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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 태극마크, 동생은 성조기 … 평창 무대 기대하세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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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한국 여자아이스하키 대표팀 유니폼을 입은 박윤정(왼쪽)과 미국 국가대표팀 유니폼을 입은 한나. [사진 박윤정 인스타그램]

한국 여자아이스하키 대표팀 유니폼을 입은 박윤정(왼쪽)과 미국 국가대표팀 유니폼을 입은 한나. [사진 박윤정 인스타그램]

2009년 개봉한 영화 ‘국가대표’에 나온 주인공은 입양아 차헌태(밥)였다. 배우 하정우가 연기해 호평을 받았다. 재미동포인 주인공이 자신을 낳아준 어머니를 찾기 위해 한국 스키점프 국가대표가 됐다는 스토리다.

한국 여자아이스하키 대표 박윤정 #미국 입양 직후 동생 한나 태어나 #7세 때 함께 스틱 잡고 한집안 대결 #“올림픽서 1승 땐 자랑스러울 것”

내년 2월 평창 겨울올림픽을 준비하는 한국 여자아이스하키 대표팀에도 비슷한 사연의 선수가 있다. 대표팀 수비수를 맡고 있는 박윤정(25)이다.

박윤정에게는 금발 머리의 여동생(한나 브랜트)이 있다. 한나는 미국 여자아이스하키 대표팀의 포워드로 평창올림픽 출전이 유력하다. 자매가 서로 다른 국가의 유니폼을 입고 올림픽 무대를 함께 누비게 되는 것이다. 지난달 미국 NBC에 이어 최근 스포츠일러스트레이티드(SI)가 이 특별한 자매의 스토리를 자세히 소개했다.

박윤정은 태어난 지 4개월 만에 미국 미네소타 가정에 입양됐다. 그렉-로빈 브랜트 부부를 만난 박윤정은 ‘마리사’라는 새 이름을 얻었다. 12년째 아이가 생기지 않아 고민하던 브랜트 부부는 한국 아이를 입양하기로 결정했다. 그런데 박윤정이 브랜트 부부의 품에 안긴 지 7개월 만에 한나가 태어났다. 박윤정과 한나는 어려서부터 쌍둥이처럼 늘 함께 지냈다.

왼쪽부터 박윤정(마리사)과 그의 어머니 로빈, 동생 한나, 아버지 그렉 브랜트. [사진 박윤정 인스타그램]

왼쪽부터 박윤정(마리사)과 그의 어머니 로빈, 동생 한나, 아버지 그렉 브랜트. [사진 박윤정 인스타그램]

피겨스케이트를 하던 박윤정은 7세 때 동생과 함께 아이스하키를 시작했다. 박윤정이 자란 미네소타는 미국에서도 아이스하키 열기가 가장 뜨거운 곳 중 하나다. 동생 한나는 아이스하키에 놀라운 재능을 보였다. 아이스하키 명문 미네소타대에 진학한 한나는 1학년 때인 2012년 역대 최연소로 미국 대표팀에 선발됐다.

박윤정은 전미대학스포츠협회(NCAA) 2부 리그인 구스타부스 아돌프스 대학에서 선수로 뛰었다. 지난 2015년 한국 대표팀 제의를 받고, 그해 7월 초청선수로 태극마크를 달았다. 지난해 6월 법무부로부터 국적 회복 허가를 받았다. 박윤정은 “한국에 오기로 결정한 건 어렵지 않았다. 아이스하키를 계속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낯선 한국에서의 생활은 두려움의 연속이었다. 박윤정은 “한국말도 할 줄 몰랐고, 아는 사람도 없었다. ‘여기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라는 생각만 했다”고 털어놨다. 처음에는 매운 음식이 입에 맞지 않아 쌀밥만 먹은 적도 있었다.

어린 시절 한복을 입은 박윤정(왼쪽)과 한나. [사진 박윤정 인스타그램]

어린 시절 한복을 입은 박윤정(왼쪽)과 한나. [사진 박윤정 인스타그램]

박윤정은 지난 4월 강릉에서 열린 국제아이스하키연맹(IIHF) 세계선수권 디비전2 그룹 A(4부리그) 대회에서 국가대표 데뷔전을 치렀다. 한국이 5전 전승으로 우승을 차지하면서 그는 다른 선수들과 함께 시상식에 참가했다. 박윤정은 “태극기를 보며 한국인이라는 것이 자랑스러웠다. 이게 바로 내가 찾아야 할 정체성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박윤정은 한국에 오기 전까지는 사실 생모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거의 없었다고 한다. 박윤정은 “한국에 와서 나를 낳아준 부모님을 찾기 위해 노력했는데 서울의 한 병원에서 태어났다는 것 외에는 정보를 얻지 못했다”며 “내가 평창올림픽에서 뛰는 게 부모님을 찾는 데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박윤정과 동생 한나는 피 한방울 안 섞였지만 친자매 이상으로 각별한 사이다. 지난 4월 세계선수권대회 때 박윤정은 한국(4부리그)에서, 한나는 미국(1부리그)에서 대회를 치렀다. 박윤정은 “만약 동생과 내가 올림픽에서 서로 맞대결을 펼치게 된다면 무척 재미있을 것이다. 부모님이 우리 중 누굴 응원할 건지 궁금하다”고 말했다.

여자아이스하키 세계랭킹 22위인 한국은 평창올림픽에서 스위스(5위), 스웨덴(6위), 일본(9위)과 차례로 만난다. 아직 한 번도 이겨보지 못한 팀들이다. 박윤정은 “1승을 거두게 되면 굉장히 자랑스러울 것”이라고 했다.

김원 기자 kim.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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