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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권위없이 정치발전 없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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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거리의 한국인들은 몹시 성급하다. 보행자들은 횡단보도를 대각선으로 잰걸음 친다. 자동차들은 끼어들거나 앞지른다. 그런 서두름이 박진력으로 전화되어 발전을 가속시켰다는 풀이도 있다. 그러나 12·16선거결과를 보면 우리 국민은 아주 신중하다.
선거기간 중 국민들은 군정종식에 강한 의지를 보였다. 그러나 곧바로 민정으로 가는 것은 유보했다. 군의 중립과 문민정치를 외치는 군인출신의 여당후보에게 군정종식 과제를 맡긴 것이다. 국민들은 정권교체의 열망도 나타냈다. 그러나 「정치권력」의 교체보다 「정부권력」의 교체를 택했다. 여야간의 세력교체보다 집권당 안에서의 인물 교체로 끝낸 것이다. 그러나 진권당 후보를 소수파 대통령이 되게 함으로써 집권자에 대한 국민통제권을 과시했다.
노태우후보의 당선은 국민이 합의한 규칙에 따른 것이기 때문에 득표율에 관계없이 유효하다. 집권세력은 정통성 도전의 방어에 일단 성공했다. 그러나 완벽한 것은 아니다. 정통성 확립은 집권과정의 「합법성」만으로는 안된다. 권력행사의 「정당성」, 권력집행의 「효과성」까지 갖춰야 한다. 집권에 법률상 흠이 없더라도 권력남용·법률위반등 권력행사에 하자가 있거나 경제성장·사회안정 등 통치의 실적이 없으면 정통성은 흔들린다.
앞으로 우리 사회의 기본과제는 권위주의 청산이다. 권위주의는 모든 분야에서 발전을 저해해온 시대의 망령이다. 그것이 가장 심했던 분야가 정치다. 권위주의가 극복되지 않는 한 노태우정권의 정통성 확립이나 야당의 성장은 위협받게 된다.
아르헨티나 태생의 정치학자 「오도넬」은 정치적 권위주의를 세가지로 분류했다. 첫째가 부통적 권위주의다. 프러시아(독)의 「프리드리히」 대옥이나 러시아의 「피터」 대제처럼 국민 위에 군림하는 왕조적 권위주의다. 둘째는 민중적 권위주의다. 아르헨티나의 「페론」 이나 이집트의 「낫세르」처럼 국민의 열광적 지지를 받으며 아래로부터 추대된 권위주의다. 셋째가 관료적 권위주의다. 기술관료와 정치장교가 결탁된 형태다. 그래서 관료-군부권위주의라고도 한다. 이것은 제3세계에 만연돼온 최신형 권위주의다.
그 어느 것이건 권위주의는 제도보다 인물중심이고 정책 결정이 지배자에 의해 배타적으로 이뤄지는 하향식의 종적체제라는 점에서 같다. 여기에 국민의 의사나 이익이 반영될 여지는 좁다. 대중의 정치참여도 배제된다.
관료권위주의는 정부 관료의 행정적 통제력과 직업군인의 물리적 강제력의 .동맹이다. 관료는 경제성장을 추구한다. 군부는 국가안보를 지상과제로 삼는다. 민중의 참여나 요구는 경제와 안보에 다같이 유해하다고 간주한다. 의회와 정당·노조·언론 등 힘있는 사회부문을 무력화한다. 정치문제도 행정차원에서 처리된다. 야당은 법원의 명령만으로도 해체될 수 있다.
이런 권위주의체제의 집권당과 정치적인 군부는 한 가지에 열린 두개의 사과다. 『비교정치제도론』(Comparative Political Institution)을 쓴 「프리드」는 이것을 『정당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일종의 군대다. 군대란 무엇인가. 그것은 일종의 정당이다』라는 말로 비꼬았다.
한국의 경우 이승만까지는 전통적 권위주의였다. 그는 국민 위에 군림함으로써 제왕의 정치행태를 재현했다. 4·19와 10·26후 민중적 권위주의가 등장할 기회가 있었으나 유산됐다. 그 결과 박정희 이후 관료권위주의가 이땅을 지배했다.
선거를 계기로 여야 정치세력이 권위주의 청산을 표방하고 나섰다. 그것은 당내 민주주의로 시작돼야 한다. 탈권위주의는 개방적 경쟁체제와 다원주의를 전제로 한다. 이것이 이뤄지면 지도자 중심이 제도중심으로 바뀐다. 정책결정도 개방된다. 지명제는 경선제로 되고 모든 조직이 상향식으로 운영된다. 대중의 정치 참여도 그만큼 확대된다. 국민의사와 이익도 폭넓게 반영된다.
여당의 탈권위주의는 민주화와 직결된다. 여당이 권위주의에 머물러있는 한 정치 발전은 불가능하다. 노태우당선자는 출생·성장의 배경으로 보아 민주적 인물은 못된다. 그러나 6·29가 전환점이 됐다. 그것은 자신을 제물화한 「전부의 포기」를 각오하지 않고는 불가능한 결단이다.
6·29이후 그는 권위주의의 옷을 벗고 민간화된 군인, 민주주의적 인간으로 행동했다. 이것이 그의 당선을 도왔다. 새 대통령은 야당을 적대시하던 과거를 버리고 민주화의 파트너로 삼아야 한다. 민정당의 정권 유지는 부단한 민주화의 확대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야당의 탈권위주의는 당의 생존과 직결된다. 민주당과 평민당이 지금의 권위주의를 버리지 않으면 정권 교체는 불가능하다. 그것은 민정당을 일본 자민당 같은 영원한「패권정당」(hegemony party)으로 만들지 모른다.
양김이 오늘처럼 당위에 군림하는 한 야당의 탈권위는 불가능하다. 민주화 운동에서 야당은 학생·지식인·종교인에게 주역을 빼앗겼다. 이제는 여당에마저 빼앗기고 있다. 지금은 양김이 야당과 민주화를 위해 「전부의 포기」를 선언할 때다. 그런 제물화의 결단 없이 야당은 영원한 소수정당을 면키 어렵다.
정당의 탈권위 없이 정치발전은 없다. 사회 전반에 깔려 있는 권위주의도 뽑히지 않는다. 정당의 비권위화는 당수의 수범으로 시작돼야 한다. 지금이야말로 노태우씨가 「보통사람」의 자리를 굳혀야할 때다. 김영삼씨는 「빈 마음」을 되찾아야 한다. 김대중씨는 「행동하는 양심」을 실증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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