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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세 의붓손녀 성폭행·출산…판사도 "너무 비참" 울먹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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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엄청난 고통을 겪은 피해자는 사회의 관심과 도움을 받아야 할 미성년자임에도 불구하고 홀로 고통을 감내하고, 임신해 출산한 두 아이도 정상적인 울타리 안에서….”

11세 때부터 성폭행, 두 차례 출산 #1심 20년, 항소심 25년으로 가중 #재판장, 양형이유 읽으며 울먹여

10일 서울고법 형사8부 강승준 부장판사는 판결을 선고하다가 잠깐 말을 잇지 못했다. 감정을 추스르려는 듯 숨을 고른 뒤 다시 선고문을 읽다가도 이내 목이 멨다. 눈시울이 붉어진 채 몇 번이고 목을 가다듬던 강 부장판사는 “1심의 징역 20년형은 다소 가볍다고 판단해 징역 25년을 선고한다”고 말했다. 10대 의붓손녀를 수년 동안 성폭행해 출산까지 하게 한 김모(53)씨 사건이었다.

의붓 손녀를 수차례 강간한 혐의로 기소된 김모씨가 항소심에서 징역 25년형을 선고 받았다.[중앙포토]

의붓 손녀를 수차례 강간한 혐의로 기소된 김모씨가 항소심에서 징역 25년형을 선고 받았다.[중앙포토]

김씨는 2011년 가을, 사실혼 관계에 있던 60대 여성의 손녀 A양(당시 11세)과 함께 살게 됐다. A양의 부모가 이혼하면서 할머니 집에 맡겨지면서다. 이때부터 김씨의 몹쓸 짓이 시작됐다. 김씨는 당시 초등학생이던 A양이 고등학생이 될 때까지 6년간 성폭행하고 학대했다.

이로 인해 A양은 중학생이던 2015년 임신해 같은 해 집에서 출산했다. 출산 이후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아 산후조리도 하지 못한 몸으로 또 성폭행을 당했다. A양은 이듬해 7월 둘째 아이를 낳았다.

김씨가 “범행을 알리면 너와 할머니를 죽여버리겠다”고 협박했기 때문에 A양은 사실을 털어놓을 수도 없었다. 임신을 수상하게 여긴 할머니가 경찰에 신고했지만 “남자친구와 성관계를 해서 임신했다”고 거짓말을 해야 했다.

계속되는 학대에 A양은 결국 올해 초 집을 나왔다. 이후 전말을 알게 된 할머니의 신고로 수사가 시작됐다. 김씨는 지난달 1심 재판에서 징역 20년을 선고받았다.

강 부장판사는 “이 사건 범행은 정말 그런 일이 벌어진 것인지 선뜻 믿기지 않아 두 번, 세 번 반문하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중대하고 심각한 범죄”라며 “피해자와 출생한 아이들이 겪을 고통이 말로 표현할 수 없어 어떤 말로도 위로와 피해 회복이 안 될 것 같아 안타깝기 그지없다”고 말했다.

이어 “통상적으로 징역 20년 형벌의 무게가 결코 가볍지 않지만, 이 사건에서 드러난 범죄사실과 양형 요소를 종합해 볼 때 징역 20년은 가볍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강 부장판사는 피해자인 A양을 언급하며 “김씨가 사회에서 영원히 격리되길 바라면서도 한편으론 보복 당할까 봐 두려워하고 있다”며 “육체ㆍ정신적 고통과 육아에 대한 부담을 못 이겨 학교도 중퇴하고 또래 아이들과 단절되는 등 비참한 처지에 놓였다”며 안타까움을 표했다.

김씨에 대해서는 “합의 하에 성관계했고 임신 사실을 알지 못했다는 등 납득하기 어려운 주장으로 일관한다”며 “평소 잘 돌보지 않던 지적 장애인 아들을 돌봐야 한다는 이유 등을 들어 선처를 바라는 등 진심으로 반성 및 사과를 하는지도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의붓손녀

김선미 기자 calli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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