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밭' 앨라바마 주까지 흔들리는 미 공화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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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공화당)대 48(민주당)의 미국 상원의원 구성이 위태롭게 됐다.
다음달 12일 앨라바마 주 상원의원 보궐선거에서 공화당 후보가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민주당 후보가 승리할 경우 상원 의석분포는 51(공화)대 49(민주)의 박빙의 차이가 돼 각종 법안 처리에 난항을 겪을 수 있다. 존 매케인(조지아 주), 린지 그레이엄(사우스캐롤라이나 주) 의원 등 공화당 소속이지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 각을 세우고 있는 상원의원들이 여럿 포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이 2명이라도 민주당쪽에 가세하면 트럼프 행정부는 곤란한 상황에 놓이게 된다.

다음달 12일의 보궐선거 앞두고 민주당 후보가 앞서 #가장 확실한 '공화당 주' 놓칠 경우 내년 중간선거 큰 타격

하지만 공화당의 가장 큰 고민은 내년 말 임기 2년인 하원의원 전원, 임기 6년 상원의원 100명 중 3분의 1을 교체하는 중간선거에의 악영향이다.

미국 앨라바마 주 상원의원 보궐선거에 출마한 공화당 후보 로이 무어

미국 앨라바마 주 상원의원 보궐선거에 출마한 공화당 후보 로이 무어

트럼프의 지지율이 사상 최저치 수준으로 떨어져 있는 상황에서 '영원한 공화당 주'로까지 불렸던 앨라바마 주까지 민주당에 넘어갈 경우 상황은 겉잡을 수 없이 악화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앨라바마 주는 1980년 이후 37년 간 총 10차례의 대통령선거에서 단 한번도 민주당이 이긴 적이 없었다. 지난 대선에서도 트럼프가 힐러리 클린턴 후보에게 28%포인트 차로 압승했다. 의회전문매체 '더 힐'이 3년 전 조사한 50개 주 특성 조사에서 '가장 확실한 공화당 주' 1위로 뽑혔을 정도다.

여론조사 기관 JMC 애널리스틱스·폴링이 12일(현지시간) 발표한 최신 여론조사에 따르면 공화당 후보 로이 무어는 42%, 민주당 후보 더그 존스는 46%를 기록했다. 이달 초까지만 해도 공화당 무어 후보가 10%포인트 내외 앞섰던 것에서 역전된 것이다.

워싱턴포스트는 "무어 후보가 지난 79년 32살 때 자신의 집에서 14살 소녀의 몸을 더듬는 등 10대 여성 4명을 추행하거나 성희롱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상황이 반전됐다"고 분석했다. 무어 측은 "허위 비방이자 정치적 음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벌써부터 공화당 내부에선 "더 이상 늦기 전에 후보를 교체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앨라바마주 상원의원 선거는 이곳의 터줏대감으로 상원의원이던 제프 세션스가 법무장관에 취임함에 따라 대행체제로 유지되다 이번에 보선이 치뤄지게 됐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과 스티브 배넌 전 백악관 수석전략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과 스티브 배넌 전 백악관 수석전략가.

상황의 불리하게 돌아가자 트럼프 행정부 내 각료들과 의회 지도부에도 비상이 걸렸다.
스티브 므누신 재무장관은 12일 CNN과의 인터뷰에서 "혐의가 사실로 입증된다면 믿을 수 없을 만큼 부적절한 행동"이라며 무어 후보의 조건부 퇴진을 촉구했다. 이에 앞서 미치 매코널 상원 원내대표, 폴 라이언 하원의장도 비슷한 견해를 피력했다.

하지만 미 언론들은 "무어 후보가 워낙 지역기반이 튼튼한데다 트럼프의 측근 스티비 배넌 전 백악관 수석전략가의 강력한 지지를 받고 있어 이를 대체할 마땅한 인물도 없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앨라바마 주 대법원장을 지낸 무어 후보는 기독교 복음주의를 추종하고 동성애와 이슬람을 혐오하는 극우파 인사로 분류된다. 2000년 주 대법원장에 취임하자마자 2385 kg짜리 화강암에 성경의 십계명을 새겨 이를 법원청사에 설치했다. 연방법원이 정교(政敎)분리 원칙을 내세워 위헌이라며 철거를 명령했지만 이에 불복하다, 결국 자리에서 쫒겨났다. 2012년에 다시 주 대법원장으로 돌아왔지만 연방대법원의 판결에도 불구하고 산하 법원 판사들에게 동성결혼 서류를 발급하지 말라고 지시해 직무정지 끝에 해임됐다.

지난 9월 공화당 경선에선 트럼프를 비롯 의회 지도부가 일제히 다른 후보를 지원했지만 보수적 지역기반을 활용, 공화당 후보로 선출됐다. 앨라바마 주에는 30만 대 생산규모의 현대자동차 공장이 있다.

워싱턴=김현기 특파원 lucky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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