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류 정론|이정복<서울대교수·정치학>|인권보호는 국가의 의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9면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부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 5공화국 헌법 제9조이고 새 헌법의 제10조이다.
대한민국 헌법은 우리 국민 개개인이 인간으로서의 천부인권을 가지고 있고 국가는 이를 보호할 의무가 있다고 명백히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 국민은 국가에 대해 납세와 병역의 의무를 가지고 있으나 국가는 국민에 대해 인권보호의 의무를 지고 있는 것이다.
무신년의 정월은 국가가 보호할 의무가 있는 국민의 기본적 인권을 잘 보호하고있지 못할 뿐만 아니라 이를 침해하는 경우까지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나타 내준 충격적인 달이었다.
바로 며칠 전 같은 동에서 1시간 새에 일어난 3건의 노상강도사건, 2주전 한 어른의 피납 살해사건, 3주전 가평 세 어린이 살해사건, 그리고 그 전의 혜준양 유괴살해사건 등은 모두 국가가 국민의 기본적 인권인 생명권과 안전권을 잘 보호하고 있지 못하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 사건이었다. 경찰은 국가의 치안기관으로 이와 같은 강도·살인·유괴사건을 예방하지 못한 책임을 질 수밖에 없지만 국가는 두가지 점에서 보다 큰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첫째로 경찰이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하는 치안기관으로서의 능력을 발전시키지 못한 큰 원인중의하나가 국가권력의 성격에 있었기 때문이다. 제1공화국이래 최근에 이르기까지 한국의 국가권력은 정통성에 문제를 가지고 있었고 이러한 상황에서 경찰은 주지하고 있는바와 같이 처음부터 국가권력의 유지수단으로 전락하였던 것이다.
절도나 강도사건을 신고해 보아야 별로 큰 관심을 표명하지 않고 유괴살인사건의 범인을 잡았다가도 놓치고 또 이에 대해 허위보고도 서슴지 않는 경찰에 대해 분격하는 국민들이 많다. 그러나 경찰들이 지정으로 만든 것은 국가권력이라는 것을 우리는 상기할 필요가 있겠다. 아니, 경찰의 성격은 바로 국가권력의 성격을 반영하는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둘째로 강도·살인·유괴사건의 경우 특히 순진 무구한 어린이들의 유괴나 살해사건은 이를 저지른 범인들의 비도덕성이나 비인간성도 문제지만 이와 같이 극악무도한 범인들이 나올 수 있는 국가나 사회구조도 문제가 되기 때문에 국가는 이러한 사건에 일단의 책임을 지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우리사회가 온정으로 가득 차고 모든 국민이 새 헌법 제34조에서와 같이 인간다운 생활을 향유할 수 있다면 이러한 범죄의 발생률은 현저히 감소할 것이고 또 1백만∼2백만원을 마련하기 위해 어린이들을 유괴하고 살해하는 것과 같은 범죄는 좀처럼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우리사회는 현재 자본주의 사회가 빠지기 쉬운 온갖 타락 속에 빠져있고 국가가 우리사회를 이와 같은 타락으로부터 구해내지 못한데 대해 국가권력은 책임을 져야할 것이다.
국가가 국민의 생명권과 안전권을 갈 보호하지 못하는 건 마땅히 찰 해야 할 일을 잘하지 못한 책임을 질 일이다. 그러나 국가권력이 이보다도 더 크게 책임을 져야될 일이 있는데 그것은 국가가 결코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한 경우이다.
다시 밝혀진 박종철군고문 치사 범인 은폐조작사건, 고문이 크게 문제가 되고있는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다시 일어난 명노열군(16)에 대한 고문과 그의 뇌사사건, 성고문사건 재정신청이 대법원에서 1년 이상「낮잠」을 자고 있다는 보도 등은 모두 이번 달의 사건으로 국민의 기본적 인권을 보호할 의무가 있는 국가권력이 오히려 이를 침해하고 있다는 것을 나타내주는 일이다.
국가는 국가나 그 권력자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의 인권보호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국가가 오랫동안 적극 추진해 온 경제개발도 우리들에게 인간다운 삶을, 다시 말해 인권을 보장해주기 위한 수단인 것이다. 국가는 국민의 인권보호를 위한 수단이지 그 자체가 목적은 아니다.
이러한 국가기관이 오히려 국민들의 인권을 침해한다면 그것이 국가의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한다는 것은 작년 6월 이전의 정치상황을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대통령은 국가의 최고권력자로서 헌법을 수호할 책무를 가지고 있다.
노차기대통령은 국가의 인권보호 의무를 충실히 수행하여 제6공화국을 인권공화국으로 만들어 주기를 우리 국민은 바라고 있다.「권위주의시대의 청산」「민주화」의 목표도 모두 인권보호에 귀일 되는 목표다. 잘사는 사람이나 못사는 사람이나 기본적인 인권을 보장받는 시대가 도래하기를 고대해 마지않는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