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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타깝지만 조두순 재심은 불가능···전자발찌가 최선"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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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의 법정' 여검사 모델 김진숙

 2008년 12월 경기도 안산의 한 교회 화장실에서 조두순이 8살 ‘나영이(가명)’를 무참히 성폭행하고 크게 다치게 한 ‘조두순’ 사건. 당시 강간상해 혐의로 징역 12년 형이 확정된 조두순이 3년 여 뒤인 2020년 12월에 출소한다는 사실이 환기되면서 불붙은 국민청원 운동에 10일 현재 40만 명 이상이 참여했다. 재심을 받게 해 조두순 출소를 막아달라는 요구다. 올해 인천 초등학생 살인(7월), 부산 여중생 폭행(9월), 이영학 사건(10월) 등 아동이 피해자인 강력 사건들이 잇따라 생겼다.

"전자발찌 통한 사후 감독 외 재범 예방 수단 없어" #"성범죄자 출소 후 주거지 제한 등 제도 마련 필요" #"소년법 폐지, 형사미성년 하향 조정에 신중해야"

청와대 국민청원 사이트. 조두순 출소반대 청원에 10일 현재 43만여 명이 동참했다.

청와대 국민청원 사이트. 조두순 출소반대 청원에 10일 현재 43만여 명이 동참했다.

과연 청원 운동 참여자들의 요구는 실현될 수 있을까. 아동 대상 범죄를 둘러싼 법적 현실 전반을 진단해 보기 위해 초대 서울중앙지검 여성아동범죄조사부장을 지낸 김진숙(53ㆍ사법연수원 22기) 변호사를 만났다. 2011년 9월 여성아동범죄조사부(이하 여조부) 신설에는 조두순 사건이 직접적인 계기가 됐다. 최근 방영 중인 KBS 드라마 '마녀의 법정'에 등장하는 민지숙 부장검사(김여진 분)의 실제 모델이기도 한 김 변호사는 지난 8월 서울고검 검사를 끝으로 검찰을 떠났다.

김 변호사는 “나영이와 그 부모를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지만 재심은 불가능하다. 현재로선 법원의 명령에 따라 출소 후 부착하는 전자발찌(위치 추적 장치)를 이용해 감독을 철저히 하는 게 최선이다"고 설명했다.

지난 8월 변호사가 된 김진숙 초대 서울중앙지검 여성아동범죄조사부장은 "성범죄에 대한 형량은 많이 강화됐지만 피해자 보호 체계는 여전히 미진하다"고 말했다. 김상선 기자

지난 8월 변호사가 된 김진숙 초대 서울중앙지검 여성아동범죄조사부장은 "성범죄에 대한 형량은 많이 강화됐지만 피해자 보호 체계는 여전히 미진하다"고 말했다. 김상선 기자

조두순 사건 당시 검찰이 기소할 때 법 적용에 오류를 범한 것 아닙니까?
“네. 당시 성폭력특례법이 이미 개정돼 13세 미만 아동에 대한 강간상해 범죄의 법정형이 강화(당시 무기 또는 7년 이상의 징역, 현행은 무기 또는 10년 이상의 징역)된 것을 몰라 성폭력특례법이 아닌, 법정형이 낮은 형법상 강간상해죄(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을 적용해 문제가 됐습니다. 이런 실수를 막기 위해서라도 전문화가 필요하다는 인식에 따라 만든 게 여조부였죠.”
법원은 조두순이 술에 취해 있었다는 이유(심신미약)로 형을 감경해 두고두고 비난을 받고 있습니다.
“심신미약은 일단 인정되면 반드시 형을 감경해야 필요적 감경 사유입니다. 그 논란 때문에 이후 성폭력특례법이 적용되는 성범죄에서는 음주ㆍ약물로 인한 심신미약 주장을 판사가 재량으로 배척할 수 있도록 법이 바뀌었습니다. 그 영향으로 다른 범죄에서도 법원이 주취자에 대한 심신미약 인정에 신중을 기하는 추세입니다.”
검찰의 법적용 실수, 법원의 심신미약 인정의 부당함 등이 재심의 근거가 될 수는 없습니까?
“당시 선고 형량에 아쉬움이 남지만 일사부재리 원칙상 재심은 불가능해요. 형이 확정된 사람에게 추가로 불이익을 주자는 목적은 재심 사유가 될 수 없는 게 법 체계입니다.”
조두순 같은 흉악 성범죄자를 추가로 격리할 수 있는 방안은 없는 건가요?
“현행법상 물리적으로 추가 격리할 수 있는 제도는 없습니다. 지금으로서는 전자발찌를 이용한 사후 감독을 철저히 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조두순 재범 예방 수단은...

재범 방지를 위해 출소하는 범죄자를 일정 기간 격리ㆍ교화하는 사회보호법상 보호감호제는 이중 처벌 논란 속에 2005년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으로 사라졌다. 조두순처럼 음주ㆍ약물로 심신미약 상태였다고 판정된 성범죄자는 일정 기간 치료감호소에서 격리ㆍ치료를 받은 뒤 징역 형을 살게 하는 치료감호 처분의 대상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조두순과 같은 사이코패스형 강력 범죄자에게 치료의 기회를 제공하는 경우는 드물다. 검찰은 2008년 조두순에 대해 치료감호 청구 없이 무기징역을 구형했고 법원은 징역 12년형을 확정했다. 현실적으로 그 이상 조두순을 사회에서 격리할 방법은 없는 상태다. 법원은 조두순에게 징역형 외에 출소 후 7년 간 전자발찌 부착하고 5년 간 신상정보를 공개할 것을 함께 명령했다. 이 두 가지가 조두순의 재범을 막을 안전 장치의 전부인 셈이다.   

조두순이 2020년 출소 후 7년간 차게 될 전자발찌. [중앙포토]

조두순이 2020년 출소 후 7년간 차게 될 전자발찌. [중앙포토]

국민과 피해자가 덜 불안하도록 하기 위해 어떤 제도를 만들어야 할까요?
“최근 논의되고 있는 출소하는 범죄자의 사는 곳과 활동 공간을 일정 기간 제한하는 제도를 마련할 필요가 있습니다. 현재로선 법적 근거가 없는 상태죠.”
조두순 사건 당시 수사기관에 의한 2차 피해가 심각하다는 지적도 많았습니다.
“피해자 보호에 대한 감수성이 떨어지다 보니 경찰·검찰이 반복해 피해자 진술을 받았고, 심지어 법정에 까지 나와 진술을 해야했던 걸로 기억납니다. 여조부를 신설한 이후 가장 신경을 쓴 게 이 부분입니다. '피해자 조사는 가급적 경찰 조사로 끝낸다. 경찰 조사가 미진하더라도 추가 조사는 1회로 끝낸다'는 원칙을 관철했습니다. 이제는 친권자가 가해자인 경우에 필요한 친권상실 청구와 보호기관 연계 등을 하나의 절차로 진행하는 '원스톱 사건처리' 도 정착 단계에 있습니다."
최근 인천 초등생 살해 사건으로 소년법 폐지 주장에 힘이 실렸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93년 처음 검사가 됐을 때는 ‘범죄와의 전쟁’의 여파로 엄벌주의가 팽배하던 시절이었습니다. 범죄자가 성인이냐 소년이냐를 가리지 않았어요. 김대중 정부가 들어선 뒤 ‘인권’이 강조되면서 소년범에 대한 기조가 엄벌에서 교정ㆍ교화로 급변했던 걸로 기억합니다. 소년법이 있다고 소년범에 대한 엄벌이 불가능한 건 아닙니다. 부분적 개정의 필요성은 있을 수 있지만 기본적으로 소년범은 가르치고 훈련시켜 재범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게 우선 아닐까요?"
부산 여중생 폭행 사건 이후 형사미성년(만 14세 미만) 하향 조정해야 된다는 목소리도 커졌습니다.
“만든 지 60년 전부터 있던 규정이라 검토할 필요는 있습니다. 하지만 국민적 합의가 필요한 문제입니다. 자신의 아이가 가해자일 때와 피해자일 때 부모의 마음은 180도로 달라지거든요. 부산 여중생 사건 같은 게 터지면 ‘14세면 어른 아니냐’는 여론이 불붙지만, 13~14세 되는 여자 아이가 성인과 합의해 성관계를 했다는 사건에는 ‘14세가 뭘 아느냐. 강간이다’는 댓글이 많이 붙죠. 몇 살을 기준으로 청소년의 의사 결정 능력이 인정할 것이냐는 것은 쉽지 않은 문제입니다. 형사미성년을 낮추면 미성년자 의제강간 성립 연령도 낮출 필요가 생길 수 있습니다. 그런데 상반된 여론이 작용하죠. 충분한 토론과 합의가 필요한 사안입니다.” 

인터뷰 내내 피해자에 대한 보호와 치료의 중요성을 강조하던 김 변호사는 인터뷰 말미에 "친부(親父)에 의한 성폭행이 심각한 문제다"고 말했다. 김 변호사는 "국민들이 충격에 빠질까봐 따로 통계를 못 낸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지만 재판 과정에서 피해자가 진술을 번복해 풀려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피해자들을 아빠와 격리해 성인이 될 때까지 장기적으로 보살피는 시스템을 제대로 갖춰 아이들이 지옥 같은 집으로 발길을 돌리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KBS 드라마 '마녀의 법정'의 한 장면. 배우 김여진씨(오른쪽)가 서울중앙지검 첫 여조부장인 민지숙 역을 맡고 있다. 현실에서 여조부장을 맡았던 김진숙 변호사는 "드라마와 현실은 다른 게 많다" 고 말했다. [KBS 방송 화면 캡처]

KBS 드라마 '마녀의 법정'의 한 장면. 배우 김여진씨(오른쪽)가 서울중앙지검 첫 여조부장인 민지숙 역을 맡고 있다. 현실에서 여조부장을 맡았던 김진숙 변호사는 "드라마와 현실은 다른 게 많다" 고 말했다. [KBS 방송 화면 캡처]

임장혁 기자·변호사 im.janghyu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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