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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라코타로 빚은 생동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5면

침묵과 구도의 조각가 고 권진규씨(1922∼73)의 대규모 회고전이 내년1월7일부터 2월23일까지 호암갤러리(중앙일보새사옥내) 에서 열린다.
호암갤러리가 새해 특별기획으로 마련한 이번 회고전은 그의 작고후 최대규모의 전시회로 테라코타 1백여점을 비롯, 건칠·부조·유화등 모두 1백60여점이 전시된다.
권씨는 묵묵히 작품제작에만 전념하다 73년 5월 어느날 서울 동숭동 아틀리에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어 생을 마감한 비운의 조각가. 우리나라 근대조각사에 남긴 그의 뚜렷한 성가는 날로 비중을 더해가고 있다.
권씨는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42년 20세때 일본에 유학했으나 징용을 피해 일시 귀국했다가 해방후인 47년 다시 일본에 건너가 9년간 수업했다. 48년 동경 무사시노 (무장야)미술학교에 입학, 근대조각의 거장인「부르델」의 제자 「시미즈·다카시」 (청수다가시) 교실에서 조각의 정수를 배우고 50년 일본 이리전에서 최고상을 수상했다.
그는 옛무덤에서 발견되는 테라코타를 재현하듯 소박하면서도 생동감있는 특유의 테라코타작업에 몰두, 초인간적인 분위기를 연출해내는 천재성을 발휘했다. 그의 테라코타작업은 궁극적으로 생명의 환희와 슬픔을 넘어서는 영원의 정신을 담는 그릇이었다.
권씨는 또한 흠모해 마지않은 「부르델」의 조형어법을 깨닫고 어떤 유파나 양식의 굴레도 뛰어넘어 원초적인 조형성을 추구했으며 전혀 동양적인 조형감각을 통해 불상에서 끝난 우리의 조각을 뒤흔들어 어떻게 오늘에 되살아날수 있는가를 보여줬다. 이번 회고전을 맞아 미술평론가 유준상씨는 『권진규씨는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의 고독만으로 조각의 일을 끝내는 일종의 결벽성을 보여줬다』면서 『그런 의미에서 그는 중세의 정신노동자에 가까운 예술가로 비유된다』고 추모했다.
또 박용숙씨는 『그의 대표작으로 평가되는 「자소상」은 깨달음을 얻은 인간의 심상찮은 표정을 읽을수 있다』 면서 『삭발에 예리한 눈매, 근엄한 표정, 그리고 목언저리가 훤히 드러나게 입은 붉은색 가사는 속세를 떨치고 삼매경에 들어선 한인간의 단호한 실존의 모습』이라고 평했다.
권씨의 작품들은 그의 죽음을 목격했고, 이들 분신들은 그에 의해 이 세상에 태어난 제2의 생명으로 우리들을 주시하고 있으며 우리는 이번 대규모 회고전에서 그들을 만날 수 있게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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