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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코리안] "내 마음엔 한·일 함께 있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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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 15대 심수관씨가 일본 가고시마의 작업실에서 도자기를 만들고 있다. 그는 “도자기를 통해 나의 혼을 느낀다”고 말했다. 가고시마=김현기 특파원

일본 규슈(九州) 남단 가고시마(鹿兒島) 공항에서 승용차로 한 시간 거리. 400여 년 전 일본에 끌려온 도공(陶工) 심당길(沈當吉)의 자손인 제15대 심수관(沈壽官.46)의 하루는 '단군 신사'에서 시작된다. 조국을 향해 절을 하며 마음을 다스린다. 단 하루도 거른 적이 없다. 이 조그마한 사당은 도요(陶窯)에서 걸어서 10분. 그러나 이곳처럼 마음이 포근해지는 안식처는 없다고 한다.

정상회담차 가고시마를 방문한 노무현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이곳을 찾았을 때다.

대통령 일행이 돌아간 뒤 '심수관 도요'의 조선 도공 후손 3명이 둘러앉았다. 말이 필요 없었다. 밤 늦게까지 울고 또 울었다고 한다. "직접 대통령을 뵈니 '조국은 우리를 버리지 않았구나'하는 생각에 가슴이 뭉클하더군요." 민족 정체성을 잃지 않겠다는 각오 하나로 400년이 넘는 세월을 악착같이 버텨왔던 이들이다.

심수관가가 세운 '사쓰마(薩摩.가고시마의 옛 지명) 자기'는 일본 3대 도자기 중 하나다. 2000년 1월 정식으로 가문의 공식 후계자가 된 15대 심수관이 말하는 도자기 기술의 기본은 '정확한 거리 판단'. "도자기는 만들 때의 눈과 감상할 때의 눈이 다릅니다. 만들 때는 작품에서 눈까지의 거리가 30cm가량이지요. 그러나 제3자가 도자기를 감상할 때는 1m가량 떨어져 봅니다. 따라서 도자기를 만들 때 감상하는 이가 1m 정도 떨어진 곳에서 어떻게 볼 것인가를 염두에 둬야 합니다."

그는 한.일 간의 도자기 문화에서 양국의 차이를 확연히 느낀다고 했다.

"도자기는 정치를 반영합니다. 한국 도자기는 '고려청자''조선백자'처럼 시대명이 앞에 붙습니다. 구분이 명확하지요. 과거를 강하게 부정함으로써 새로운 창조를 한다는 점이 한국 도예의 특징입니다. 그러나 일본 도자기에는 이런 개념이 없습니다. 일본은 지역별로 오랜 전통을 다양하게 보존해 나가는 특징이 있습니다. 한국 도자기는 힘이 넘치고 속도감이 있지만 다양성이란 면에선 부족합니다. 반면 일본 도자기는 다양하지만 힘은 떨어집니다."

굴곡 많은 한.일 양국에 대한 그의 견해는 어떨까.

그는 자신을 "한국이라는 혼을 갖고 일본이라는 땅에서 살아가는 사람"이라고 표현했다. "도예의 원조는 조선이지만 '사쓰마 자기'를 키워 준 것은 일본이라는 대지입니다. 한국의 기술에 일본의 마음이 더해져 새로운 도자기가 태어났다고 봅니다. 내 마음엔 한국과 일본이라는 두 나라가 함께 있습니다. 두 나라 중 어느 쪽이 위고 어느 쪽이 아래라는 생각은 없습니다."

"나는 또 '납치 피해자'의 후손입니다. 정유재란 때 남원에서 도공을 끌고 왔다지만 실은 일본이 치밀하게 사전 준비했던 것입니다. 어떤 도공이 실력이 뛰어난지 납치 대상자 리스트를 다 파악하고 있었던 것이지요." 자신을 '납치 피해자'라고 설명하는 그는 최근 한.일 양국의 불협화음과 관련해 먼저 감정적 접근을 피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마음을 가라앉힌 뒤 모든 것을 상식선에서 생각해 해결했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피력했다.

그는 '한.일 우정의 해'를 맞아 24일 교토(京都) 전통공예관에서 '심수관 역대전'을 연다. 가고시마 이외의 일본 도시에서 전시회를 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와세다대 교육학부를 졸업한 뒤 도공의 길에 들어선 그는 1990년에는 경기도 이천의 김일만 토기 공장에서 10개월간 김칫독 만드는 법을 전수받기도 했다. 현재 25명의 직원과 도공이 함께 일하는 '심수관요(窯)'의 사장이다.

"제 꿈이요? 한국의 시골길을 조용히 걷는 것입니다. 조국의 향기를 흠뻑 맡으면서 말이지요."

가고시마=김현기 특파원

*** 12대부터 '심수관' 가문의 세습명으로

심수관가(家)의 시조는 1598년 정유재란 때 일본으로 끌려간 심당길(沈當吉)이다. 당시 일본의 시마쓰 17대 번주는 전라북도 남원성에서 왕자와 함께 도공 80명을 가고시마로 데려왔다. 전쟁이 끝난 뒤 왕자는 조선으로 돌아갔으나 도공들은 남게 됐다. 심당길은 1603년 현 가고시마 히가시이치기(東市來)에 한국 전통 도요를 세웠다. 가마의 불을 빼고는 모두가 조선의 혼이 실려 있다는 의미로 이곳에서 만들어진 자기는 '히바카리(불만.only fire)'로 불리기도 했다. 도일(渡日) 400년째인 1998년에는 남원의 불씨를 가고시마의 가마로 옮기는 행사를 치렀다. '심수관'이라는 이름은 심당길의 12대 후손인 심수관이 1873년 오스트리아 만국박람회에 대형 도자기 '금수대화병(사진)'을 출품, 유럽의 절찬을 받으면서 이후 가문의 세습명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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