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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소정당 옥죄는 ‘교섭단체 20인’ 이번엔 완화될까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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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9호 14면

44년째 그대로 국회 교섭단체 기준

2000년 12월 30일 새천년민주당 의원 3명이 자민련 입당 후 김종필 자민련 명예총재(왼쪽 셋째)와 손을 들어올리고 있다. [중앙포토]

2000년 12월 30일 새천년민주당 의원 3명이 자민련 입당 후 김종필 자민련 명예총재(왼쪽 셋째)와 손을 들어올리고 있다. [중앙포토]

2008년 8월 6일 이회창 자유선진당 총재(왼쪽)와 문국현 창조한국당 대표가 공동 교섭단체 구성 합의문을 교환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 견제와 소수당의 한계 극복이 명분이었다. [중앙포토]

2008년 8월 6일 이회창 자유선진당 총재(왼쪽)와 문국현 창조한국당 대표가 공동 교섭단체 구성 합의문을 교환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 견제와 소수당의 한계 극복이 명분이었다. [중앙포토]

“비교섭단체와 통합 여부를 놓고 왜 이런 내홍을 자초해야 하는지 안타깝다.”(박주현 국민의당 최고위원, 지난 20일 당 최고위원회의)

1973년 10→20인 높아진 뒤 불변 #원내 협상 빠지고 보조금 확 줄어 #독일·프랑스 등은 문턱 훨씬 낮아 #학계 “입법 활성화 위해 개정 필요”

“비교섭단체인데 열심히 나와 취재해줘 감사하다.”(정운천 바른정당 최고위원, 지난 22일 당 의원·원외위원장 연석회의)

지난 1월 창당 이후 33석까지 세를 불렸다가 11석으로 줄어든 바른정당의 현재 처지를 보여주는 말들이다. 바른정당은 대선 전후 의원들의 잇따른 이탈로 원내 교섭단체 기준인 20석이 무너졌다. 비교섭단체는 한국 정당정치 역사에서 ‘그림자’ 같은 존재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죽하면 원내 6석인 정의당 이정미 대표가 바른정당 의원에게 “한 달만 지나면 얼마나 춥고 배고픈지 알게 될 것”이라며 위로의 말을 건넸을까.

국회 내에선 회기 때마다 군소정당을 중심으로 교섭단체 기준을 완화하는 법 개정 움직임이 끊이질 않았다. 학계에서도 외국보다 우리 기준이 너무 높다는 지적이 적잖았다. 하지만 ‘교섭단체 20인’ 규정은 1973년 이후 변함없이 44년째 지속돼 오고 있다.

본회의 ‘대기조’에 상임위도 엉뚱하게 배정

비교섭단체가 되면 살림살이부터 줄어든다. 바른정당에 배정된 국고보조금은 지난 8월 3분기에 14억7876만원이었지만 4분기인 11월에는 6억482만원으로 반 토막이 났다. 반면 더불어민주당은 33억3097만원, 자유한국당은 33억8867만원, 국민의당은 25억694만원으로 3분기보다 오히려 2억~3억원씩 더 받았다.

4분기 국고보조금 총액은 105억3500여만원이었다. 정치자금법 제27조에 따르면 지급 당시를 기준으로 원내 교섭단체 정당에 총액의 50%를 균등 배분한다. 5석 이상 20석 미만인 정당에는 총액의 5%씩 돌아간다. 이후 남은 돈의 절반은 정당의 국회 의석수 비율에 따라 지급하고 나머지 절반은 지난 총선 때 득표율에 따라 배분한다.

바른정당에 소속돼 있던 정책연구위원들도 하루아침에 실직자가 됐다. 국회법에 따라 국회의원의 입법 활동을 보좌하는 정책연구위원은 교섭단체에만 둘 수 있기 때문이다. 2004년엔 민주노동당과 새천년민주당·자유민주연합 등 국회 비교섭단체들이 원내 교섭단체에만 연구위원을 배정해 예산을 지원하는 행위는 차별이라며 헌법소원을 제기하기도 했다. 하지만 2008년 헌법재판소는 “합리적 이유가 있는 차별”이라며 이를 기각했다.

당시 새천년민주당 소속이던 손봉숙 전 의원은 2008년 출간한 저서 『국회를 바꾸고 싶다』에서 “원내 정당이 교섭의 최소 단위가 되면 되지 또다시 20명이라는 봉쇄 조항을 둬서 20명 이하 정당엔 교섭권조차 부여하지 않는 것은 군소정당에 투표한 국민 의사를 완전히 무시하는 결과를 초래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비교섭단체는 국회 본회의가 열리는 날에도 하염없이 ‘대기조’ 역할을 해야 할 때가 많다. 본회의가 오후 2시로 예정돼 있더라도 교섭단체 간 협상이 틀어지거나 의원총회가 지연됨에 따라 회의가 늦춰지는 게 부지기수이기 때문이다. 손 전 의원은 이에 항의하며 ‘시간 엄수’ 피켓을 들고 1인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정의당 의원들이 지난해 6월 국회 본 회의장 입구에서 국회 상임위원회 임의 배정에 항의하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 [중앙포토]

정의당 의원들이 지난해 6월 국회 본 회의장 입구에서 국회 상임위원회 임의 배정에 항의하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 [중앙포토]

본회의장 의석 배정이나 상임·특별위원회 설치 및 위원 선임 등에서도 교섭단체 협상이 우선이다. 그러다 보니 비교섭단체에 소속된 의원들은 본인의 전문성과 상관없이 엉뚱한 상임위에 배정되기 일쑤다. 언론개혁시민연대 사무총장 등을 지낸 추혜선 정의당 의원은 지난해 6월 외교통일위원회 배정에 반발하며 17일 동안 단식농성을 벌이기도 했다. 추 의원은 3개월 뒤에야 지금의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로 옮겼다.

비교섭단체 의원들이 발의한 법안 가결률이 교섭단체 의원들에 비해 낮다는 분석 결과를 담은 논문도 있다. 자유민주연합의 경우 15대 국회 때 50석이었다가 16대 국회 때는 17석으로 의석수가 66% 줄었다. 법안 가결률은 16.4%에서 12%로 4.4%포인트 감소했다. 4석으로 줄어든 17대 국회 때 법안 가결률은 4.5%까지 떨어졌다. 신명순 연세대 교수 등은 ‘국회 교섭단체 제도가 입법 활동에 미치는 영향’이란 제목의 논문에서 이 같은 결과를 토대로 “교섭단체 구성 요건을 20명 이하로 낮추는 게 바람직하다”고 제안했다.

DJP 연합 땐 ‘의원 꿔주기’ 논란도

지금의 20대 국회에도 교섭단체 구성 요건을 의원 20인 이상에서 5인 이상으로 완화하는 내용의 국회법 개정안이 계류돼 있다. 지난해 6월 노회찬 정의당 당시 원내대표가 대표발의했지만 1년 넘게 국회 운영위원회에 상정만 돼 있는 상태다. 국회 사무처 관계자는 “국회의 원활한 운영을 위해 교섭단체를 구성하는 것인 만큼 기준 완화는 신중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기류가 지배적”이라고 말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역대 국회에서도 교섭단체 기준을 둘러싸고 논란이 끊이질 않았다. 16대 국회 때는 교섭단체 구성 하한선을 20인에서 10인으로 낮추는 내용의 국회법 개정안이 국회 운영위를 통과하기도 했다. ‘DJP(김대중·김종필) 연합’으로 공동 여당 구실을 하던 자유민주연합이 17석으로 교섭단체 특혜를 누릴 수 없게 되자 황급히 만든 법안이었다. 하지만 당시 야당이던 한나라당이 “양당 구도를 만든 총선 민의를 무시하는 처사”라며 반발해 본회의 문턱은 넘지 못했다. 그러자 여당인 새천년민주당 의원 네 명이 2000년 말과 2001년 초 자민련으로 이적하면서 이른바 ‘의원 꿔주기’ 논란이 벌어졌다.

18대 국회에선 자유선진당(18석)과 창조한국당(2석)이 ‘선진과 창조의 모임’이란 공동 교섭단체를 구성했다. 정책 노선이 전혀 달랐던 이들은 원내 교섭단체가 아니면 국회에서 제 역할을 할 수 없는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 전격적으로 손을 잡았다. 하지만 이듬해인 2009년 8월 심대평 자유선진당 대표가 이회창 자유선진당 총재의 사당화를 비판하며 탈당했고 결국 ‘한 지붕 두 가족’ 체제도 끝이 났다. 이후 자유선진당은 교섭단체 구성 요건을 15인으로 낮추자고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국회선진화법으로 몸살을 앓던 19대 국회에선 여야 의원들이 함께 교섭단체 기준을 10인 이하로 완화하는 법안을 발의하기도 했다. 통합민주당 원내대표를 지낸 박기춘 전 의원은 당시 이 법안을 대표발의하며 “19대 국회 들어 시행된 국회선진화법 체계 속에서 양당 교섭단체 협상만으로는 한계에 부닥칠 수밖에 없다”며 “어느 쪽이든 교섭단체가 흑백 논리로 협상에 나서면 어떤 것도 합의될 수 없다는 ‘정치 절벽’을 절감했다”고 밝혔다.

박 전 의원은 “원내대표를 마치며 그간의 소회를 담아 국민 눈높이에 맞는 의회정치를 실현하고자 교섭단체 요건 완화를 추진하게 됐다”며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진정한 특권과 기득권 내려놓기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성태·강석호 의원 등 당시 여당이던 새누리당 의원 5명도 공동발의자로 참여해 눈길을 끌었다. 부칙을 통해 20대 국회부터 시행하도록 경과 규정까지 뒀지만 이 법안 역시 19대 국회를 통과하지 못했다.

야권발 정계 개편이 가속화되고 있는 20대 국회에선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의 공동 교섭단체 구성 시나리오가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국민의당이 현재 40석으로 이미 하나의 교섭단체를 구성하고 있다는 점이 법적으로 걸림돌이다. 현재 국회법은 ‘국회에 20인 이상 소속 의원을 가진 정당은 하나의 교섭단체가 된다. 그러나 다른 교섭단체에 속하지 아니하는 20인 이상의 의원으로 따로 교섭단체를 구성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국민의당이 교섭단체 지위를 잃은 뒤에야 역시 비교섭단체인 바른정당과 공동 교섭단체를 구성할 수 있다는 게 국회사무처의 유권해석이다.

교섭단체 기준이 10인 이상이던 63년에는 13석의 민주당이 다른 두 당과 함께 교섭단체를 만드는 게 가능했다. 당시 민주당은 9석의 자유민주당, 6석의 국민의당과 함께 ‘삼민회’를 구성해 활동했다. 국회 사무처 관계자는 “당시 국회법엔 ‘하나의 교섭단체’라는 문구가 없었다”고 설명했다.

일본은 의원 2인 이상이면 교섭단체 가능

48년 10월 제정된 최초의 국회법에는 교섭단체란 용어가 없었다. 49년 7월 개정된 국회법에서 ‘단체교섭회’라는 용어가 등장했고 구성 인원도 20인 이상으로 정해졌다. 60년 9월에는 ‘단체교섭회’라는 용어를 그대로 사용하면서 민의원의 경우 20인 이상, 참의원의 경우 10인 이상으로 분리했다.

국회법에서 ‘교섭단체’란 용어가 처음 사용된 건 63년 11월부터다. 당시 기준은 10인 이상이었다. 20인 이상으로 다시 높아진 건 박정희 전 대통령이 유신헌법을 선포한 뒤인 73년 2월이었다. 그래서 당시 신진 세력이 국회에서 힘을 못 쓰게 하려고 기준을 높였다는 비판이 따라다닌다. 어찌 됐든 그 후 현재까지 44년째 20인 기준은 유지돼 오고 있다.

현재 20인은 의원 정수 300인의 6.7%로 외국에 비해 진입 장벽이 지나치게 높다는 지적이 학계에서도 꾸준히 제기돼 왔다. 독일 하원은 전체 의석수의 5% 이상이면 교섭단체 구성이 가능하다. 프랑스 하원은 총 의석(577석)의 2.6%인 15석이 기준이다. 일본은 2인 이상으로 기준이 더욱 낮다. 독일은 또한 교섭단체의 최소 기준 정수를 충족하지 못했더라도 연방의회 승인에 의해 준교섭단체를 결성할 수 있다. 상임위 배정 등을 협의할 때도 준교섭단체 몫을 고려하도록 하는 등 소수 정당의 권리와 지위를 보장해주고 있다.

김경희 기자 am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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