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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남정호의 시시각각

트럼프 국회 연설 때 소란, 절대 안 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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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남정호
남정호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남정호 논설위원

남정호 논설위원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강대국 지도자의 마음을 얻기 위해 뭐든 할 인물이다. 한때 그는 ‘애견 외교’로 실속을 차렸다. 2008년 4월 백악관을 방문했을 때는 조지 W 부시 당시 미국 대통령의 애견을 위해 부인이 직접 만든 강아지용 쿠션을 선물해 화제가 됐다.

정상 개인 감정도 국제관계에 큰 영향 #국회에서 소동 벌이면 나쁜 인상 심어

부시뿐 아니다. 쿠릴열도 반환 논란이 한창이던 2012년 7월에는 또 다른 애견가인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일본 개인 아키타종 암컷을 줬다. 지난해 말에는 아키타종 수컷을 선사하려다 거절당했다.

그랬던 그가 이제 ‘골프 외교’로 돌았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개를 안 좋아하는 탓이다. 대신 그가 골프광임을 알게 된 아베는 540만원짜리 일제 드라이브를 선사하고는 골프장 27홀을 함께 돌았다. BBC는 아베가 “외교적 홀인원을 했다”고 치켜세웠다.

이번 트럼프의 순방 때도 기회를 놓칠 아베가 아니었다. 트럼프를 일본의 명문 가스미가세키 골프장으로 데려가 9홀을 쳤다.

이런 지극 정성은 일본인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잘 안 알려졌지만, 이명박 대통령도 애견 외교를 폈다. 그는 2008년 4월 첫 방미 길에 부시에게 애견용 개목걸이와 뼈다귀를 선물해 점수를 땄다. 부시와 찰떡궁합도 이런 정성이 쌓여 이뤄진 것이다.

이렇듯 이들이 강대국 정상의 마음을 얻기 위해 뛰는 까닭은 뭔가. 그만큼 정상들의 개인적 감정이 국제 관계를 좌우하기 때문이다. 어제 방한한 트럼프가 이 땅에서 어떤 인상을 갖느냐가 한·미 관계에 큰 영향을 끼친다는 얘기다.

그렇지 않아도 골프장과 유명 식당을 찾았던 일본에 비해 한국 내 일정은 평택 미군기지 방문, 국회 연설 등 퍽퍽한 느낌이다. 이런 판에 어제오늘 곳곳에서는 반미 시위가 한창이다. 두 나라가 달라도 너무 다르다.

과거에는 정반대였다. 1960년 미국 대통령으로선 처음 방한한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때의 환영 열기는 엄청났다. 200만 명이던 서울 시민의 절반인 100만 명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서울 중앙청 앞 광장에서 을지로 입구까지의 도로가 환영인파로 꽉 차 아이젠하워가 탄 차가 못 갈 정도였다. 심지어 그를 보겠다며 시민들이 남대문 지붕에 올라가는 일까지 벌어졌다.

반면 당시 일본에서는 극렬한 반미 시위가 대도시를 휩쓸었었다. 특히 아이젠하워의 방일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찾아온 백악관 참모가 하네다 공항에서 시위대에 포위당했다 구출되는 사건까지 일어났다. 이 때문에 아이젠하워는 일본 방문을 포기해야 했다.

이랬던 한·일이 완전히 상황이 뒤바뀌었다. 트럼프가 두 나라에 대해 어떤 감정을 가질지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특히 마음에 걸리는 건 오늘 있을 국회 연설이다. 일부 의원이 돌발 행동을 할 가능성이 없지 않기 때문이다. 반미 색채가 짙은 민중당의 경우 의원들에게 “트럼프 국회 연설 때는 그저 박수만 쳐 줄 수는 없다”는 편지를 보냈다고 한다. 만약 소동이 일어나면 보통 일이 아니다. 미국 기준으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실제로 2009년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건강보험 개혁에 대한 의회 연설을 하던 중 조 윌슨이란 공화당 하원의원이 “거짓말이야”라고 고함을 쳤다 곤욕을 치러야 했다. 민주당은 물론 같은 당인 공화당 중진 모두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오바마에게 사과하도록 요구했기 때문이다.

이런 문화에 젖은 트럼프가 오늘 국회 연설 때 무례를 겪으면 어떤 인상을 가질지는 불 보듯 뻔하다. 트럼프가 안 오느니만 못한 결과가 생기지 않게 관계자 모두에게 최대한의 예의를 당부한다.

남정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