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文 대통령 말한 '리롱떵 왕자'의 비밀…'화산 이씨' 시조는 누구?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문재인 대통령이 ‘리롱떵’이라는 생소한 이름을 언급했다. ‘안남국의 왕자’라고 소개하면서다.

APEC정상회의 참가차 베트남을 방문중인 문재인 대통령이 11일 오전 (현지시간) 다낭시청사에서 쩐 다이 꽝 베트남 국가주석과 한-베 정상회담을 갖고 상호 협력방안에 대해 논의 했다. 2017.11.11 청와대사진기자단

APEC정상회의 참가차 베트남을 방문중인 문재인 대통령이 11일 오전 (현지시간) 다낭시청사에서 쩐 다이 꽝 베트남 국가주석과 한-베 정상회담을 갖고 상호 협력방안에 대해 논의 했다. 2017.11.11 청와대사진기자단

문 대통령은 지난 11일 베트남 호찌민시 응우엔후에 거리에서 열린 ‘호찌민-경주세계문화엑스포2017’ 개막식에 보낸 영상축전에서 “베트남과 한국은 유구한 역사 속에 함께 교류해왔다”며 “고대부터 우리 선조들은 먼 바닷길을 오가며 교류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그러면서 “안남국의 왕자 리롱떵(李龍祥)은 고려에 귀화해 한국 화산(花山) 이씨의 시조가 됐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 호찌민-경주 엑스포 축사서 "리롱떵 왕자" 언급 #13세기 베트남 '리왕조' 멸망 때 탈출한 '화산 이씨'의 시조 #베트남, 화산 이씨 왕조 찾기 노력…리롱떵 후손 우대 정책

화산 이씨. 한자 발음으로는 ‘이용상’이라고 읽는 ‘리롱떵 왕자’는 누굴까.

1995년 3월 27일 중앙일보에는 작은 인터뷰 기사 하나가 났다. 제목은 ‘13세기 고려 귀화 베트남 왕자 31대손 이창근 씨’다.

1995년 3월27일자 중앙일보. 인터뷰에는 화산이씨 이창근 씨의 인터뷰가 실려 있다. 그는 문재인 대통령이 언급한 리롱떵 왕자의 31대손이다.

1995년 3월27일자 중앙일보. 인터뷰에는 화산이씨 이창근 씨의 인터뷰가 실려 있다. 그는 문재인 대통령이 언급한 리롱떵 왕자의 31대손이다.

이씨는 당시 인터뷰에서 “베트남의 왕족이면서 한국인이라는 이점을 최대한 활용해 한국과 베트남 간 문화교류의 가교역할을 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당시 그의 나이는 38세로 돼 있다.

기사에는 “13세기초 고려에 귀화한 베트남의 ‘리(LY) 왕조’의 7대 왕자였던 리롱떵”이라는 대목이 나온다. 리왕조는 1009~1225년까지 베트남에서 가장 오랫동안 번성했던 왕조였는데, 리롱떵이 13세기초 외적들이 날뛰면서 왕위세습이 좌절되자 정치적 박해를 피해 배를 탔다가 표류한 끝에 고려 옹진현에 정착하게 됐다고 설명돼 있다.

교과서에 실려 있는 베트남 리왕조 관련 기록.

교과서에 실려 있는 베트남 리왕조 관련 기록.

먼저 ‘리왕조’부터 확인해봤다.

리왕조(李王朝) 또는 이조(李朝)는 9대 217년에 이르는 베트남 사상 최초의 장기 정권이었다. 수도는 현재의 하노이다. 리왕조는 베트남인에게는 자부심의 상징이라고 한다. 중국과 국경을 접하고 있는 베트남은 항상 중국의 침략을 받았다. 이 때문에 20~30년 이상 지속된 왕조가 없었다.

그러나 리왕조는 200년 넘게 지속됐다. 최초로 중국의 속국에서 독립국가가 돼 중국으로부터 자주성을 유지하며 태평성대를 누렸던 유일한 베트남 왕조인 셈이다.

그러나 리왕조는 중국계인 진씨 왕족에 의해 멸망됐다. 왕족 72명은 모두 생매장됐고 가까스로 탈출한 리롱떵(이용상) 왕자만 탈출에 성공해 살아남았다.

그러나 그는 최초의 ‘보트 피플’이 됐다. 겨우 고려 옹진에 닿아 상륙했고, 당시 옹진 현령의 호감을 얻었다. 현감은 “안남국의 황손이 멀리서 배를 타고 와 도적을 퇴치했다”는 상소문을 당시 고려 고종에게 썼고, 고종은 그를 ‘화산군(花山君)’으로 봉했다고 한다.

1253년 몽골군이 침략했을 때 리롱떵은 몽골에 맞서 싸워 큰 공을 세웠다. 그는 옹진 화산에 정착했지만, 화산성에 망국단(望國壇)을 만들고 고국을 그리다가 일생을 마쳤다고 한다. 그의 후손들은 리롱떵을 시조로 삼아 본관은 화산으로 삼았다.

화산 이씨의 족보

화산 이씨의 족보

현재 화산이씨들이 바로 베트남 왕국의 왕자 리롱떵의 후예들이다.

이들은 지난 1995년 780년만에 베트남에 초청됐다. 1992년 한ㆍ베트남 수교가 이뤄진 뒤 베트남 정부가 과거 왕족의 마지막 후손들의 수소문해 초청했다고 한다.

1995년 화산 이씨 종친회 간부들이 베트남을 찾았을 때는 당시 도 무오이 당서기장 겸 대통령을 비롯한 3부 요인이 모두 나와 환대했다. 특히 화산 이씨가 베트남에서 살기를 희망할 경우 출입국관리, 세금, 사업권 등에서 베트남 사람과 똑같이 대우해줬다고 한다.

베트남에서 관광업을 하는 한 교민은 “베트남의 이민 정책이 까다로워 해외 이민자를 잘 받지 않는다”라며 “현재 베트남에 수만 명의 교민이 살고 있지만 베트남 국적을 취득한 사람은 이창근ㆍ이충근 등 2명밖에 없다고 들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들 2명은 과거 리씨 왕조의 후손으로 고려에 이주했던 왕자의 후손들인데, 베트남 정부가 과거 ‘뿌리 찾기’의 일환으로 이들의 이주를 도왔다고 한다”고 전했다.

11일 베트남 호찌민 응우옌 후에 거리 특설무대에서 열린 '호찌민-경주세계문화엑스포 2017' 개막식에서 한국공연단이 축하공연을 선보이고 있다.[연합뉴스]

11일 베트남 호찌민 응우옌 후에 거리 특설무대에서 열린 '호찌민-경주세계문화엑스포 2017' 개막식에서 한국공연단이 축하공연을 선보이고 있다.[연합뉴스]

그는 이어 “베트남에 한국인들이 사업을 하려고 많이 들어와 있는데, 초기에 베트남 국적을 가지고 있는 이들 두 사람에게 한국인들이 사기를 많이 쳤다”며 “한국이 베트남에 대한 대규모 투자를 하거나 할 때 이들은 엄청난 자산이 될 수 있는데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라고 덧붙였다.

화산이씨 관련 유적

화산이씨 관련 유적

문 대통령은 이번 동남아 순방을 통해 동남아 아세안(ASEAN) 국가들과 ‘한ㆍ아세안 미래공동체’를 구성하겠다는 비전을 제시했다. 5년 내에 아세안과의 관계를 미ㆍ일ㆍ중ㆍ러 등 한반도 주변 4강국 수준으로 끌어올리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그러면서 “‘사람이 먼저다’라는 내 정치철학은 아세안이 추구하는 ‘사람 지향, 사람 중심’ 공동체 비전과 일치한다”며 아세안을 단순한 ‘시장’이 아닌 ‘공동체’로 접근하겠다는 뜻을 강조했다.

관련기사

다낭ㆍ마닐라=강태화 기자 thkang@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