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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최우석칼럼

서강학파 논란과 참여교수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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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압축성장이 없었으면 양극화의 소지도 안 생겼다는 뜻이라면 맞는 말이다. 그러나 경제성장을 하면 양극화는 생기게 마련인데 그동안 여러 정권은 뭘 하다가 느닷없이 20여 년 전으로 책임을 돌리느냐는 점에서 보면 서강학파는 억울하다.

또 과거 압축성장의 공로와 책임을 서강학파에 돌리는 것도 지나치다. 사실 서강학파라는 게 무슨 사상이나 이념으로 뭉친 학파가 아니다. 1970년대와 80년대 정부에 참여했던 경제학자 중 서강대 교수 출신이 많고 두드러졌다 해서 붙인 이름이다. 대표적으로 남덕우.김만제.이승윤 부총리를 꼽을 수 있을 것이다. 모두 미국에서 공부하고 돌아와 시장경제를 중시했고 점진적 개선을 추구했다. 당시는 국가 정책기조가 선택과 집중에 의한 성장 우선이었기 때문에 그 틀 안에서 정책을 폈다.

69년 남덕우 교수가 재무장관으로 임명되었을 때 모두 깜짝 놀랐다. 남 교수는 선거캠프에 참여한 적도 없고 정부정책을 앞장서 옹호하지도 않았다. 평가교수단의 일원으로 정부의 경제정책에 대해 늘 조용한 목소리로 대안 있는 비판을 해온 것이 발탁의 이유였다 한다. 당시 그 막강한 재무장관에 백면서생이라고 생각했던 남 교수가 앉으니 "잘하면 한 6개월 갈 수 있을까"하는 소리가 많았다. 재무부 안에서도 처음엔 괄시가 있었다.

취임하고 나서 남 장관은 숨은 재능을 발휘했다. 재무부 일은 물론 대외관계에 있어서도 노련했다. 엘리트 정통 관료들을 잘 다독이면서 그들의 협조를 받았다. 물론 대통령의 강력한 뒷받침이 가장 컸지만 그 험한 정치판도 잘 헤쳐 나갔다. 옳은 것만 고집하다 부딪혀 난파당하는 일을 하지 않았다. 어떤 방향을 잡고 일을 추진해 가다 큰 장애가 생기면 약간 돌거나 잠시 쉬었다 다시 가곤 했다. 대세에 지장 없는 것은 과감히 양보해 버리는 전략도 구사했다. 정계와 언론에도 꾸준히 접근하여 우군을 확대해 갔다.

6개월을 예상했던 남 장관은 5년여 동안 재무장관을 지내고 부총리로 영전되어 다시 4년여 동안 근무한다. 부총리와 재무장관으로 10여 년 동안 재직한 것은 하나의 기록이다. 그때는 1차 오일쇼크 등 큰 파동도 겪었지만 가장 역동적 성장을 할 때였다.

남 교수의 성공에 고무되었는지 실용적인 서강대 교수들이 잇따라 발탁되었다. 김만제 교수는 KDI원장을 10년 넘게 지내고 재무장관을 거쳐 부총리를 역임했다. 김만제 장관도 콧대 높은 경제 관료들을 교묘하게 부리면서 부실기업 정리 등 굵직한 일을 많이 했다. 이 두 분은 성공한 참여교수로 꼽힌다. 이승윤 교수는 국회의원을 거쳐 재무장관과 부총리를 역임했으나 정치 환경 때문에 오래 하지는 못했다. 이렇듯 과거엔 참여교수들이 오래도 하고 실적도 남겼는데 지금은 왜 그렇지 못할까. 열심히 잘하려고 하는데 용량이 부족한 것일까, 세상이 안 받아주는 것일까. 혹은 방해세력이 많아서 그런 것일까. 길게 보고 로드맵을 만들고 시스템적으로 일을 한다고 하니 좀 기다리면 효과가 나타날 것인가.

정책을 펴려면 반드시 방해 요소가 있게 마련이다. 압축성장을 할 땐 그때대로 방해 요소가 많았다. 대표적으로 경부고속도로와 포항제철을 지을 때 얼마나 반대가 많았는가. 성공한 정책이란 그런 어려움을 이겨내고 이뤄낸 것이지 저절로 된 것은 아니다. 남의 탓을 하거나 과거에 책임을 돌려서는 일이 될 수가 없다.

소위 서강학파 책임 논란에 대해 막상 남덕우씨는 "뭐 대학생 수준의 글을 굳이…"하고 가볍게 반응했다 한다. 그러나 그때 참여교수들이 어떻게 재량권을 갖고 오랫동안 일을 잘할 수 있었는지 참고로 들려 줄 필요는 있을 것이다. 지금은 참여교수들의 수도 엄청나게 많아졌고 참여폭도 넓어졌는데 20년 뒤에는 어떤 평가를 받을지 무척 궁금하다.

최우석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