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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전기 철조망 아래 땅파서 탈북” 2007년에도 극적인 판문점 귀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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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2일 유엔군사령부가 공개한 판문점 탈북 영상은 극적인 탈출 과정을 담고 있어 탈북 방법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정보당국은 23일 북한군 귀순 사실과 함께 2007년 9월 탈북 사례를 처음 공개했다. 정보 관계자는 당시에도 “북한 군인이 판문점을 통해 귀순했다”면서도 구체적인 탈북 방법과 배경은 설명하지 않았다. 그러나 본지는 핵심 관계자를 통해 당시 탈북 과정과 배경을 확인했다.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북쪽에는 비무장지대를 경비하는 북한군이 주둔한다. 서쪽에 개성공단이 있어 남측 인원과 자재가 들어간다. [사진 구글어스 재구성]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북쪽에는 비무장지대를 경비하는 북한군이 주둔한다. 서쪽에 개성공단이 있어 남측 인원과 자재가 들어간다. [사진 구글어스 재구성]

2007년 당시 합동신문에 참여했던 군 관계자 A씨는 “전기가 통하는 철조망 아래 땅을 파고 귀순했던 사건”이라고 귀띔했다. 그는 이어 “북한군 차모 병사가 판문점 유엔군 관할 구역으로 들어왔다”고 밝혔다. 이에 비해 지난 13일 판문점을 통해 탈북했던 북한군 오모 하전사는 차량을 직접 운전해 판문점 북한 측 구역에 들어온 뒤 뛰어서 군사분계선을 넘었다. 두 탈북자가 북한을 탈출하는 방법을 다르게 선택한 이유는 뭘까.

지난 13일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으로 귀순한 북한 병사가 지프차량을 몰고 '72시간 다리'를 향해 달리고 있다. [사진 유엔군사령부 제공=연합뉴스]

지난 13일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으로 귀순한 북한 병사가 지프차량을 몰고 '72시간 다리'를 향해 달리고 있다. [사진 유엔군사령부 제공=연합뉴스]

소속 부대가 달라 탈북 방법이 달랐다. A씨는 “차모 병사는 북한군 4군단 6사단 소속인데 개성공단 불빛을 따라 내려오다 길을 잘못 들어서 판문점으로 몰래 왔다”며 당시 상황을 설명해줬다. 오 모 하전사는 차량으로 경비 검문소를 통해 판문점에 들어갈 수 있었지만 차모 병사는 불가능해서다. 4군단에서 근무했던 북한군 출신 B씨는 “판문점 근무자가 아니면 판문점에 접근할 수 없다”며 “처음부터 판문점으로 탈북할 생각은 아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개성공단과 판문점은 외곽 구역을 기준으로 약 4㎞ 거리다.

북한군이 판문점에 접근하려면 해당 부대 소속으로 72시간다리를 건너 들어가는 길이 일반적이다. 붉은색은 북한측 초소, 푸른색이 유엔군 초소 위치를 나타낸다. [사진 구글어스 재구성]

북한군이 판문점에 접근하려면 해당 부대 소속으로 72시간다리를 건너 들어가는 길이 일반적이다. 붉은색은 북한측 초소, 푸른색이 유엔군 초소 위치를 나타낸다. [사진 구글어스 재구성]

북한군 차모 병사는 북한군의 감시를 피해 북측 지역을 거쳐 유엔사 관할 구역으로 곧바로 들어와 안전하게 귀순할 수 있었다. A씨는 “전기가 흐르는 철망 아래 땅을 파 넘어오는 바람에 화상을 입었지만 큰 부상은 없었다”고 전했다. 정보당국 관계자는 “북한은 탈북을 막으려 휴전선 부근에 철망을 설치했고 여기에 전기도 흘려 보낸다”고 말했다.

귀순한 차모 병사는 개성공단 덕분에 탈북을 결심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A씨는 “차모 병사가 평소 개성공단의 화려한 불빛을 보며 한국을 동경해 왔고 그래서 공단의 불빛을 따라 탈북하는 루트를 선택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북한군 복무중에 구타도 심해 군대생활에 대한 염증도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2007년 10월 2일 낮 평양시 4.25 문화회관 광장에서 열린 공식환영식에서 의장대를 사열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2007년 10월 2일 낮 평양시 4.25 문화회관 광장에서 열린 공식환영식에서 의장대를 사열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당시 한국 정부는 이런 탈북 사실을 왜 공개하지 않았을까. 뒤늦게 공개한 배경을 두고 논란이 나온다. 차모 병사가 탈북한 시점은 9월인데 불과 한 달 뒤 노무현 대통령의 방북이 예정된 상황이었다. 당시 정상회담 특별수행원 자격으로 방북했던 경남대 김근식 교수(정치외교학과)는 “어렵게 성사된 정상회담을 성공적으로 진행하려고 남북 양측이 민감한 탈북 사건을 물밑에서 조율해 비공개로 하기로 합의했던 것으로 보인다”며 “특별수행원으로 방북했지만 당시엔 탈북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고 말했다.

박용한 군사안보연구소 연구위원 park.yongh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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