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용·김기림 등 납·월북작가 전집|"해금 안돼도 출판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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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정지용 작품 납본필증 교부계기 출판계 추진>
납북 천재시인 정지용의 작품선집이 최근 최초로 문공부의 납본필증을 받은 것을 계기로 정지용·김기림 등 납·월북문인 해금요청이 또 다시 일고 있은 가운데 『정지용전집』『김기림전집』 등이 잇달아 출간될 예정으로 있어 문단 및 학계의 주목을 끌고 있다.
정지용·김기림 해금여부가 올 들어 또다시 쟁점화된 것은 깊은샘출판사(대표 박현숙)가 지난해10월 납본한 『정지용-시와 산문』에 대해 문공부가 지난15일 납본필증을 교부한데서 비롯됐고, 이는 정지용의 해금을 의미한다는 일부 여론에 의해 성급한 기쁨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문공부당국자는 『이번 필증교부는 지난해10월 발표된 출판활성화조치에 따라 모든 납본출판물에 납본필증을 발부한다는 원칙 하에 이루어진 「출판사실확인」에 불과하다』면서 『따라서 정지용·김기림 등의 해금은 정부의 공식발표가 있을 때까지는 여전히 불가능할 것』이라고 못박았다. 또 납본필증을 받은 『정지용-시와 산문』에 대한 사법적 고발조치는 그러나 문공부의 소관이 아닌 수사당국의 재량에 속한다고 말했다.
20일 문공부와 민정당의 당정회의에서도 『정지용·김기림의 해금문제는 당분간 계속 유보한다』고 밝혔으며 『다만 앞으로 시간을 두고 전향적으로 검토한다』는 데 의견을 함께 하는 선에서 그쳤다.
그러나 정부의 이 같은 방침에도 불구하고 출판계는 정지용·김기림이 사상적으로도 납북이 분명하고 작품내용 또한 순수하기 때문에 「공식해금」과는 무관하게 전집출간을 강행할 계획이다.
지난83년 제작을 끝낸 지 5년만에 납본필증을 받은 『정지용-시와 산문』을 이미 시판 중에 있는 깊는샘출판사는 최악의 경우 법정투쟁을 통해서라도 정지용의 해금을 인정받겠다는 입장이고, 민음사(대표 박맹호) 와 심설당(대표 이종복) 또한 범문단적 해금요청과 여론의 지지에 힘입어 『정지용전집』과 『김기림전집』을 각각 출간할 예정이다.
지난82년 지용의 장남 정구관씨와 계약을 맺고 서강대 김부동 교수에 의해 제작을 끝냈던 민음사의 『정지용전집』은 「정지용시집」「백록담」 등의 시집에 남겨진 지용의 시 1백50편과 그의 산문을 전2권으로 정리, 내주 초 납본과 함께 시판할 계획. 기림의 장남 김세환씨와 계약을 맺고 제작중인 심설당의 『김기림전집』은 시, 시론, 평론, 문장론, 소설·희곡·수필, 시론 및 번역 등 전6권으로 구성되며 우선 제1권 시전집이 내주 중 출간된다.
30년대 문단의 가장 탁월한 서정시인이자 「우리 현대시의아버지」라는 일반적 평가를 받고 있으면서도 불분명한 월북설에 휘말려 38년 동안 암흑 속에 방치되었던 지용과 기림에 대한 해금요청은 70년대 이후 유족 및 문단의 줄기찬 호소에 의해 거듭되어 왔으며, 지난해10월 우선 『작품출간이 아닌 작품연구는 허용한다』는 당국의 발표를 얻어냄으로써 11월『정지용연구』(김정동저·민음사)가 출간된바 있다.
이 같은 일련의 과정 및 최근의 문단·출판계의 움직임을 고려해볼 때 정부는 더 이상 지용·기림을 규제할 명분을 유지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문단 및 학계는 두 시인의 공식해금이 조만간 있게 될 것임을 낙관하고 있으며, 한 걸음 더 나아가 박태원·이태준·오장환 등 모든 납·월·재배작가들의 작품집 해금을 단행해 우리 문학사의 온전한 복원을 이루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기형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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