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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개천용이 필요한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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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안혜리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안혜리 라이프스타일 데스크

안혜리 라이프스타일 데스크

‘15년 도전, 13년 만의 결실….’

해외출장에서 돌아와 지나간 신문을 들춰보니 올해로 마지막인 사법시험 최종합격자 인터뷰가 여기저기 눈에 띈다. 15년 도전 끝에 “꿈을 이뤘다”는 45세 최고령 합격자부터, 결혼은 언감생심 사시 합격 후에야 카카오톡을 설치하고 13년 만에 대학 동기와 전화했다는 37세 수석 합격자까지 다양하다. 10여 년의 노력을 보상받았으니 분명 축하받을 일이다. 하지만 인간 승리라고 마냥 찬사만 보낼 수 없는 찜찜한 구석도 있다.

두 가지 ‘삐딱한’ 생각 때문이다. 우선, 이들이 과연 훌륭한 법조인이 될 수 있을까 하는 우려다. 이번 합격으로 실력에다 굳은 의지까지 증명한 셈이니 업무 역량을 의심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좁은 시야는 또 다른 얘기다. 성인이 된 후 10년 넘도록 스스로 돈을 벌기는커녕 아내와 부모의 경제적 도움 속에 신림동 고시촌에 틀어박혀 오로지 사시 합격만을 목표로 한 삶을 살았다. 물론 예외는 있겠으나 이런 경험이 타인의 삶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기보다 지나간 시절을 보상받고 싶은 심리로 이어질 수 있다는 건 누구라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이번 마지막 합격자들의 사연은 역설적으로 사시 폐지의 합리적 이유를 설명해 줬다.

또 하나는 우리 사회가 언제까지 법조계를 비롯한 관료사회 진입을 신분상승 사다리의 최정점으로 쳐주는 ‘개천용 프레임’에 갇혀 있을 것인가 하는 답답함이다. 일부에서는 “사시가 유일하게 개천에서 용을 만들어내는 통로”라며 사시 폐지를 아쉬워한다. 인공지능과 경쟁할 정도로 급변하는 시대에 판검사·변호사가 왜 수많은 직업 중 하나가 아니라 ‘용’으로 대접받아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또 로또 같은 한 방의 시험으로 인생역전을 할 수 있다면 그건 건강한 사회도 아니다.

‘벼슬이면 전부라는 생각에 감투 쓰는 일에만 모두가 집중하는 어두운 사회 분위기가 조성됐다. 모두 관리가 되는 것만을 목표로 삼는 관권 지향적인 사회.’(『평설 우리 민족의 나갈 길』 중에서)

어제(14일) 탄생 100주년을 맞았던 박정희 전 대통령이 1962년에 짚은 문제다. 그때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많은 걸 누리고 사는 지금, 왜 여전히 60년대 프레임에 고착돼 있는지 그저 한숨이 나올 뿐이다.

안혜리 라이프스타일 데스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