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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북한 병사, 테라칸·갤로퍼 몰았다…8년째 복무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난 13일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을 통해 귀순한 북한군 병사가 차량에서 내려 남측으로 달려가고 있다. [사진 유엔사]

지난 13일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을 통해 귀순한 북한군 병사가 차량에서 내려 남측으로 달려가고 있다. [사진 유엔사]

북한 병사는 운전병 주특기를 갖고 있으며 북한에서 한국산 스포츠 유틸리티(SUV) 차량인 테라칸을 몬 것으로 드러났다. 22일 정부 당국과 아주대병원 중증외상센터에 따르면 북한 병사는 중학교(우리로 치면 고교)를 졸업하고 곧장 군에 입대해서 8년째 복무하고 있다. 이국종 중증외상센터장은 22일 브리핑에서 "북한 병사는 24세 오모씨다. 병사가 운전을 해봤다 하더라. 주특기가 운전병인 것으로 추정된다"며 "운전병인데 왜 차가 도랑에 빠졌냐고 물었더니 못 알아듣고 대답을 안 해서 화제를 바꿨다"고 말했다.
 이 병사는 "개성에 이런 차(테라칸)가 많다. 갤로퍼도 몰아봤다"고 말했다고 한다. 자동·수동 기어 차량을 다 몰아봤다. 병사는 "상표를 뗀 채 북한에 들어와 있다. 군에서 민간 차량을 뺏어 쓰는 것 같다"고 말했다고 한다.

북한 병사는 운전병,8년째 복무 중 #상표 제거한 테라칸 몰았다고 말해 #법학 공부해서 법률가 되는 게 꿈 #소녀시대 '지' 오리지널 버전을 좋아해 #트랜스포터3 영화를 열심히 시청 #깨어나서 첫 마디는 '으윽 아파요' #물만 마시고 아무 것도 못 먹어

유엔군 사령부 대변인 채드 캐럴 대령이 22일 국방부 브리핑실에서 지난 13일 판문점 JSA를 통해 귀순한 북한 병사가 넘는 순간을 설명하고 있다. 신인섭 기자

유엔군 사령부 대변인 채드 캐럴 대령이 22일 국방부 브리핑실에서 지난 13일 판문점 JSA를 통해 귀순한 북한 병사가 넘는 순간을 설명하고 있다. 신인섭 기자

 현대자동차의 테라칸은 북한에 수출한 적이 없다. 중국에서 들어왔을 가능성이 있다. 전문가들은 금강산과 개성을 주목한다. 2008년 관광객 박왕자씨 피격사건으로 금강산 관광이 중단되기 전까지 현대아산이나 개성공단 업체들이 사용하던 차량을 북한이 무단으로 사용할 수 있어서다. 정부와 현대아산은 북한 군부에 차량을 지원한 적은 없다고 설명한다. 전직 현대아산 관계자는 “금강산이나 개성지역은 도로 사정이 좋지 않고 눈이 많아 SUV를 사용해 왔다”며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 가동이 중단된 이후 한국 측 기업들 소유의 차량을 북한군이 무단으로 사용한 것 같다”고 말했다.
 북한 병사는 이 센터장에게 "법학을 공부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이 센터장은 병사에게 소녀시대의 '지(Gee)' 뮤직비디오를 틀어줬다. 오리지널 버전, 두 개의 인디밴드의 락으로 된 버전(투스테이·네머시스) 등 세 종류를 보여줬다. 그는 오리지널 버전이 좋다고 답했다. 의료진이 "외모를 따지지 말고 음악 자체를 평가해달라"고 했더니 그래도 오리지널 버전을 꼽았다 한다. 병사는 TV를 매우 좋아한다. 영화채널로 고정했다. 뉴스를 보다 자신의 소식을 접하게 될 경우 충격을 받을 것을 우려해서다.
 병사는 2009년 개봉한 '트랜스포터3 -라스트미션' 액션 영화를 좋아한다. 미국 헐리우드 스타 배우 짐 캐리, 모건 프리먼의 영화도 즐긴다. 영화 중간에 광고가 나오자 "왜 영화를 껐냐"고 물어서 의료진이 "한국의 광고다. 이거 다 사려면 엄청 돈이 필요하다"고 설명해줬다고 한다.

이국종 아주대 중증외상센터장과 김지영 매니저 간호사(오른쪽)가 센터 내에서 이동하고 있다. 김춘식 기자

이국종 아주대 중증외상센터장과 김지영 매니저 간호사(오른쪽)가 센터 내에서 이동하고 있다. 김춘식 기자

 병사는 귀순 과정의 충격 탓에 자면서 욕설과 의미 없는 소리, 신음 등을 많이 한다고 한다. 이 센터장은 "병사가 치료에는 협조적이나 대화에 소극적이고 우울 증세를 보인다"고 말했다.
  이 병사는 19일 첫 마디가 "으윽~ 아파요"였다. 지금은 물만 먹는다. 이 센터장은 "북한 귀순 병사의 수술이 매우 잘 돼 회복이 기적적으로 빠르다"고 말했다. 그 동안 성인 3명 분량의 O형 혈액을 수혈했다. 몸 속의 피를 세 번 갈았다. 이 센터장은 "1만2000cc를 수혈했다. 남한 동포의 혈액으로 살아난 것"이라고 말했다. 이 센터장병사에게 "이 순간 당신에게 수혈하는 피는 남한 사람들의 소중한 헌혈로 모은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병사는 "고맙습니다"라고 대답했다. 병사에게서 회충 외 개회충(사람 회충과 비슷)이, 양쪽 폐에서 '비활동성 결핵'이 발견됐다.
수원=신성식 복지전문기자, 정용수·백수진 기자sssh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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