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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나이 벌써 사십-박경옥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정말 분주하고 정신없던 한해를 꿀꺽 삼키고 무진년의 붉은 해가 불쑥 솟았다.
돌이켜 보면 눈물이 찔끔거려지는 지난날. 작년은 우리에게 결실이 많은 중간심사발표회 같은 한해였었다.
나는 열심히 기계부를 적었다하여 가계부 가록상을 받았고, 남편은 직장에서 신임 받아 해외 교류세미나에 회사대표로 참석하는 영광도 있었고, 끈기있는 5학년짜리 아들은 태권도 검은 띠도 받았다.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가장 큰 일은, 덜먹고 덜입고 덜쓰며 모은 돈으로 우리 다섯 식구가 염원했던 아파트를 마련했다는 사실일게다.
아이들이 어리던 70년대 중반. 화산터지듯 치솟는 부동산 투기붐에 방한간 얻지 못해 봇짐지고 애들 셋 데리고 이리 밀리고 저리 밀리던 형편을 생각하면 얼마나 대견한 일인가.
그사이 귀밑에 하얀 머리카락들이 숨어있었다는걸 이제야 알게 됐다.
가진 것 없이 남같이 살아보자고 나이도 잊은채 허겁지겁 뛰어오는 동안 어느새 내 나이 사십.
여자들이 결코 들어서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중년의 나이다.
중년의 공백은 유혹의 시기여서 자칫하면 미로에서 길을 잃고 헤매기 똑 참한 나이라던가.
지난날이 허무하고 남은 날이 자학스러워 자꾸만 우울해지는 나이.
초록도 회색도 아니기에 끝낼 수도 시작할 수도 없는 어증띤 나이이기에 엉거주춤한 자세로 서러워질 수도 있는 나이. 그러나 언제까지나 주춤거릴 수만은 없으니 안간힘을 써서라도 무언가 이룸을 위하여 다시금 발돋움해야 하지 않을까.
활기찬 직장에서 새롭게 발전하는 멋쟁이 남편에게 허리통 굵어진 미련한 여편네로 보이지 않기 위해서도 그렇고, 한참 감수성 예민한 아이들 눈에 열심히 살아가는 엄마의 모습을 보이기 위해서도 그렇다.
「링컨」대통령도 나이 사십이면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한다고 했지만, 과연 진지하게 삶에 대한 스스로의 책임을 다져야할 시기가 아닌가 싶다. <서울 도곡동 진달래아파트2 동40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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