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수호 사법제도 개혁' 주춧돌…고법 부장판사 승진제 폐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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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이 ‘법관의 꽃’으로 불리는 고등법원 부장판사 승진제도를 폐지하기로 했다. 김소영 법원행정처장은 22일 법원 내부망(코트넷)에 “사법연수원 25기 이하의 법관들에 대해 2018년 정기인사부터 종래와 같은 방식의 고등법원 부장판사 보임 심사를 진행하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법관 독립' 위해 이용훈 전 대법원장 추진 #양승태 전 대법원장 때 진전 없이 연기돼 #김명수 대법원장이 사법개혁 과제로 재추진

다만 연수원 24기 이상 판사들에 대한 고법부장 보임 심사는 유지하기로 했다. 같은 기수에서 이미 승진한 법관과 그렇지 못한 같은 법관의 형평성을 맞추려는 취지다. 연수원 24기 법관들은 올해 초 정기인사에서 처음으로 고법 부장에 승진했다.

10월 25일 취임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는 김명수 대법원장. 김경록 기자

10월 25일 취임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는 김명수 대법원장. 김경록 기자

‘법관의 꽃’으로 불리는 고법부장은 행정부의 차관급 예우를 받는다. 전용차가 지급되고 근무평정과 명예퇴직 대상에서 제외된다. 하지만 ‘대법관-법원장-고등 부장-지방 부장-단독 및 배석판사’로 이어지는 수직적 법관 서열 구조의 핵심 고리라는 지적을 받아왔다.

판사 정원은 늘었지만 고법부장 자리는 130명 안팎에 불과해 인사 적체가 심해지는 것도 문제였다. 연수원 기수가 내려갈수록 승진 확률은 10분의 1 수준까지 떨어졌다. 고법 부장 승진의 문이 좁아지면서 '배석판사→단독판사', '단독판사→지법 부장판사'로 이동하는 기간도 덩달아 길어졌다. 이 때문에 젊은 판사들을 중심으로 개선을 바라는 목소리가 높았다. 전국법관대표회의는 지난 9월 고법부장 승진제도를 폐지해야 한다고 결의했고, 김명수 대법원장도 취임 전 인사청문회에서 폐지를 공언했다.

고법부장 폐지가 처음 논의됐던 건 이용훈 전 대법원장 때다. 당시 대법원은 법조일원화와 법관 인사 이원화를 사법제도 개혁 방안으로 제시했다.
재조(在曺·법원과 검찰)와 재야(在野·변호사) 법조계 간 장벽을 허물어 법조 경력자들이 판사로 임용될 수 있게 하고, 지방법원(1심 재판부)과 고등법원(2심 재판부) 판사의 인사를 별도로 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사법연수원 기수로 서열이 정해지고 법원장이 인사 권한을 갖고 후배 판사들에 영향을 미치는 문화를 타파하기 위해서였다.

가장 상징적인 의미를 갖는 게 고법부장 제도였다. 법원조직법에도 없는 고법부장이 판사들의 ’승진 목표’가 돼 법원이 관료화하고 법원장이 승진을 매개로 일선 법관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비판이 많았다. 이 전 대법원장은 법관인사 이원화 완성 시기를 2017년으로 못 박았다. 하지만 구체적인 실행 계획을 내놓지 못했고, 2011년 양승태 전 대법원장 체제에서 고법에만 근무하는 '고법판사'를 신설한 것 외에 별다른 진전을 보지 못했다.

9월 11일 경기도 고양시 사법연수원에서 열린 전국법관대표회의(판사회의)에서 대표 판사들이 회의를 진행하고 있다. [연합뉴스]

9월 11일 경기도 고양시 사법연수원에서 열린 전국법관대표회의(판사회의)에서 대표 판사들이 회의를 진행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번 조치는 김 대법원장이 내건 대법원장 권한 분산과 사법제도 개혁의 주춧돌이란 게 법원 안팎의 평가다. 김 처장은 “종래의 수직적 리더십은 통일성 및 안정성 등의 측면에서 장점이 있었으나, 투명하고 수평적인 법관 인사에 대한 요청이 갈수록 높아져 감에 따라 종래의 인사절차 등에 대한 변화의 필요성 또한 커지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대법원은 고법부장 승진제를 폐지하고 지방법원과 고등법원의 법관 인사를 따로 하는 법관 인사 이원화 조기 정착을 위한 구체적인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김 처장은 “법관들의 의견을 수렴해 인사의 범위와 정도를 가능한 범위 내에서 줄여나가는 방안을 검토하겠다”며 “너무 멀지 않은 시기에 (법관 인사 이원화제도가) 완성될 수 있도록 추진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유길용 기자 yu.gily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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