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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스타, 거기 어디?]허름한 다세대 주택이 인스타 성지라고?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최근 서울 이태원 해밀톤호텔 뒷편의 주택가에 눈에 확 띄는 감각적인 공간이 들어섰다. 바로 ‘어그로빌리지’. 빌리지(마을)란 이름처럼 여러 건물이 마을처럼 모여있는 곳으로, 하얀 외벽이 꼭 그리스 산토리니처럼 보이기도 한다. 개성 있는 공간을 찾아 인증샷을 남기는 인스타그래머들이 이런 곳을 놓칠 리 없다. 2017년 6월, 그러니까 문을 연 지 6개월밖에 안됐지만 벌써 인스타그램(이하 인스타)에 2500개가 넘는 게시물이 올라와 있다.

서울 이태원 '어그로빌리지'에 있는 카페 '로디네'. 2층까지 올라온 커다란 크기의 트리가 연말 분위기를 물씬 풍긴다.

서울 이태원 '어그로빌리지'에 있는 카페 '로디네'. 2층까지 올라온 커다란 크기의 트리가 연말 분위기를 물씬 풍긴다.

인스타에서 어그로빌리지를 찾아보면 사실 이곳의 정체를 가늠하기 힘들다. 누구는 예쁘게 플레이팅된 리조토나 프렌치토스트를, 다른 사람은 프랑스식 무화과 타르트를, 또 다른 사람은 야경이 근사한 술집이나 파티 모습 사진을 찍어 올리기 때문이다. 여기가 대체 레스토랑이야 카페야, 아니면 술집이야? 하나의 장르로 정의하기 어려운 곳이라 더 궁금해졌다.

'어그로빌리지' 들어가는 입구. 왼쪽은 '바이휴고' 레스토랑이 있는 A동, 계단을 올라가면 나오는 하얀 건물이 카페 '로디네'가 있는 B동이다. B동 건너편엔 파티룸으로 쓰는 C동 건물이 있다.

'어그로빌리지' 들어가는 입구. 왼쪽은 '바이휴고' 레스토랑이 있는 A동, 계단을 올라가면 나오는 하얀 건물이 카페 '로디네'가 있는 B동이다. B동 건너편엔 파티룸으로 쓰는 C동 건물이 있다.

카페 '로디네' 2층에서 보이본 풍경. 테이블 위 디저트는 무화과 타르트다.

카페 '로디네' 2층에서 보이본 풍경. 테이블 위 디저트는 무화과 타르트다.

'어그로빌리지'의 프렌치 레스토랑 '바이 휴고'의는 프렌치 토스트. 바게트 빵을 바닐라빈·계란물에 1시간 이상 담갔다가 구워낸다.

'어그로빌리지'의 프렌치 레스토랑 '바이 휴고'의는 프렌치 토스트. 바게트 빵을 바닐라빈·계란물에 1시간 이상 담갔다가 구워낸다.

먼저 이곳의 정체를 공개하자면 프렌치 레스토랑과 디저트 카페, 라운지 바, 파티룸이 한 자리에 모여있는 공간이다. 프랑스 유학 후 중국 베이징의 미쉐린(미슐랭) 스타 레스토랑 '울트라 바이올렛'에서 경력을 쌓은 원영호 셰프가 운영하는 프렌치 레스토랑 ‘바이 휴고’와 프랑스식 디저트를 내는 카페 ‘로디네’, 이태원 전경이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라운지 바 ‘알곤퀸’, 프라이빗한 소규모 그룹을 위한 루프탑 겸 파티전문공간 ‘믹스테일’이 3개의 건물에 나뉘어 있다. 먹고 마시고 즐길 수 있는 장소가 한 곳에 모여있는 데다 사진까지 예쁘게 찍히는 감각적인 인테리어를 갖추고 있으니 꼭 인증샷에 열광하는 인타스그래머가 아니라도 뭔가 색다른 연말 모임 장소를 찾는 사람이라면 눈 여겨볼만 하다. 이런 공간은 누가 기획한 걸까. 또 어느 대기업 자본이 스며들어 있는 것일까.

B동 카페 '로디네'2층에서 바라본 A동의 라운지 바 '알곤퀸'. 오후 6시 이후에만 영업한다. [사진 어그로빌리지]

B동 카페 '로디네'2층에서 바라본 A동의 라운지 바 '알곤퀸'. 오후 6시 이후에만 영업한다. [사진 어그로빌리지]

알고보니 젊은 건축가 박성재(31) 대표가 친한 사람들끼리 같이 밥 먹고 차 마시며 저녁엔 술까지 곁들일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자 기획했다. 본인이 갖고 있는 돈에 여기저기서 지인들로부터 투자도 받았다. 남의 돈까지 끌어들였으니 처음의 소박한 기획의도에서 한발 더 나아가 돈을 벌어야 하지만, 뻔한 레스토랑이나 카페는 싫었다. 건축 외에 전시회나 이벤트 기획도 많이 했다는 그는 "식당과 카페같은 요식 공간을 전시처럼 하나의 프로젝트로 엮어 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A·B·C동의 세 건물에 나뉘어 있는 레스토랑, 카페, 라운지 바와 파티룸은 평소엔 각각 별도의 단일 브랜드로 운영하지만 필요할 때는 협업해 하나의 프로젝트를 만들어내는 공동체 성격을 띈다. 이런 식이다. 파티룸을 빌릴 때 일정 금액 이상을 바이 휴고와 알곤퀸에서 주문하면 별도의 렌탈비를 내지 않아도 된다.

카페 '로디네' 2층의 핑크존. 20~30대 여성 손님들이 가장 즐겨 찾는 포토 스팟이란다.

카페 '로디네' 2층의 핑크존. 20~30대 여성 손님들이 가장 즐겨 찾는 포토 스팟이란다.

이런 공동체적 방식은 특이하지만 사실 레스토랑과 카페 등이 모여있는 공간 자체는 이태원뿐 아니라 다른 많은 곳에서 볼 수 있다. 그런데도 유독 어그로빌리지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주목받는 건 '컬러'라는 컨셉트 덕분이다. 박 대표가 이름붙인 컨셉트는 '컬러 구획'이다. 어그로빌리지 전체 공간에 대한 프로젝트 컨셉트이기도 하다. 박 대표는 "어둡고 잘 정비되지 않았던 공간(이태원 뒷골목)에 컬러와 컨셉트를 입혀 새로운 생명을 불어 넣어보자는 취지로 어그로빌리지를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해밀톤호텔 뒷쪽에서부터 한남동을 잇는 주택가에 있는 빌라·다세대주택 등 오래된 주택건물 3채를 렌탈해 건물 외부를 고치고 전부 하얗게 칠한 것도 원래 어두운 분위기의 이 골목을 환하게 밝히기 위한 시도였다.

C동 파티룸 한쪽 벽을 채우고 있는 블루존.

C동 파티룸 한쪽 벽을 채우고 있는 블루존.

내부는 컬러 컨셉트가 더 확연하게 드러난다. 각 공간에 맞는 색을 파격적으로 활용해 꾸몄기 때문이다. 여기엔 친구인 노루홀딩스(노루페인트 지주회사) 한원석 상무의 도움이 있었다. 노루페인트와의 협업으로 전문적인 컬러 컨설팅을 받은 후 각 공간에 맞는 친환경 페인트를 사용했다. 가령 프렌치 레스토랑 '바이 휴고'는 음식을 돋보이게 하면서도 화사한 분위기를 내는 흰색으로, 카페 '로디네'는 아가자기한 공간을 좋아하는 20~30대 여성의 취향에 맞게 핑크·그린·민트색으로 공간을 꾸몄다. 파티룸은 시원하고 세련된 느낌의 블루로 정했다. 밤에만 운영하는 라운지바는 원목과 짙은 갈색, 와인색의 가죽 소재들을 이용해 아늑한 느낌을 냈다. 구석구석마다 사진이 잘 나올 수 있는 소품과 의자를 배치해 모임을 즐기면서 예쁜 사진을 남길 수 있도록 했다.
개별 매장만 들르지 말고 여러 매장을 구경해야 어그로빌리지의 매력을 충분히 느낄 수 있다는 얘기다.

레스토랑 '바이 휴고' 앞의 벤치. 햐얀 벽과 격자 무늬 창문, 푸른 식물이 어우러진 이 공간 앞에서 사진을 찍는 사람이 많다.

레스토랑 '바이 휴고' 앞의 벤치. 햐얀 벽과 격자 무늬 창문, 푸른 식물이 어우러진 이 공간 앞에서 사진을 찍는 사람이 많다.

글·사진=윤경희 기자 anni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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