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바루기] 그리움은 가으내 깊어가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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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잎들이 떨어진 앙상한 가지/ 고독한 자태로 매달린 열매/ 외로움은 어둠 속으로 스며들고/ 그리움은 가으내 물들어 가고// 가을 산 아름다움 주는데/ 외로움 이슬처럼 내려앉고/ 유유히 흘러가는 강물처럼/ 그리움은 가으내 깊어만 가네.

김지명 시인의 시 ‘그리움은 가으내 깊어가고’의 일부분이다. 수채화를 그리듯 주변을 붉게 채색했던 잎들이 찬 바람에 우수수 떨어지고 있다. 시에서 읊었듯이 떨어지는 잎을 보면 우리네 인생도 저러한가 싶어 어딘지 쓸쓸함이 밀려오고 불현듯 그리운 사람이 생각나기도 한다.

시에 나오는 ‘가으내’는 ‘가을 내내’를 뜻하는 말이다. 그렇다면 ‘가을내’로 쓰면 어떻게 될까? ‘봄내’ ‘여름내’도 있으니 ‘가을내’라고 해도 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가을’과 ‘내’가 합쳐진 말로 원래는 ‘가을내’였겠지만 발음을 부드럽게 하다 보니 ‘ㄹ’ 받침이 떨어져 나가 ‘가으내’가 됐다. ‘가으내’를 표준어로 삼고 있어 ‘가을내’라고 쓰면 안 된다.

‘겨우내’도 마찬가지다. ‘겨울내’에서 ‘ㄹ’이 받침이 탈락해 ‘겨우내’가 됐다. ‘겨우살이’ 역시 ‘겨울살이’라고 하면 틀린 말이 된다.

‘멀지않아→머지않아, 찰지다→차지다, 길다랗다→기다랗다, 달디달다→다디달다’ 등도 이런 예다. 모두 받침이 없는 형태를 표준어로 삼고 있다.

배상복 기자 sbba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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