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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반드시 잡는다' 백윤식에게서 느껴지는 '고수의 품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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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드시 잡는다’ 백윤식 & 성동일  사진=전소윤(STUDIO 706)

‘반드시 잡는다’ 백윤식 & 성동일 사진=전소윤(STUDIO 706)

[매거진M] 이번엔 회장님도 아니고, 왕도 아니다. 그러나 표정은 어느 때보다 매섭고 굳건하고 서늘하다. 연쇄살인범을 추적하는 70대 노인 심덕수의 처지가 마냥 처량해 보이지만은 않는다면 그건 전적으로 백윤식(70) 덕분일 터. 수십 년 한자리를 지켜온 동네 터줏대감 심덕수는 여러모로 백윤식과 닮아 보인다.



━70대 노인이 장기 미제 사건, 그것도 연쇄살인범을 쫓는다는 설정이 흥미롭다. 
“한국영화 사상 전례가 없었던 이야기지. 나에게 기회에 와서 잘 됐다고 생각했다.”

━시나리오를 읽고 받은 느낌은.
“사실 처음엔 그저 그랬는데…. 제피가루 작가의 원작 웹툰 ‘아리동 라스트 카우보이’를 보고 마음이 바뀌었다. 소재도 그렇고, 여러모로 괜찮더라고. 웹툰을 보고 김홍선 감독이 쓴 책(시나리오)을 다시 읽으니 그제야 감이 왔다. ‘아 이거 이야기 되겠구나’ 싶더라고.”

━작품을 고를 땐 역시 이야기가 우선인가.
“책이 중요하지. 전체 틀이 좋아야 된다. ‘내가 소화할 수 있는 역할인가’ ‘캐릭터가 좋은가’는 그다음 문제고.”

━근데 웹툰도 챙겨 보나. 
“아무렴 원작인데 봐야지. ‘내부자들’(2015, 우민호 감독) 때도 챙겨 봤다. 만화는 뭐랄까. 소재의 제약도 없고, 도저히 일반 카메라로는 잡을 수 없는 앵글이라든지, 영화와 다른 매력이 있다. 일단 구라가 세잖아(웃음).”

'반드시 잡는다'

'반드시 잡는다'

━심덕수는 근래 연기한 캐릭터 가운데 가장 허술하고 지위가 낮은 인물이다. 일단 왕도 아니고, 높은 벼슬도 아니고, 회장님도 아니다.
“각이 서 있고, 센 면모가 많았던 이전 캐릭터들과는 확실히 다르지. 소시민이라고 해야 하나. 그렇다고 말랑한 성격도 아니다.”

━하긴 건물주기도 하고.
“그렇지(웃음). 내가 고수 개념의 역할을 죽 해왔는데, 심덕수도 그런 면이 아예 없진 않다. 남한테 신세 안 지고 근검절약하며 하나둘 건물을 갖게 된 사람이고, 한 동네에서 수십 년을 산 터줏대감이라 동네 사정에도 빠삭하다. 세입자가 월세를 제때 안 내면 ‘왜 그따위로 사냐’며 야박하게 굴지만, 아예 경우에 어긋나는 ‘갑질’은 안 한다. 그런데 그 동네에서 연쇄살인 사건이 벌어지고, 세입자 하나가 실종된 거다. 심덕수 철학으로는 절대 용납이 안 되는 거지.”

━심덕수가 낯선 침입자로부터 동네를 지킨다는 구도만 놓고 보면 예전 서부영화가 떠오르기도 한다.
“그런 영향도 있었겠지. 제피가루 원작만 봐도 제목부터 ‘아리동 라스트 카우보이’고. 나 젊은 시절에 서부영화가 상당한 인기였다. 50년대 였나…, 명국환 선생님의 ‘아리조나 카우보이’라는 곡을 축음기로 열심히 듣던 기억도 난다. ‘카보이~ 아리조나 카보이~’하는 노래 알지? 아, 원작에도 이 노래가 직접 등장하더라고. 아마 동네 이름 아리동도 아리조나에서 따온 것 같더라.”

━백윤식과 심덕수의 공통점이 있다면,
“남에게 폐 안 끼치는 선에서 최대한 열심히, 그렇게 자신만의 영역을 만들어왔다는 것 정도가 아닐까? 그리고 꼬장꼬장하다는 것도. 하하.”

━시나리오만 봐도 구르고 맞고 넘어지는, 격한 액션이 많던데. 힘들지 않았나?
“힘들기야 한데, 은근히 내가 액션을 안 한 영화가 없다. ‘싸움의 기술’(2006, 신한솔 감독)에서는 일당백의 싸움 고수였고, ‘내부자들’에서도 멋지진 않지만 리얼한 액션을 소화했었다. 고생스러웠지만, 새삼스러울 것도 없었지.”

‘반드시 잡는다’ 백윤식 & 성동일 사진=전소윤(STUDIO 706)

‘반드시 잡는다’ 백윤식 & 성동일 사진=전소윤(STUDIO 706)

━배우 성동일이 파트너 박평달을 연기했는데.
“처음 작업해보는데, 성격이 좋아. 오죽하면 내가 ‘애교 동일’이라고 부를까. 연기에서는 동일이도 워낙 베테랑이라 뭐 말이 필요 없었다. 동일이가 애드리브 위주로 연기할 것 같다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오히려 대본에 굉장히 충실하다. 그리고 굉장히 감성적인 면이 많더라고. 상대하면서 순간순간 실제 상황처럼 느껴질 정도로.”

━평소 애드리브를 즐기나.
“오히려 반대지. 어느 정도 양념처럼 들어갈 수 있겠지만, 남발하는 건 싫다. 영화의 큰 틀, 감독이 가진 큰 그림이 더 중요하거든.”

━‘어차피 대중은 개돼지입니다’‘너 그러다 피똥 싼다’ ‘시츄에이션이 좋아’처럼 오래 기억되는 명대사를 많이 남겼다.
“(‘범죄의 재구성’(2004, 최동훈 감독)에서 했던) ‘청진기 대면~ 진단 딱 나와!’ 요것도 있었고(웃음).”

━‘반드시 잡는다’의 명대사라면.
"글쎄, 이번 영화에서는 ‘205호!’ 205호 살다가 실종된 여성을 쫓느라, 입이 닳도록 ‘205호!’를 외쳤거든. 영화 보고 나면 머릿속에 맴돌 것 같다.”

‘반드시 잡는다’ 백윤식 & 성동일 사진=전소윤(STUDIO 706)

‘반드시 잡는다’ 백윤식 & 성동일 사진=전소윤(STUDIO 706)

━누군가에 가르침을 주는 멘토나 고수 역할을 자주 연기해 왔다. 배우로서 그런 큰 인물을 연기하는 것에 대해 책임감을 느낄 때도 있나.
"‘내 역할이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하는 부분까지 염두하며 작품에 임하진 않는다. 간접적으로 영향을 끼칠 수야 있겠지만, 결국 배우는 배우, 작품은 작품이라고 본다.”

━닮고 싶은 배우로 꼽는 후배들이 많다. 무엇이 지금의 배우 백윤식을 만들었다고 보나.
"70년대 KBS에서 연기를 시작했다. 지금은 논란도 많고 방송사 위상이 예전만 못하지만, KBS가 당시만 해도 작품성 높은 작품을 많이 만들었다. ‘TV문학관’(1980~2012, KBS)으로 대한민국 문학 전집을 순례하다시피 했으니까. 이상화, 이중섭, 나운균 선생님 등등 역사적인 인물부터 시작해 안 해본 역할이 없지. 배우로서 나는 여한이 없다.”

━작품운도 중요하겠으나, 결국 배우로서 많은 작품을 경험하며 노력하는 게 최선이라는 말로 들린다.
"정공법으로, 순리대로, 최선을 다하는 거지 뭐, 별거 있나. 이게 평범한 진리 같지만 사실 가장 어려운 문제기도 하다. 인생이란 게 그렇더라고. 재능이 출중해도 뜻대로 안 될 때가 허다해. 어떤 때는 희로애락이 한꺼번에 밀려오기도 하고. 그러니 벌 수 있나. 지금 현재에 충실하며, 노력하는 수밖에.”

백종현 기자 baek.jong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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