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바루기] ‘사열을 받는 트럼프’는 낯설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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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9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아시아에서 극진한 대접을 받았다. 한·중·일은 국익을 위해 기꺼이 레드카펫을 깔았고, 트럼프는 만족감을 드러냈다.

절정은 의장대 사열이었다. 감명 깊었다거나 아름다운 환영식이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문제는 트럼프가 어떤 곳에선 사열을 받고 어떤 곳에선 사열을 한다는 식으로 표현된 문구들이다. 정말 그는 사열을 받기도 하고 사열을 하기도 했을까?

“트럼프 대통령은 시진핑 국가주석의 안내에 따라 레드카펫이 깔린 길을 걸으며 의장대의 사열을 받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의장대의 사열을 받는 도중에 여러 차례 거수경례로 답하기도 했다”처럼 표현하는 것은 옳지 않다. “트럼프 대통령은~ 의장대를 사열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의장대를 사열하는 도중에~”로 각각 고쳐야 바르다.

사열(査閱)은 부대의 훈련 정도, 사기 따위를 열병과 분열을 통해 살피는 것을 말한다. 사열의 주체는 부대를 구성하는 병사가 아니라 지휘관들이다. 외교 의전 행사로 치러지는 의장대 사열도 마찬가지다. 사열을 하는 이들은 국가수반이므로 “의장대를 사열하다”고 표현해야 주객이 뒤바뀌지 않는다.

“두 정상은 의장대장의 안내로 단상에서 내려와 군악대·전통악대의 행진곡 연주와 함께 나란히 의장대를 사열했다”와 같이 써야 한다.

이은희 기자 eun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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