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지성] '문화란 무엇인가 1,2'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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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철학자이며 예술평론가인 이브 미쇼가 편집한 '문화란 무엇인가 1,2'(이브 미쇼 외 지음, 강주헌 옮김, 시공사)는 프랑스 국민의 문화적 관심의 폭을 느끼게 한다. 특히 이 책의 탄생 배경을 보면 그들의 문화사랑이 부럽기까지 하다.

지구촌이 새천년을 맞았다고 들석일 때 프랑스인들은 그런 한편으로 차분히 21세기를 지혜롭게 살아가는 데 필요한 안목을 키우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2000년 기념위원회'가 '모든 지식의 대학'이라는 이름으로 2000년 1월 1일부터 12월 31일까지 프랑스 예술의 요람인 에콜 데 보자르에서 대중에게 세계를 똑바로 보는 혜안을 길러주기 위해 실시한 강연이 대표적인 예이다. 6백석 규모의 강연장에 매번 6천여 명의 청중이 들어찼으니 명강의가 되지 않을 수 없었다.

프랑스에서는 3백65개 강의를 생명과 인간, 사회, 기술, 우주, 문화 등 주제별로 나눠 출간됐다. 이중 문화를 주제로 한 강의가 이번에 두 권으로 번역됐고, 인간과 사회도 시공사에서 '인간이란 무엇인가 1,2''사회란 무엇인가 1,2'로 번역 소개된다.

'문화란…'는 냉전체제 붕괴 후 지구촌의 변화, 인문과학에 닥친 위기의 원인과 해결책, 책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 아시아 근대화에 유교가 미친 영향 등을 논한 69개의 강의를 담았다.

그러나 '인간을 둘러싸고 일어나는 모든 것을 담겠다'는 의지가 앞선 탓인지, 문화의 범위를 지나치게 넓게 잡아 초점이 흐려진 듯하고 주제가 서로 얽혀 산만하며 동양에 대한 배려가 적다는 점이 아쉽다. 그래도 18세기에 지식의 특권화에 반대했던 계몽 사상가들의 전통을 21세기에 되살리겠다는 기획 의도는 높이 살만하다.

영국의 마르크스주의 역사학자 에릭 홉스봄,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의 저자 피에르 상소, 구조주의 비평의 거장 제라르 주네트 등 유명인들의 강의도 좋지만 지명도에서는 다소 떨어져도 각 분야 전문가들이 나선 강의도 현장 이야기가 많아 생생하다.

이중 스타급 강사의 강의를 엿보자. 에릭 홉스봄은 20세기 말부터 지구촌에 일어난 부정적인 현상을 논했다. 그에 따르면 동유럽의 경제 침체와 국가간 충돌을 부른 구(舊)소련의 몰락, 자유시장의 가치를 종교의 근본주의자들처럼 받드는 신자유주의자들의 등장, 그리고 냉전 이후 국제정세가 불안정해지고 있다는 사실이 인류의 앞날을 어둡게 하는 요소들이다.

정명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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