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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의 천국"…기업인사도 좌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9면

첨단기술개발과 관련산업이 번창하고 있는 일본에서 대기업 및 중소기업들이 관상이나 사주를 따져 간부들을 승진·채용하는 사례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러한 시류에 편승, 역학정보의 수요증가를 예측한 어느 기업은 재빨리 점(점)을 치는 컴퓨터의 생산판매까지 시작했으며 출판업계는 점술에 관련된 수많은 책들을 발간했다.
동경 신쥬쿠(신숙)에 있는DII사는 사람의 운세를 종합적으로 판단하는 소프트를 개발, 각 기업 인사책임자들의 상담을 받고 있다. 이 회사를 이용하는 고객은 엔고로 타격을 받고있는 중소기업 경영자나 새로운 사업을 추진하고있는 무역회사·은행 또는 보험회사의 중역들이다. 회사가 설립된 이래 지난 8개월 간 1천건 이상의 인사상담이 있었으며 이중 60%가 기업 쪽에서 온 것이다.
또 동경의 아오야마(청산)나 하라쥬쿠(원숙)의 빌딩에는 60여명의 점장이들이 몰려있는 사무실이 집단으로 설치되어 있으며 고베(신호)시에는 오래전부터「점장이 거리」로 명명된 마을이 탄생할 정도로 점술 붐이 일고있다.
점술관계 소프트를 개발한 회사들은 개인의 성격·적성·사주팔자등을 조합해 특정인물의운세를 종합적으로 판정해 준다. 이 소프트는 싼 것이 1백만엔(약6백20만원), 비싼 것은5백50만엔(3천3백만원)까지 하며 수요가 늘어나고 있다.
대기업 및 중소기업의 인사상담은 성격상 극비리에 이루어진다. 이사승진 대상자나 해외공장 책임자를 선정할 때는 여러 후보들의 이름과 생년월일·시간·혈액형·성격·경력 등을 자료로 입력하면 수분 후에는 컴퓨터가 적합여부를 판정해준다.
이 소프트를 이용하는 층에는 기업들뿐만 아니라 프로야구단의 감독도 있으며 내노라하는 정치가들도 섞여있다.
특히 일부 중소기업들은 신임사원·중견간부를 채용할 때 응모자들의 운세를 미리 확인한 후 이를 참고자료로 삼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기업의 인사정책이 역학·점술에 어느 정도 의존하기 시작한 것은 엔고에 의해 산업구조가 급격히 바뀌고 경영의 장래예측이 불안한 시기에 뚜렷이 나타났다.
일본의 경제성장기 초기에 늘 역학 붐이 일어나고 있음은 매우 상징적이다.「점」「예언」「예측」「미래」라는 말이 많이 쓰이고 관계서적들이 쏟아졌다. 67년에는『성명판단』 이란 책이, 제1차 석유파동 때인 74년에는『노스트라다무스의 대 예언』이 폭발적으로 팔렸으며 79년 2차석유파동의 불황시기에는『천중살입문』이 베스트셀러가 됐다.
일본에 엔고 불황이 몰려온 86년부터 다시 회복세로 돌아선 지금까지 사이에도 역시 역학관계 서적은 베스트셀러에서 빠지지 않고 있다.
동경등 주요 도시의 각 문화센터에는 어김없이 역학강좌가 들어가 있다. 이 강좌의 단골들은 대기업의 관리직과 중소가업의 사장이며 그들은 인상학이나 관상학공부에 열심이다.
운명학을 연구하는 학회도 발족, 각 지방에 지부까지 설치되는 등 점술산업이 새로이 각광받기 시작했다.
기업의 이 같은 역학 붐에 대해 평론가「야마모토」(산본칠평)씨는『경영자가 운세 등에 의존하는 것은 장래 전망이 어려운 최근의 경영정세를 반영한 것이다. 그러나 그런 것으로 인사나 경영방침이 결정된다면 이거야말로 큰일』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운세가 좋지 않다는 사람들이 현실에서는 오히려 훌륭하게 일을 처리하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역학정보를 판매, 상담하는 회사들은 그것이『단순히 점이라기보다 동양역학을 기본으로 한 통계학에 가까운 것이며 80%가 들어맞는다』고 주장하며 회사경영의 판단자료로 사용해도 무리가 없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첨단과학기술 개발로 탄탄한 성장가도를 달리고 있는 일본의 기업들이 점술이라는 비합리·비과학적인 자료로 인사정책을 밀어붙일 경우 중요한 인재들을 활용할 기회를 스스로 포기하는 어리석음을 범하게 될 것이라는 경고에 귀를 기울여야 될 것 같다.
어려운 환경이 풍족한 사회로 바뀌어지면서 나타나는 점술·역학 붐은 근대적인 합리주의에 대한 불만의 연줄이라고 보는 견해도 있다. 근대 과학으로도 해결할 수 없는 어려움을 본능적으로 점에 의존해 풀어나가려는 현상이라는 얘기다.
한국에서도 선거 때가 되면 정치인들이 이름난 점장이를 찾아간다거나 기업인들이 새로운 사업을 시작할 때 역술을 이용한다는 소문에 견주어 일본의 이런 현상은 우리에게도 관심거리는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사회구석구석에 합리성이 결여된 곳이 많다는 지적이 있는 터에 일본처럼 그런 원초적인 본능에 세상사의 판단을 맡기는 현상이 있어서는 안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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