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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세 장애소녀 사망 때 옆방에서 잠든 지도교사 무죄

중앙일보

입력

5년 전 장애인 거주시설에서 숨진 열한 살 소녀의 사망에 대한 책임이 있다며 기소된 생활지도 교사에게 대법원이 무죄 판결을 확정했다.

대법원, 충주 장애인 시설 교사 무죄 확정 #2012년 11월 간질 앓던 여아 질식 추정 숨져 #방에 혼자 방치해 업무상 과실치사로 기소 #법원, "과실이 사망 원인이란 증거 부족"

대법원 1부(주심 김용덕 대법관)는 9일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로 기소된 충북 충주의 장애인 거주시설 생활지도교사 강모(45)씨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강씨는 2012년 11월 8일 야간 근무 중 평소 간질을 앓던 김모(당시 11세)양을 방에 혼자 두고 옆방에서 잠들어 김양이 숨지게 한 혐의를 받았다. 1심은 유죄를 인정해 금고 8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지만, 2심은 과실치사의 직접적 증거가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대법원은 “유죄의 인정은 합리적인 의심을 할 여지가 없을 정도로 확신을 갖게 하는 증거에 의해야 한다”며 “그런 증거가 없다면 설령 피고인에게 유죄 의심이 간다 해도 피고인의 이익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SBS '그것이 알고싶다'에 지난 8월 방영된 충주 장애아동 사망사건의 방송화면.

SBS '그것이 알고싶다'에 지난 8월 방영된 충주 장애아동 사망사건의 방송화면.

김양은 2012년 11월 8일 새벽 5시 50분쯤 방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강씨가 발견할 당시 김양은 평소 이용하던 의자에 앉아 몸이 늘어져 있었다. 강씨는 자다가 깨서 보채는 김양을 의자에 앉혀서 진정시킨 뒤 옆방에서 다른 아이들을 재우다 잠이 들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 부검했지만 정확한 사인은 나오지 않았다. 김양이 평소 간질 발작을 일으키면 몸이 늘어졌다는 주치의와 관련자 진술을 토대로 쓰러지면서 목이 눌려 질식했거나 발작으로 인한 부정맥이 사인으로 추정됐다.

유족들은 얼굴과 몸 곳곳에 멍 자국과 상처가 있다며 다른 원인으로 숨졌을 가능성을 제기했지만, 경찰과 검찰은 타살 혐의는 없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고 강씨는 과실치사 혐의로 기소됐다.

1심은 “김양이 사고 직전에 발작을 일으켰고, 그로 인한 무의식 상태에서 의자 팔걸이와 등판에 의해 목이 눌려 질식사했을 가능성이 커 보인다”며 “강씨가 응급호흡 등 기도 확보 조치를 취했거나 의료기관으로 빨리 후송했다면 생존했을 가능성도 있었다”고 판단했다. 강씨에게는 금고 8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2심은 강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청주지법 형사1부(부장 구창모)는 “김양이 발작 등 이상 행동을 보일 경우에 대비해 야간에도 잘 보살펴야 할 의무가 있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강씨의 과실이 김양 사망의 직접적인 원인이 됐다고 보기엔 증거가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이윤성 서울대 의대 법의학교실 교수가 “사망 당시 누군가가 현장에서 사망의 위험성을 인지했다 하더라도 사망 과정이 매우 짧아 생존했을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밝힌 소견도 참고했다.

김양 사망 사건은 지난 8월 한 방송사 시사프로그램을 통해 사망 원인에 대한 의혹과 시설 관계자들의 책임 전가 장면이 방영돼 시청자들의 공분을 샀다.

유길용 기자 yu.gily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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