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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100년 등대'지킴이에 보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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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우도 등대에서 근무하는 지킴이 세 사람이 옛 등대 앞에 섰다. 남자들은 왼쪽부터 고영진·양정식·이송균씨며 나머지는 양씨의 부인과 가족, 그리고 오랜만에 섬을 찾은 고씨의 부인이다. 옛 등대 뒤로 보이는 등대가 새로 설치한 등대다. 우도=양성철 기자

20일 제주도 남제주군 성산포항에서 동쪽으로 3.8㎞ 떨어진 우도. 배에서 내려 2㎞를 걸어가니 우도의 유일한 기생화산인 해발 132m의 '소머리 오름'이 나타났다. 산 정상에 올라서자 2개의 등대가 위용을 뽐낸다. 하나는 올해로 세운 지 100년 된 등대고, 10여m 떨어진 곳에 2003년 말 새로 지은 등대가 자리잡고 있다.

등대는 이송균(57) 항로표지관리소장과 부소장 격인 고영진(59)씨, 그리고 막내 양정식(33)씨 등 3명이 지키고 있다. 이들은 8시간씩 3교대 근무를 하고 있다.

이 소장은 "새 등대가 불을 밝히면서 옛 등대는 철거하지 않고 관광용으로 보존하고 있다"고 말했다.

불빛만으로 바다의 길잡이 역할을 하던 우도 등대는 16m 높이의 새 등대가 생기면서 역할도 첨단화했다. 등대의 불빛 세기도 과거보다 세 배 더 밝은 200만 광도로 바뀌었다.

또 조도 감지센서 시스템 등 각종 전자장비가 설치돼 제주 본섬 주변 40㎞ 해안 25개의 무인등대 작동상황도 이곳에서 파악한다. 등대지기들은 안개가 끼면 곧바로 메아리와 같은 특유의 음파신호를 바다로 보낸다. 기상청에 기준시간별로 구름과 파고 등 육안관측 상황을 알리고, 바닷물의 수온과 염분 농도를 알기 위해 시료를 채취하는 등의 업무도 이들의 몫이다.

"예전엔 물이 없어 빗물을 받아 물통에 보관했다가 식수로 사용했지요."

30년 가까이 등대지기 생활을 해 온 이 소장과 고씨는 "섬만을 돌며 근무하다 보니 가족과 함께 사는 건 포기한 지 오래"라고 말했다. 그나마 양씨는 아내와 아이들이 아예 섬으로 합류해 이들보단 나은 형편이다.

이 소장은 1979년 15t급 목선을 타고 우도로 와 처음 등대지기 생활을 시작했다. 지난해 12월 이 등대로 다시 부임, 이번이 두 번째다. 고씨는 37세 때인 84년 이 일을 시작했다.

고씨는 "교대근무라지만 낮밤 가리지 않는 24시간 근무제다 보니 불면증에 시달린다"며 고충을 토로했다. 고씨는 첫 근무지자, 2년 전 네 번째로 다시 근무하게 된 우도에서 6월 퇴직을 앞두고 있다.

고참들의 얘기에 '신세대' 양씨가 말을 받았다. 95년 등대지기 일을 시작해 마라도.추자도를 거쳐 3년 전부터 우도에서 근무 중인 그는 "할 만해요. 이젠 수돗물도 나오고…"라며 의욕을 보였다. 고교 전기과를 나온 그는 틈 나면 섬 주민들의 전자제품 수리까지 도맡아 재주꾼 소리를 듣는다.

이들 등대지기가 가장 바쁠 때는 관광객이 찾는 여름철. 등대 옆에 국내외 13개 유명 등대 모형을 전시해 관광객에게 볼거리를 제공하기도 한다.

"한여름엔 하루 1000~2000명이 찾아옵니다. 그땐 진땀이 나요." 이 소장은 "국내 어느 곳에도 이런 테마공원은 없다"며 자랑했다.

우도를 지키는 이들 세 사람은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어둠에서 희망의 불빛을 밝혀 온 100년 명성의 등대 일꾼으로서 사명을 잊지 않겠다"고 마음을 모았다.

우도=양성철 기자

우도 등대는…
1906년 일제가 군함 안내용으로 설치

우도는 제주에선 규모가 큰 섬으로, 653가구 1719명이 산다. 소가 드러누운 모양이라고 해 우도로 불린다. 우도 등대는 바로 그 소의 머리에 해당하는 산 정상에 있다. 1906년 2월 일본 해군성의 요청으로 체신성이 세웠다. 당시 나무로 만든 움막 같은 집에서 호롱불 수준의 가스등을 밝혔다. 한 달 뒤인 3월 정식으로 6m 높이의 등탑을 만들어 전구를 매달면서 등대의 이름을 얻었다. 주변을 오가는 군함의 안내자 역할을 하는 군사적 목적의 무인 등대였다. 1903년 세워진 국내 첫 등대인 인천 팔미도 등대에 이어 네 번째로 설치됐다. 제주도에선 4개의 유인 등대 중 가장 먼저 세워졌다. 이후 이 등대는 태풍으로 수차례 파손돼 다시 짓기를 반복, 1910년 현재의 모습으로 만들어졌다. 제주해양수산청은 다음 달 26일 우도 등대 100주년을 맞아 주민.관광객이 함께하는 '우도 사랑 섬 일주 걷기대회'를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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