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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사는 도시를 사랑하는 게 행복의 시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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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세계문화대회’에 연사로 참여한 프랑스 영화제작자 엠마뉴엘 벤비히. 임현동 기자

'2017 세계문화대회’에 연사로 참여한 프랑스 영화제작자 엠마뉴엘 벤비히. 임현동 기자

영화 ‘사랑해, 파리’(Paris, je t'aime)는 세계 각국의 감독 20여명이 참여해 만든 영화다. 나탈리 포트만, 줄리엣 비노쉬 등 할리우드의 유명배우들도 대거 참여했다. 2006년 칸느영화제에서 처음 상영된 후 여러 나라에서 개봉해 인기를 끌었다. 국내에서는 같은 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됐는데, 당시 5000석 야외상영관이 예매 시작 30분 만에 매진될 정도로 주목을 받았다.

[2017 세계문화대회] #내가 세상을 바꾸는 방법③ #건강한 도시 공동체 꿈꾸는 영화감독 엠마뉴엘 벤비히 #2006년 ‘사랑해, 파리’ 이후 도시 시리즈 제작 #뉴욕ㆍ상하이ㆍ리우 이어 베를린 기획 중 #‘시티즈 오브 러브’ 통해 지속가능 발전 동참 #시민이 도시에 대한 자부심 갖는 게 핵심 #“서울 아름답지만, 시민들 경직돼 있어 #도시에 대한 긍지가 갈등 해결의 첫 걸음“

파리를 주제로 만들어진 영화는 각각 5분씩 총 18편이 옴니버스로 구성됐다. 얼핏 보면 영화감독들이 파리라는 장소를 통해 ‘사랑예찬’을 벌이는 것 같다. 하지만 이 영화는 파리의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는 데 더 집중하고 있다. 몽마르뜨 언덕, 세느 강변, 에펠 탑, 바스티유 등 파리의 다양한 지역에서 이야기가 펼쳐지기 때문이다.

10일 오후 충북 청주시 옛 연초제조창에 ‘사랑해, 파리’ 감독인 엠마뉴엘 벤비히를 만났다. 그는 1997년 이후 매년 한국을 찾고 있다. 부산국제영화제 등 영화 관련 행사에 참여하는 게 대부분이다. 하지만 이번엔 ‘2017 세계문화대회(Better Together 2017)’ 참석하기 위해 방한했다. 12일 열리는 토크 콘서트 ‘시토크(C!talk) 글로벌’에 연사로 나서 ‘미디어를 통해 건강한 도시문화와 도시공동체 만들기’를 주제로 강연도 한다.

그는 ‘사랑해, 파리’ 이후 ‘사랑해, 뉴욕’ ‘사랑해, 리우’ 등의 제작자자로 활동 중인 영화감독이자, 비영리 단체 ‘시티즈 오브 러브 글로벌’을 설립한 사회적 기업가이다. 이 기업의 목적은 전세계에 ‘자신의 도시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커뮤니티’를 만드는 것이다.

영화 ‘사랑해, 파리’가 개봉한지 11년이 지났다.
이 영화는 작은 아이디어에서 출발했다. 보통 영화는 기승전결로 이뤄져 있다. 하지만 우리의 삶이 이렇게 4단계로 흘러가지 않는다. 파리의 다양한 모습과 그곳에서 살아가는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싶었다. 5~10분짜리 단편영화로 장편영화를 완성하는 것 자체가 하나의 새로운 시도였다. 당시 세계 영화산업은 미국 할리우드를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었는데, 이에 대항하는 마음도 있었다. 가장 프랑스답고, 파리의 특징을 보여줄 수 있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사회적 기업 ‘시티즈 오브 러브 글로벌’도 만들었는데.
영화에는 세상을 바꿀 수 있는 힘이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대부분 영화 산업 관계자들은 흥행만을 위해 영화를 만든다. 아무리 좋은 의미를 갖고 있어도 관객을 모으지 못하고, 수익을 내지 못하는 영화는 의미가 없다. 요즘 개봉하는 영화들이 대부분 오락영화인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영화를 활용해 세상을 좀 더 살기 좋게 바꿀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고민했다. ‘사랑해, 파리’를 본 사람들에 파리에 대한 시각이 달라지는 것을 느꼈다. 파리를 잘 몰랐던 사람들은 파리가 어떤 도시인지 알게 됐고, 파리에 사는 사람들은 자신도 몰랐던 도시의 이면을 발견했다. 그때 건강한 도시를 만드는데 영화가 한 축을 담당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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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티즈 오브 러브 글로벌’은 정확히 뭔가.
자신의 도시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커뮤니티를 만드는 게 목적이다. 현재 파리·뉴욕·상하이·베를린·이스탄불·도쿄 등 23개 도시에서 참여하고 있다. 누구나 참여할 수 있지만,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참여자는 재단을 설립해서 돈을 모금하고 이 운동을 발전시켜 나갈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 캠페인처럼 일회성으로 끝나는 게 아니기 때문에 지속가능한 방법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모든 준비가 됐다고 판단하면 신청자를 ‘도시 매니저’로 임명한다. 도시 매니저의 가장 큰 역할은 도시의 환경 친화적 시스템을 만들고 유지하는 것이다. 또 그 도시를 사랑하는 사람들과 모임을 만들어 도시에 대한 긍정적인 이미지를 퍼뜨리고, 영상도 제작해 공유한다.
참여 후 달라진 도시가 있나.
인도 델리 지역을 예로 들면 되겠다. 델리 지역이 이 프로젝트에 참여하기 전까지는 도시 곳곳에 쓰레기가 쌓여 있고, 벽에는 전단지로 지저분했다. 하지만 이 모임에 참여한 사람들이 스스로 도시를 바꿔나가려고 노력했다. 시청 홈페이지에 자신이 어떤 구역을 청소할 것인지를 밝힌 후 많은 사람이 도시 정화 운동에 동참했다. 누군가는 도시 한 구석에 쌓여 있는 쓰레기를 치우고, 또 다른 사람은 지저분한 벽에 페인트를 새로 칠했다. 개인의 노력은 도시에 큰 영향을 안 줄 수 있다. 하지만 100명이 나서서 동네를 깨끗하게 만들려고 노력하면 도시는 달라진다. 물론 하루아침에 완성되는 일은 아니다. 더 많은 시민이 이 운동에 참여해야 하는 이유다.
‘시티즈 오브 러브 글로벌’에 한국도 참여하고 있나.
3년 전에 이에 대한 논의를 위해 한국에 온 적이 있다. 하지만 얘기가 잘 안 됐다. 한국도 준비가 되면 언제든 참여가 가능하다. 서울도 가능하고, 부산 등 또다른 도시에서 참여할 수도 있다. 이 프로젝트는 단순히 도시를 깨끗하게 만드는 게 목적이 아니다. 그 도시에 사는 사람들이 자긍심을 갖게 만드는 게 최종 목표다. 도시는 단순한 공간이 아니다. 그 도시에 사는 사람들의 행복을 결정하는 요소다. 모든 도시가 좋은 면과 나쁜 면을 모두 갖고 있다. 서울은 많은 사람들이 바쁘게 오가고, 교통체증이 심각하다. 빠른 시간에 경제 발전을 이뤄 그런지 사람들이 경직돼 있는 것도 문제다. 하지만 사람들이 항상 활기차고 멋진 자연환경과 야경을 갖고 있다. 이런 긍정적인 요소를 발견해 나가는 것도 그 도시를 사랑하는 방법 중 하나다.

청주=전민희 기자 jeon.min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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