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매스컴의 「남북싸움」연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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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김현희의 기자회견이 있은 직후부터 거의 1주일간 KAL기 테러사건이 일본 매스컴의 흥미진진한 뉴스쇼」로 요리되고 있다.
한국정부의 수사발표에 뒤이어 각 민방들은 「균형보도」라는 명분으로 조총련 각 부서 관계자들을 출연시켜 『KAL기 테러는 한국의 자작자연』주장을 되풀이하도록 하고, 때로는 구색을 갖추기 위해 서울의 김신조 씨를 등장시켰다가 다음날에는 다시 친북 인사들의 「한국날조를 규탄」하는 프로그램을 넣어「남북싸움」을 연출시켰다.
그러다가 급기야는 민방들이 생방송에서 북경 등 공산권국가 수도에 있는 북한대사관에 전화를 걸어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이 그런 테러를 할 리가 없지 않습니까. 그렇지요?』라고 다분히 유도성 질문을 하기도 했다. 북한대사관원들은 그 같은 질문에 『아무렴, 그렇고 말고요. 테러를 반대해온 우리가 왜 그 같은 짓을 합니까』라고 맞장구를 친다.
일본 언론은 뉴스의 본질이 사실보도와 문제의 시시비비를 가리는데 있다고 기회 있을 때마다 주장한다.
그러나 「재미있는 사건 이 발생하면 그 같은 본질은 사라지고 「최대의 뉴스 쇼들 연출해서 최고의 시청률을 확보」하는 경쟁을 벌여 KAL기 테러사건도 일본 매스컴의 구미에 맞는 소재를 제공하는 결과가 되었다.
김현희의 기자회견이 있기 이틀 전 『「마유미」는 KAL기 테러사건과 관련이 없으며 제3국으로 추방될 듯』이라고 대서특필한 신문도 있으며, 다른 신문은 한국정부의 대북한제재요구를 냉소적으로 다루면서 『일본은 한국 측의 열기에 말리지 말라』고도 했다.
『서울올림픽 성공지원』『한반도 안정』을 수없이 되풀이 말해온 일본의 일부 관리·지식인·언론들은 정작 북한 테러문제에 이르러선 『그러니까 북한을 제재해서는 안 된다. 북한이 또 일을 저지르면 어떻게 할건가. 한국이 참아라』는 식의 어처구니없는 일본적 논리를 전개하고 있다.
결국 일본정부도 이러한 매스컴의「여론반영」에 발맞춰 대북한 제재조치방안에서 경제적 응징은 제외키로 한 것을 보면 일본국민의 실리추구라는 일관된 자세가 다시 한번 우리의 입맛을 씁쓸하게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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