황스럽다.

이런 여러 문제를 안고 있는 특정 교사에 대한 준사법경찰권 부여보다는 학교폭력특별법 상의 책임교사제를 제대로 시행하겠다는 정책적 일관성이 필요하다. 다만 미국의 경우처럼 교사자격증 소지자를 일반 소년경찰로 채용하고 이들이 관할 학교를 주기적으로 방문해 학생들을 상담, 계도케 하는 연락관 제도는 교사와 경찰로서의 전문성을 동시에 살릴 수 있어 보다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도 있다.

허경미 계명대 교수·경찰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