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달 발족하는 민간 싱크탱크 '희망제작소' 박원순 변호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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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사진=김형수 기자]

그가 걸어가면 새 길이 생긴다. 한국 진보의 희망을 만들어가는 박원순 변호사(사진). 참여연대를 주도한 시민운동의 대부로서, 또 '아름다운 재단' '아름다운 가게' 등 톡톡 튀는 아이디어의 나눔 사업으로 진보의 넓이와 깊이를 확장시켜 온 그가 새로운 변신을 시도 중이다. '희망제작소'(www.makehope.org)라는 재미난 이름의 민간 싱크탱크 발족에 힘을 쏟고 있다.

공식 창립일은 3월 27일. 하지만 서울 종로구 수송동의 사무실을 찾았을 땐 벌써 25명의 석.박사급 상근 연구원들이 채용돼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그의 방은 투명유리를 통해 안이 다 보였고, 문도 아예 열어 놓았다. 그는 희망제작소를 '제2의 실학(實學) 운동'으로 규정했다. 그의 직함은 상임이사.

◆ 제2의 실학 운동="희망제작소라는 이름이 낯설다"고 말문을 트자 박 변호사는 기다렸다는 듯 "재미없는 운동은 운동이 아니다"고 맞받았다. 이름만 재미있는 게 아니라 실속도 구체적 콘텐트로 재미있게 채워갈 것이라고 했다.

희망제작소는 새로운 형식의 싱크탱크를 지향한다.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 상대적으로 '작은 정책'을 개발하는 데 주력할 예정이다. 그는 '동네의 얼굴 만들기'사업을 예로 들었다. 동네의 문화와 상징을 만들어가는 정책을 개발해 지자체에 제공하고, 거기서 나오는 수익으로 연구소를 운영할 작정이다.

"작은 것이 중요합니다. 말로는 돌멩이 하나라도 움직일 수 없어요."

'작은 이야기'를 중시하는 이유는 중앙정부 차원의 거대담론이 가져온 낭비적 정쟁을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진보니 보수니 하는 이념을 뛰어넘어 실현 가능한 정책과 합리적 대안을 제시하겠다는 뜻이다. 18세기 조선에서 명분과 관념에 빠진 양반들이 상복을 몇 년 입느냐를 놓고 벌였던 정쟁의 틈에서 실학이라는 싹이 돋아났듯이, 희망제작소가 '21세기판 실학'의 구심점이 되길 바라고 있다.

"과거의 패러다임과 원칙.비전.정책.습관.생각에서 한 단계 전환하지 않고는 우리가 현재 누리는 세계 10위권 수준도 지탱하기 힘든 시대가 됐습니다. 정부도 시민단체도 언론도 치밀하게 변화하지 않으면 안 돼요. 과거엔 부패에 반대하고 군사정권에 반대하는 등의 거대 어젠다를 제시하는 것만으로도 살 수 있었다면 지금은 아니지요."

◆ 인권변호사서 사회 디자이너로=학생운동에 이어 인권변호사-시민운동가(참여연대 주도)-자선운동가(아름다운 재단 주도)로 이어진 그의 직업 변천사가 이제 종착점에 도달한 것일까. 그는 스스로 '사회 디자이너'로 불리길 원했다.

"지난 10여 년간 적지 않은 해외 경험을 쌓은 것도 소위 잘 사는 나라들이 우리와 구체적으로 다른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보기 위해서였어요. 지나온 길과 희망제작소가 펼쳐갈 새 길을 비교하며 새로운 작업을 뭐라고 부르면 좋을까하고 생각하다 보니 '사회 디자이너'가 떠올랐고, 그것이야말로 최후의 직업인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희망제작소가 '아닌 밤중에 홍두깨'처럼 갑자기 달려든 사업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는 "희망제작소는 지금까지 해온 모든 일의 결산이라 할 수 있다"며 "최근 진보 진영의 지식사회에서 제기되는 위기의식과는 전혀 무관한 일"이라고 선을 그었다.

그는 또 이렇게 말했다. "국민이 동의하고 찬사를 보낼 때쯤 되면 흥미를 잃습니다." 참여연대의 투명성 확산 운동과 아름다운 재단의 자선 운동이 국민적 호응 속에 빠른 속도로 수용돼나가자 흥미를 잃게 됐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그렇다면 희망제작소가 우리 사회에 희망의 산소를 공급하는 엔진으로 자리잡게 될 무렵 그가 또 변신할 것인지 궁금하다.

글=배영대 기자 <balance@joongang.co.kr>
사진=김형수 기자 <kimh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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