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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삼성반도체 뇌종양 근로자 산재 인정해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대법원이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 희귀병에 걸려 숨진 생산직 근로자에 대해 산업재해를 인정했다.
대법원 3부(주심 박보영 대법관)는 14일 삼성전자 온양사업장에서 일하다 희귀병을 얻은 이모씨 유족이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요양불승인 처분 취소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한 2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삼성전자 사옥 출입구. 신인섭 기자

삼성전자 사옥 출입구. 신인섭 기자

이씨는 1997년 5월 삼성전자 온양사업장 반도체 조립라인의 검사공정에서 일하다 2003년에 퇴직했다. 퇴직 후 7년이 지난 2010년에 뇌종양 진단을 받았고, 종양 제거수술을 받은 후 암투병 중 2년만에 사망했다. 이씨는 숨지기 전 자신의 뇌종양이 업무상 재해에 해당한다며 산재 요양을 신청했지만 근로복지공단은 질병과 업무 사이에 인과관계를 인정하기 어렵다며 승인하지 않았다.

1심에선 이씨의 업무상 재해가 인정됐다. 서울행정법원 이상덕 판사는 2014년 11월 “발병의 원인과 메커니즘이 의학적‧자연과학적으로 명백히 밝혀지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원고들이 근무하는 동안 벤젠, 포름알데히드, 옥사이드에틸렌, 다핵방향족탄환수소, 납 등과 같은 유해 화학물질과 주야간 교대근무 등 유해요소들에 일정 기간 지속적으로 노출돼 발병했을 수 있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2심을 맡은 서울고법 행정9부(부장 김주현)는 지난해 10월 항소심에서 과로와 스트레스를 받았을 가능성은 인정하면서도 “업무수행과 질병 사이의 인과관계를 인정할 증거가 없다”며 원고 패소 판결했다.

대법원은 이 사건 상고심에서 인과관계를 인정할 여지가 있다고 판단했다. 이씨가 입사 전에 건강에 별다른 이상이 없었고, 뇌종양과 관련한 유전적 원인이나 가족력이 없다는 점을 고려했다. 이씨의 발병 시기는 만 30세로 비교적 이른 나이였다.

대법원은 "뇌종양은 빠른 성장을 보이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이는 종양이 빠르게 성장·악화한다는 것을 의미할 뿐 발암물질에 노출된 후 발병에까지 이르는 속도 역시 빠르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보기 어렵다"며 "퇴직 후 7년이 지나 뇌종양 진단을 받았다는 것만으로 업무와 뇌종양 발병 사이에 관련성이 없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대법원은 지난 8월 삼성전자 LCD 공장에서 일한 뒤 희귀질환인 ‘다발성 경화증’이 생긴 이모(33)씨의 요양 불승인 처분 취소 소송 상고심에서 이씨 패소로 판결한 1, 2심을 취소하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이씨는 4년여 동안 LCD 모듈 검사과에서 검사원으로 일했다.

대법원은 당시 이씨가 하루 12시간 이상 전자파와 이소프로필알코올 등의 화학물질에 노출된 점이 발병의 원인과 관계가 있다고 판단했다. 당시 재판부도 이번 사건을 심리한 대법원 3부(주심 김재형 대법관)였다. 대법원 관계자는 "산업현장에서 상시적으로 노출허용기준 이하의 유해인자에 노출되는 근로자에게 원인을 정확히 알 수 없는 희귀질환이 발병한 경우 보다 전향적으로 업무와의 인과관계를 인정해 산재요양급여를 지급해야 하고, 그것이 산업재해보험보상제도의 본래 목적과 기능에 따른 것임을 강조한 판결이다"고 설명했다.

유길용 기자 yu.gily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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