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서울 이태원 해밀톤호텔 뒷편의 주택가에 눈에 확 띄는 감각적인 공간이 들어섰다. 바로 ‘어그로빌리지’. 빌리지(마을)란 이름처럼 여러 건물이 마을처럼 모여있는 곳으로, 하얀 외벽이 꼭 그리스 산토리니처럼 보이기도 한다. 개성 있는 공간을 찾아 인증샷을 남기는 인스타그래머들이 이런 곳을 놓칠 리 없다. 2017년 6월, 그러니까 문을 연 지 6개월밖에 안됐지만 벌써 인스타그램(이하 인스타)에 2500개가 넘는 게시물이 올라와 있다.
인스타에서 어그로빌리지를 찾아보면 사실 이곳의 정체를 가늠하기 힘들다. 누구는 예쁘게 플레이팅된 리조토나 프렌치토스트를, 다른 사람은 프랑스식 무화과 타르트를, 또 다른 사람은 야경이 근사한 술집이나 파티 모습 사진을 찍어 올리기 때문이다. 여기가 대체 레스토랑이야 카페야, 아니면 술집이야? 하나의 장르로 정의하기 어려운 곳이라 더 궁금해졌다.
먼저 이곳의 정체를 공개하자면 프렌치 레스토랑과 디저트 카페, 라운지 바, 파티룸이 한 자리에 모여있는 공간이다. 프랑스 유학 후 중국 베이징의 미쉐린(미슐랭) 스타 레스토랑 '울트라 바이올렛'에서 경력을 쌓은 원영호 셰프가 운영하는 프렌치 레스토랑 ‘바이 휴고’와 프랑스식 디저트를 내는 카페 ‘로디네’, 이태원 전경이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라운지 바 ‘알곤퀸’, 프라이빗한 소규모 그룹을 위한 루프탑 겸 파티전문공간 ‘믹스테일’이 3개의 건물에 나뉘어 있다. 먹고 마시고 즐길 수 있는 장소가 한 곳에 모여있는 데다 사진까지 예쁘게 찍히는 감각적인 인테리어를 갖추고 있으니 꼭 인증샷에 열광하는 인타스그래머가 아니라도 뭔가 색다른 연말 모임 장소를 찾는 사람이라면 눈 여겨볼만 하다. 이런 공간은 누가 기획한 걸까. 또 어느 대기업 자본이 스며들어 있는 것일까.
알고보니 젊은 건축가 박성재(31) 대표가 친한 사람들끼리 같이 밥 먹고 차 마시며 저녁엔 술까지 곁들일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자 기획했다. 본인이 갖고 있는 돈에 여기저기서 지인들로부터 투자도 받았다. 남의 돈까지 끌어들였으니 처음의 소박한 기획의도에서 한발 더 나아가 돈을 벌어야 하지만, 뻔한 레스토랑이나 카페는 싫었다. 건축 외에 전시회나 이벤트 기획도 많이 했다는 그는 "식당과 카페같은 요식 공간을 전시처럼 하나의 프로젝트로 엮어 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A·B·C동의 세 건물에 나뉘어 있는 레스토랑, 카페, 라운지 바와 파티룸은 평소엔 각각 별도의 단일 브랜드로 운영하지만 필요할 때는 협업해 하나의 프로젝트를 만들어내는 공동체 성격을 띈다. 이런 식이다. 파티룸을 빌릴 때 일정 금액 이상을 바이 휴고와 알곤퀸에서 주문하면 별도의 렌탈비를 내지 않아도 된다.
이런 공동체적 방식은 특이하지만 사실 레스토랑과 카페 등이 모여있는 공간 자체는 이태원뿐 아니라 다른 많은 곳에서 볼 수 있다. 그런데도 유독 어그로빌리지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주목받는 건 '컬러'라는 컨셉트 덕분이다. 박 대표가 이름붙인 컨셉트는 '컬러 구획'이다. 어그로빌리지 전체 공간에 대한 프로젝트 컨셉트이기도 하다. 박 대표는 "어둡고 잘 정비되지 않았던 공간(이태원 뒷골목)에 컬러와 컨셉트를 입혀 새로운 생명을 불어 넣어보자는 취지로 어그로빌리지를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해밀톤호텔 뒷쪽에서부터 한남동을 잇는 주택가에 있는 빌라·다세대주택 등 오래된 주택건물 3채를 렌탈해 건물 외부를 고치고 전부 하얗게 칠한 것도 원래 어두운 분위기의 이 골목을 환하게 밝히기 위한 시도였다.
내부는 컬러 컨셉트가 더 확연하게 드러난다. 각 공간에 맞는 색을 파격적으로 활용해 꾸몄기 때문이다. 여기엔 친구인 노루홀딩스(노루페인트 지주회사) 한원석 상무의 도움이 있었다. 노루페인트와의 협업으로 전문적인 컬러 컨설팅을 받은 후 각 공간에 맞는 친환경 페인트를 사용했다. 가령 프렌치 레스토랑 '바이 휴고'는 음식을 돋보이게 하면서도 화사한 분위기를 내는 흰색으로, 카페 '로디네'는 아가자기한 공간을 좋아하는 20~30대 여성의 취향에 맞게 핑크·그린·민트색으로 공간을 꾸몄다. 파티룸은 시원하고 세련된 느낌의 블루로 정했다. 밤에만 운영하는 라운지바는 원목과 짙은 갈색, 와인색의 가죽 소재들을 이용해 아늑한 느낌을 냈다. 구석구석마다 사진이 잘 나올 수 있는 소품과 의자를 배치해 모임을 즐기면서 예쁜 사진을 남길 수 있도록 했다.
개별 매장만 들르지 말고 여러 매장을 구경해야 어그로빌리지의 매력을 충분히 느낄 수 있다는 얘기다.
글·사진=윤경희 기자 annie@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